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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9. 2020

세월호, 범인이 남긴 흔적들

-기록, 2014년 4월 16일

하늘에 별이 된 아이들..!!


역사에 만약은 없다.  먼저 쓴 글 세월호, 인양되지 않은 진실에서 "만약 박근혜와 겨루었던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4대 강 비리로 얼룩졌던 이명박 일당은 국민적 원성에 직면하며 쇠고랑을 차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다. 당시 언론들은 이 같은 일에 보험을 든 게 '부정선거의 배경' 등이라고 떠들어댓다."라고 말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은 부정선거 시비로 하루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사정이 이러한 때 국정원장 남재준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으며,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14년 5월 22일  박근혜는 남재준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1년 2개월 만에 사퇴하게 됐다. 남재준의 주요 업적(?)은 RO(혁명조직)의 실체를 적발하고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내란 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한 사실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 박근혜가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당시 통합진보당 제18대 대선 후보 이정희는 TV토론회에 나와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토론에) 나왔다. 저는 박근혜 후보를 반드시 떨어뜨릴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박근혜가 부정선거 시비로 당선된 그해 2013년 11월 5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이 발생했다. 박근혜는 이정희를 괘씸죄를 적용해 심판하려 했던 것일까..

 


당시 해산심판에 나섰던 재판관 가운데 민주통합당(현재 더불어 민주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 한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 재판관 8명은 모두 인용을 했다. 그 속에 양승태 대법원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위 표에 (_1)로 표기된 부분은 박근혜가 추천한 재판관으로 이 사건은 일찌감치 통합진보당 해산을 점치고 있었다. 재판관들 다수가 박근혜나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편을 든 형평성이 모호한 조합이거나 사람들이었던 것. 


박근혜의 부정선거 시비 집회를 주도한 것으로 본 박근혜 정부와 힘없는 야당은, 결국 박근혜의 손을 들어주었고 통합진보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월호 기획 참사설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당시의 정치판 분위기가 주로 이런 모습이었다. 보통 시민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이런 데까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또 신경을 써본들 나아질 게 1도 없었던 그야말로 '개판 5분 전'의 상황이 자고 나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가 닭대가리라는 별명만 없었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까.. 애비로부터 학습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것'외 국정을 수행할 능력이 전무했던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하루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회원으로 임명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하루 전에 일어났던 이상한 일들 가운데 두 번째 발생한 비서실장 김기춘의 모습이다. 김기춘은 누구인가.. 나무위키는 김기춘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의 제15대~1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지역구는 경상남도 거제시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중앙정보부의 대공수사국장으로 있었고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아 '기춘대원군'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닐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휘둘렀던 인물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가 남긴 오점에 대부분 연루되어 있는 인물로, 박정희 유신 정권 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40년 넘게 권력의 핵심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유신헌법 설계, 공안 사건 조작, 여론 공작, 지역감정 조장,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비롯한 온갖 정치적 비행을 저질렀으며, 위기 때마다 철저하게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난국을 돌파하였다. 이 때문에 생긴 별명이 법꾸라지(미꾸라지)다.





이게 닭대가리란 별명을 가진 박근혜의 비서실장 면모이다. 대가리가 너무 똑똑했던 나머지 김기춘(아래 감방으로 향하는 김기춘의 자료사진)은 박근혜의 애비 박정희 때부터 40년간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으며 공안사건 조작질의 달인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이런 김기춘을 세월호 참사 하루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회원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장차 다가올 세월호 참사에 대비한 포석이었을까.. 


김기춘을 임명한 사실을 보도한 언론의 기사 입력 시간 2014년 4월 15일 20:36분이었다. 세월호 참사 하루 전의 일이었으며 세월호 참사를 향한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본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의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더 세월호 참사 하루 전에 일어났던 이상한 일들을 돌아보면 이러하다.


*아래는 세월호 참사 관련 연재 브런치 글 모음임.

세월호, 인양되지 않은 진실
세월호, 기획 침몰설에 한 표

세월호, 7시간의 비밀
꽃들아 꽃들아 어여쁜 꽃들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이들
이른 아침에 만난 고향의 봄



세월호 참사 하루 전에 일어났던 이상한 일들


첫째, 참사 하루 전, 남재준 국정원장의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대국민 사과가 있었다. 

둘째, 참사 하루 전, 비서실장 김기춘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회원으로 임명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국가의 [ 재난위기상황관리팀장 ]을 맡게 되어 있다.( 제20조 ) 

셋째, 참사 하루 전, 선장 대신 1등 항해사가 선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넷째, 참사 하루 전, 경기도 안산 단원고와 계약된 선박이 오하나마호에서 세월호로 바뀌었다.

다섯째, 참사 하루 전, 1등 항해사를 대통령이 정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여섯째, 참사 하루 전, 세월호 선장이 갑자기 휴가로 교체됐다. 

일곱째, 참사 하루 전, 1등 항해사 신정훈이 입사했다. 그는 사고 직후 국정원과 통화한 사실이 있다. 그 후 살인죄 기소에서 제외됐다. 

여덟째, 참사 하루 전, 조기장( 세월호 안전담당)이 입사했다.

아홉째, 참사 하루 전, 짙은 밤안개 속에서 인천항을 출항한 배는 오직 세월호뿐이었다. 이날 출항 예정이었던 여객선은 모두 10척이었으나, 모두 취소됐다. 





김기춘은 세월호 참사 이후 그의 별명처럼 법꾸라지 모습으로 이 사건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며 전혀 엉뚱한 길을 가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배후 조종하거나 정리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세간의 모습과 매우 달랐다. 김기춘이 감방으로 향한 이유는 다름 아닌 화이트 리스트 사건(박근혜 정부 시절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압박해 특정 보수단체를 지원하게 했다는 사건)때문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그들이 누린 권력의 주요 지지자들에게 구원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랄까.. 



대한민국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게 없으면 사람을 죽이는 등 그 어떤 죄악을 저질러도 괜찮은 것인지 법조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일찌감치 그들 밖으로 겉돌게 됐다. 그 어떤 강력 범죄 조차 검찰의 손에 들어가는 즉시 희한한 세탁을 거치며 소시민들이 느낄 수 없는 형량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 같은 경우의 수를 대변하는 곳은 다름 아닌 검찰의 태도라 할 수 있다. 



요즘 우리 귀에 익숙한 검찰개혁이 그냥 된 게 아니었다. 박근혜의 애비 박정희 때부터 습관이 된 떡검 혹은 권력의 시녀라는 별칭은 2020년 현재 검찰의 본모습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었다. 이른바 검찰개혁을 내세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이 잡듯 뒤진 녀석들의 민낯은 김기춘이나 이에 빌붙었던 검사들의 정치적 외눈박이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만약 김기춘이 세월호 참사를 배후 조종한 혐의로 기소되었다고 해도 기소권을 쥔 검찰이 공소 사실을 어떻게 기록하는가에 따라 김기춘의 운명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김기춘이라는 자가 40년 이상을 이 바닥의 관습을 꿰뚫고 있어서 처리가 쉽지 않을 것. 



김기춘은 그나마 세월호 참사 사건이 아닌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되고 감방살이를 겪었지만 잔꾀(병보석)를 부려 석방되는 절차를 일찌감치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가 다시 구속된 배경에는 보수단체를 지원한 혐의가 적용되고 있었다. 법정이 말하는 보수단체는 다름 아닌 닭대가리를 평생 지원해 왔던 태극기 부대 등, 최근에는 비루스 확진자를 퍼뜨리고 다녔던 광신도 집단 신천지 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끼적거린 글이 점점 더 세월호 참사와 멀게 느껴지는 것은 다름 아니다.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그들은 법조계 사람들이며 그중 검찰의 민낯이 어둠의 세력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키워드가 사고의 원인에 집착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배경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우리 국민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며  주로 정치판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돌아보면 후진국이 겪고 있었거나 겪었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등 민주국가의 형태를 짓밟을 때 전면에 나선 인간들 혹은 집단들이 있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가 기획설에 근거하는 배경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가설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세월호 참사에서 끔찍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김기춘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24시간이 채 안 된 시간에 국가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의 수장으로 임명된 것은 그냥 봐주기엔 너무도 심각한 참사 전야의 모습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닭대가리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계속>



Problema di Sewol, tracce lasciate dall'assassino
Record, 16 aprile 2014_Naufragio del Sewol
il 28 April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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