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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11. 2022

세상에 이런 동네도 있다

-우리 동네 바를레타에 찾아온 봄소식


바닷가 저녁 산책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



   서기 2022년 2월 10일(현지시각) 저녁나절의 기록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하니와 함께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면 맨 먼저 바를레타 성(Castello di Barletta)을 만나게 된다. 성 앞에는 우리가 자주 들르는 공원이 있고, 소나무 숲 등이 분수대와 잘 어우러져 있는 곳으로 참 아름답다. 



요즘 시내 중심에는 바를레타의 도전(Disfida di Barletta, cosa accadde il 13 febbraio 1503)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정체성은 1503년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퓌렌쩨서 살다가 이 도시로 둥지를 옮긴 이후 맨 먼저 만난 이 행사를 통해 낯선 도시는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도시의 시민들은 가족처럼 지냈으며 행사가 있는 날이면 모두 거리로 몰려나와 당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사람들은 보수적이며 가정적이고 사랑으로 충만한 기독교인들이었다. 양성평등을 외치는 일은 여태껏 찾아보지 못했을 정도이다. 남녀노소.. 그 누구도 차별을 받는 모습을 본적 없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겸손했다. 


시민들과 이 도시를 이어준 끈끈한 인연은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이유가 됐다. 퓌렌체서 만난 한 예술가 루이지(Luigi lanotte)를 만난 것이다. 그는 하니의 그림 선생님으로 일주일에 세 차례 그림 지도를 받는다. 그녀의 평생소원이 루이지 화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녀가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봤다. 



만에 하나 한국으로 돌아갈 일이 생긴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싶은 것. 우리나라에서 뱅기로 12시간이나 걸리는 먼 나라 이탈리아까지.. 그리고 로마 공항 혹은 밀라노 공항에서 입국을 하면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까지 이동해야 한다.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퓌렌쩨서 바를레타로 둥지를 옮길 때를 생각해 보면 까마득한 여정이다. 



문제는 거리가 아니라 이 도시에 대한 애착심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온 듯한 생각 때문에 잠 못 이루거나 우울한 날을 보내게 될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국에서 잠자리에 누우면 아른거리는 동네.. 인생 후반전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이 도시는 우리의 결심만으로 된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계획 위에 하늘의 보살핌이 함께 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애당초 이곳으로 둥지를 옮길 때만 해도 바를레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우리뿐만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저 아드리아해의 한 어촌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 어느 날 루이지와 함께 집을 얻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가 눈이 번쩍 띄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 낯선 도시를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렀다. 구도시 전체기 대리석으로 지어진 도시.. 내가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도시들 중에 이런 도시는 없었다. 물론 작정하고 살게 된 퓌렌쩨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만,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도시를 만나는 순간부터 가슴에서 새로운 희망과 도전이 생기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게 어느덧 3년의 세월이 지났으며 4년 째를 맞이하고 있다.



인생 후반전에 만나고 선택한 도전의 도시..



하니와 나는 집에서 공원으로 천천히 걸어서 바닷가로 저녁 산책을 나갈 요량이었다. 요즘 우리 식단은 많이도 변했다. 봄나물에 길들여져 과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주 내내 달래 냉이 씀바귀 고들빼기 그리고 자연산 미나리를 발견한 이후 봄나물을 불로초로 여기며 배 터지게 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로마 병정의 투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까볼퓌오레 로마노(cavolfiore romano)를 잘 다듬고 데쳐서 밥과 함께 배불리 먹었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너무 맛있다. 영양가는 차고 넘친다. 그런 직후 결정한 게 바닷가로 저녁 산책을 나가는 일이다. 



바닷가에 도착하자 아드리아해는 잠잠했다. 이틀 전까지 사납게 굴던 녀석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다. 그러나 아드리아해는 가늘고 찬 바람결을 살랑대며 날리고 있었다. 목도리를 하고 마스크까지 하고 겨울 차림으로 나선 그녀도 찬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아드리아해 상공에는 발그레한 입자들이 마구마구 소리치고 있었다. 해넘이가 이탈리아 반도 너머로 사라지면서 쏟아놓은 황금빛 가루들이 긴 꼬리를 바닷가로 날리고 있었다.



하니가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무시로 걸었던 바닷가..



그 길을 따라 두 사람이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이다. 집을 나서면 코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잘 정리된 공원.. 그리고 지근거리에서 종려나무 너머로 해넘이를 바라보고 있는 방파제와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듯한 재래식 고기잡이 일 뜨라부꼬(Il Trabuco)..



도시는 크지도 작지도 않아 천천히 산책을 하면 바닷가를 돌아 사내 중심까지 1시간 남짓 걷게 된다. 그동안 만나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서울에 살면서 만날 수 없는 낭만 가득한 풍경이 아드리아해 바닷가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그녀의 화실 곁으로 이동하여 시내 중심으로 가면 그땐 볼거리들이 진열장 가득하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백화점을 닮았다. 각 상점들은 얼마나 잘 꾸며놓았는지 퓌렌체나 말라노에서 조차 볼 수 없는 자연스러움과 고급진 풍경들이 빼곡하다. 



살면서 이런 동네 이런 도시 본 적이 없다. 거기에 야채와 과일은 얼마나 신선하고 싼 지..  그리고 루이지 아버지 프랑코가 농사짓는 올리브 과수원에서 채취한 올리브유는 최고의 맛이다. 지난해 가을 최상품의 올리브유를 25킬로그램(5kgX5x통)이나 구입했다. 그 올리브유가 산책을 나서게 만드는 원흉(?)인 것이랄까..



이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 앞에 해넘이가 남긴 꼬리가 밟혔다. 저녁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곳. 그녀는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가 어렴풋이 보이는 바닷가에 다가서자 지난해 여름에 만났던 아름다운 뷔에스떼(Vieste)를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그곳에서 "한 달만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대략 천년은 살아야 이곳 저곳을 다 돌아볼 수 있을까..



시내 중심으로 돌아서는 바닷가에서 청춘들이 플래시를 켜고 바닷가를 돌아 나서고 있다. 거무스름한 그림자가 수평선 위에 드리워져 있고 작은 불빛들이 하나둘씩 반짝거린다. 인생 후반전에도 반짝이는 불빛은 궁금한 법이다. 그녀는 "저긴 어디냐?"라고 물었다. 나는 "응, 마르게리따 디 시보이아(Margherita di savoia).."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슬며시 나의 팔짱을 꼈다. 밤이 되자 바람이 점점 더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 자랑 끝! ^^


Notizie di primavera arrivate nel sud d'italia_il Mare Adriatico
il 11 Febbra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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