11월 15일 출근길
계절이 바뀌면 사람들의 옷차림은 서둘러 바뀌게 된다. 옷차림새는 바뀌기도 하고 덧입기도 한다. 그런 변화에도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이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색채는 변화가 없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은 더 어둡고 무채색이 많아진다. 그래도 간혹 눈길을 끄는 차림새가 눈에 띈다.
'이런 모습을 찾아볼까?'
출근길, 패셔니스타를 찾아보고 싶다.
아직 제대로 추워지기 전에 봤던 장면이다.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상의는 검은색 항공점퍼 차림이었는데, 아랫도리가 확실하게 눈길을 끌었다. 검은색 바지통은 한복처럼 한참 넓었고 발목 위에서 급하게 오므라드는 곡선이었다. 항아리 모양으로 여성 주름치마처럼 폭이 1 센티쯤 되는 주름이 수직으로 겹겹이 잡혀 있었다. 바지는 걸을 때마다 요동치듯 흔들리며 펄럭였다.
'정말 독특하다…’
궁금함이 자연스레 일어났다. 옆구리 높이로 둥근 가죽 가방을 멨다. 야구공만 한 둥근 원통형의 짙은 파란색 가방이었다. 미색 메시 소재의 뉴*** 운동화를 신었고 머리는 짧게 붙은 머리였는데, 머리 둘레로 절반 정도 속살이 보일 정도였다. '힙하다!'는 말이 입에 맴돌았다. 이 모습이 나에게 패셔니스타에 대한 욕구를 일으킨 것이다.
금방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어제오늘 눈에 띄기도 하고 탐색하듯 찾기도 해서 지하철 패셔니스타를 제멋대로 가늠해 봤다.
첫 번째는 30대 전후의 남자였다. 신당역에서 갈아탈 때 내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체격이 있고 키도 180 센티는 넘어 보였다. 상의는 맑은 녹색 면소재의 반코트를 입었다. 칼라는 코르덴 소재였다. 적당히 물이 빠진 청바지에 흰색 스니커즈를 신었다. 이 정도였으면 눈에 담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남자는 여기에 더해 검은색 털모자 비니를 썼다. 가방은 몸통만큼 큼지막했는데 장식 없이 밋밋하고 아래위로 긴 사각의 모양이었다. 가방의 윗부분은 타원형이었고 가방 끈은 가늘고 길어 흡사 여성용인가 싶었다. 그는 가방 끈을 잡고 가방이 바닥에 끌리듯이 걸었다. 그의 뒷모습 밖에 볼 수 없었지만 큰 체격과 비니와 가방이 만들어 주는 생김새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잠실역에 내리면서 다음 후보가 눈에 들어왔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코트는 카키색이었는데 얇은 가죽 느낌의 워시드 한 소재였다. 헤어 모양 주름이 깔려 있어 빈티지 느낌이 물씬했다. 거기에 더해 머플러를 둘렀는데, 머플러는 청색과 흰색의 무정형 조합으로 목 앞에서 매듭을 한 번 매고 허리 아래까지 길게 내려져 있었다.
'옷은 보통 아니면 과감함이야, 과감함이 필요해…’
청색 운동복 바지는 스포티하지만 약간 어색했다. 얼굴은 굵고 검은 안경테에 짧게 붙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머리칼은 흰 머리칼이 고르게 섞여 있어 중후함을 풍기었다. 가방을 크로스로 메었는데 손바닥 두 개만 한 크기의 흰색이었다. 전체적으로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젊고 스포티한 차림새가 신선함을 주었다.
고만고만한 옷차림은 열차 속 승객들의 일반이다. 굳이 잘 차려입을 필요 없는, 격식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다. 편리함이 가치에 우선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운동화가 그렇다. 이제 정장에 운동화 차림은 어색하지 않고 도리어 패셔너블한 요소가 되었다.
여성의 옷차림도 마찬가지다. 편안하고 편리하고 고만고만한 차림새의 연속이었다. 그중 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30대 전후일 까. 상의는 브라운 모직 재킷을 입었는데 자주 봤던 자잘 자잘한 체크무늬였다. 허리선이 들어가 있어서 어깨선과 더불어 단정함을 주었다. 치마는 짙은 베이지 색깔로 여유가 있었다. 길이는 무릎 아래로 내려왔는데 답답해 보이지 않았다. 검은색 스타킹에 부드럽게 윤이나는 진한 브라운색의 가죽 구두는 굽이 낮아 편해 보였다. 중간크기의 검은색 가방을 손에 들었는데, 가방은 겹겹으로 더해지고 굴곡이 있고 장식이 있어 오래 쓴 느낌을 주었다. 단발머리에 가까운 어깨를 살짝 덮은 머리에 또각또각 걷는 모습은 안정감과 단정함을 드러냈다.
오늘도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뒷모습으로 볼 때 젊어 보이는 여자였다. 미색의 율무 빛 반코트를 입었다. 허리띠를 동여매고 품은 여유가 있는데 각이 있고 굴곡진 모양은 스타일이 있어 보였다. 코트 하단은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오고 치마는 무릎을 덮는 길이의 정장 치마였다. 검은색 스타킹에 검은색 샌들형 구두를 신었다. 눈에 띈 점은 머리의 모양새였다. 착 달라붙은 짙은 검은색으로 머리칼은 어깨 아래 한 뼘 정도 날카롭게 내려왔다. 풍성하게 강조된 상체에 착 달라붙어 작아 보이는 머리가 조합되어 매력적으로 보였다.
무채색의 어두운 출근길, 패셔니스타가 자주 눈에 띄게 되면 달라지지 않을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