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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06. 2021

가시를 사랑할 때까지

-이탈리아인들의 식탁에 빠지지 않는 제철 채소

누구인가..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키가 크고 보랏빛 꽃송이가 큰 엉겅퀴 무리가 살고 있는 곳은 칠레의 중부 파타고니아 코크랑(Cochrane)이라는 곳이다. 하니와 함께 파타고니아 여행을 떠나서 만난 아름답고 매우 청정한 도시로 마치 딴 별에 불시착한 느낌을 받은 곳이다. 우리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마을을 둘러보며 언덕 위에서 엉겅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참 특별한 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과 비슷했지만 사뭇 달라 보였는데 꽃송이도 컸지만 온 몸에 돋아난 가시 때문에 만져보고 싶어도 만질 수가 없었다. 그냥 짙은 보랏빛 꽃송이를 눈여겨보고 감상만 했다. 엉겅퀴를 오늘 포스트에 소환한 건 다름 아니다. 이탈리아인들이 요즘 즐겨멱는 제철 채소 까르치오피(Carciofi alla romana) 만든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다. 



영어권에서는 까르치오피를 아티초크(artichoke)라 부른다. 키나라(Cynara cardunculus) 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엉겅퀴류로 지중해 부근의 남유럽이 원산지로 알려졌다. 국가별 생산량을 살펴보니 전 세계적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으므로 종주국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전 세계 까르치오피 생산량은 1,452,325 톤이며, 그 가운데 이탈리아서만 연간 365,991 톤을 생산한다. 그다음이 이집트로 연간 236,314 톤을 생산하며 페루 아르헨티나 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쉽게도 한국의 기후에서는 재배가 안 되는 것 같다. ㅜ 



까르치오피가 이렇게 많이 생산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식물이 보유한 성분(항산화제, 무기질, 비타민 등)이 천연 치료제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이 애용하던 이 식물이 중세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까르치오피 100그램당 영양가는 다음과 같다. 


Calorie e valori nutrizionali dei carciofi_100 g di carciofi apportano:
-22 kcal
-Proteine(단백질_ 2,7 g
-Grassi(지방) 0,2 g
-Carboidrati(탄수화물) 2,5 g
-Zuccheri semplici(단당) 1,9 g
-Fibre(섬유질) 5,5 g 



쓴맛을 내는 식물들(Erbe amare)은 우리 몸의 간에 좋다(Erbe amare per depurare il fegato)고 알려졌다. 담즙의 생산과 배설을 촉진하고 소화를 개선하는 한편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한다는 것. 간(il fegato)이 우리 몸의 매우 중요한 장기임을 고려할 때 까르치오피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간이 건강하면 우리 신체가 효율적으로 잘 작동(건강)한다는 게 요지이다.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알려졌다. (출처: cure-naturali.it) 의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Ippocrate)가 '음식으로 못 고치면 약으로도 못 고친다'라고 한 가르침이 까르치오피에서 묻어난다. 비단 까르치오피 뿐이겠는가 마는..



지난주,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부활절을 맞이하기 전까지 나름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중에 장을 봐 온 까르치오피를 손질하고 요리하는 일이 포함됐다. 코로나 시대에 살면서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 추이를 살펴보는 일도 그러하다. 서기 2021년 4월 6일 현재,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는 부활절 연휴기간 동안 서서히 약세로 돌아서고 있었다. 신규 확진진 수(10,680명)는 물론 사망자 수(296명)도 하향세를 타고 있다. 이대로 하향세를 이어가면 머지않은 장래에 코로나가 사라지게 될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 까르치오피 자료를 챙겨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열거한 까르치오피의 효능 등에 따르면 인체의 면역력이 극대화돼야 할 텐데..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들은 왜 죽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코로나 감염으로 사망한 사람들 다수는 기저질환(基底疾患, underlying disease) 자라고 한다. 가장 흔한 기저질환은 76.2%를 차지한 심근경색, 심부전, 뇌졸중, 고혈압 등 순환기계 질환이다. 2위는 당뇨병, 통풍, 쿠싱증후군((Cushing's syndrome)은 뇌하수체 선종, 부신 과증식, 부신 종양, 이소성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 분비증 등의 여러 원인에 의해 만성적으로 혈중 코티솔 농도가 과다해지는 내분비 장애) 등으로 분류됐다. 



이 자료를 들추어본 이유는 다름 아니다. 까르치오피의 주산지가 지중해 주변 유럽 남부인데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사람들은 전부 기저질환자들이란 말인가.. 코로나가 사그라들 때까지 방역수칙과 백신 접종도 중요하겠지만 이들의 생활문화와 음식문화까지도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이른바 미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영양의 불균형이다. 



또 어떤 기록들은 조선왕조의 임금들이 단명한 이유를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 비위생적 생활습관과 과도한 영양 섭취에 따른 혈액성 염증질환, 과색(過色) 등이 평균 수명이 46세로 50세를 넘지 못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생활환경과 음식문화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참 쉬워 보이는 듯 쉽지 않은 세상살이이다. 각설하고.. 아무튼 몸에 좋다는 까르치오피를 어떻게 먹어야 할까..



까르치오피 다듬기


꽃잎 부분에 가시가 돋친 까르치오피는 쪄서 익혀먹어야 한다. 나의 브런치 이탈리아 요리 매거진에 상세하게 소개한 바와 같이 전문가(CHEF)의 손을 거친 까르치오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손질 방법에서부터 요리까지 비슷한 듯 개성이 묻어나는 것이다. 참고로 카르치오피 관련 브런치 글을 살펴보시기 바라며 내가 만든 까르치오피 리체타를 이어간다.

카르치오피 관련 브런치 글: 
카르치오피의 완벽한 변신에 놀라다_#9 이탈리아인들의 건강 장수 비결
카르치오피를 대하는 셰프의 자세_#9-1 이탈리아인들의 건강 장수 비결 
봄나들이 나선 카르치오피의 자태_#9-2 이탈리아인들의 건강 장수 비결 



위 자료사진은 여러 장이 겹쳐있지만 한눈에 어떤 과정이 진행되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먼저 까르치오피 껍데기 딱딱한 부분을 부드러운 꽃잎이 나올 때까지 모두 벗겨낸 다음 까르치오피 봉오리 끝부분을 2/5 정도 잘라낸다. 크기에 따라 3/5가 될 수도 있으므로 알아서 자르면 된다. 그리고 줄기 아래서부터 봉오리 쪽으로 호주머니 칼을 이용하여 겉껍질을 분리하고 잘 다듬는다. 


그리고 절반을 잘라 티스푼 등으로 속(꽃잎)을 파 낸다. 카르치오피는 표면이 잘리는 순간부터 색이 변한다(갈변). 따라서 사전에 레몬을 준비하거나 볼에 물을 다마고 식초를 넣어 갈변을 방지하게 되는 것이다. 레몬은 반으로 잘라 껍질이 벗긴 부분에 바르고 나머지는 볼에 담긴 물에 짜 넣는다. 



까르치오피 꽃봉오리를 2/5 정도 잘라낸 모습이다. 잘린 단면은 부드럽게 다듬어 준다.



까르치오피 속에 있는 꽃잎을 파낸 부분이다. 식초 물에 담갔지만 갈변이 보인다. 별 문제없지만 맨손으로 만지면 손바닥과 손가락이 짙은 갈색으로 변하므로 주방용 장갑을 착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까르치오피 속재료 준비




이렇게 준비된 봉오리 속에 다듬어 둔 줄기를 잘게 썬다. 그리고 적당량의 마늘과 청양고추(식 미 껏)를 같거나 비슷한 크기로 다진다. 그리고 준비된 작은 볼에 한데 섞은 다음 적당량의 올리브유와 조미간장을 넣고 잘 버무린다. 그다음 꽃술을 파낸 자리에 나무 주걱 등으로 꼭꼭 눌러 담는다. 



까르치오피 쪄내기




그다음 두꺼운 팬이나 냄비에 적당량의 물을 붓고 가지런히 올린 다음 센 불로 데우기 시작한다. 자료사진은 뚜껑을 덮기 전의 모습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봉오리를 절반으로 자르지 않고 통째로 속을 파낸 다음 내용물을 채워놓고 올리브유에 잘 쪄내는 방법이다.



이렇게 준비된 재료들은 센 불에서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전환하여(뚜껑이 덮인 채로) 10분 이상 잘 익을 때까지 천천히 쪄내면 된다. 팬 혹은 냄비 속의 물의 분량은 졸아들 때를 감안하면 된다. 물이 너무 적으면 바닥에 눌어붙을 수도..ㅜ 



잘 쪄낸 까르치오피의 비주얼




팬 뚜껑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완성된 까르치오피 요리의 비주얼이다. 



내가 만든 까르치오피 요리 제목_가시를 사랑할 때까지


내가 만든 까르치오피 요리가 완성됐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게 된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의 브런치에 까르치오피 요리를 발행한 때가 2019년 5월이었다. 어느덧 햇수로 3년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하니와 함께 여러 번 까르치오피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요리를 하고 글을 쓰는 일은 그나마 쉬운 일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과정을 돌아보면 장미의 가시를 사랑할 때까지 걸린 세월이 포함됐다. 



내가 좋아하는 생떽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이런 경우의 수를 길들이기로 표현했다. 어린왕자와 여우와의 대화에 등장하는 '길들이기'가 그것이다. 무슨 일이든 길들여지기까지의 과정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길들여지면 쉽고 좋아하게 되고 행복해지는 법이다. 나는 요리할 때가 즐겁다. 요리를 하기 위해 식재료를 구입하러 가는 순간부터 행복해지는 것이다. 리체타를 머리에 그려 넣고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린왕자아 여우의 대화와 쏙 빼닮았다. 여우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길들여줘. 하지만, 넌 늘 같은 시간에 오는 게 좋을 거야.

가령 오후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니까.

그러나 만일, 네가 무턱대고 아무 때나 찾아오면, 

나는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니까…"



이때부터 어린왕자는 자기 별에 혼자 버려둔 가시가 넷 달린 장미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어린왕자가 매일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 유리 덮개를 씌워주며, 애지중지 길렀던 장미가 갑자기 보고 싶어 진 것이다. 늘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길들여지지 못한 채 1년 동안이나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미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코로나와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모두 그러할 것이다. 서두에 까르치오피의 효능 등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까르치오피 요리를 완성했다. 하지만 이건 조족지혈이다. 여러분들이 식재료에 대해 음식에 대해 요리에 대해 길들여지기만 하면 보다 더 건강해질 건 자명한 일이다. 기저질환이 생명을 앗아가는 원흉임을 알지만 사전에 예방할 수 없다면 만사가 허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명언 중에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반을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가 하면 "쓴 게 약이다"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장미를 사랑하려면 가시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늘 좋은 것만 취하고 달콤한데 익숙하며 외눈박이 사랑을 할 때 불행을 자초하지 않을까.. 현재까지 드러난 코로나 펜데믹을 감안하면 하루아침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인가는 어둡고 긴 터널의 끝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때 당신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 음식을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참고로 나는 봄이 오시면 민들레나 엉겅퀴나 꽃다지 등 버려진 땅에서 자라는 식물 채집을 좋아한다. 요즘이 그런 철이다. 나른한 봄을 일깨우는 좋은 음식들이 지천에 널려있는 것이다. 그들과 길들여지면 당신 속에 숨겨져 있던 가시가 드러나 보일 것이다. 천하보다 더 소중한 당신을 보호하는 가시가 필요한 때이다.


Verdure di stagione che non cadono sulla tavola degli italiani
il 06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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