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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3시간전

삶의 희극과 비극

완벽한 우울의  맛



"이제 나만의 작은 행복조차 남과 비교하고 과시하고  경쟁하는 아이템이 됐다. 한마디로 행복에 지쳐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가 더 행복한가 하는 경쟁 속에서 행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피로해진 것이다."


트렌드코리아 2025 (김난도, 정미영외 8명, 2024, 미래의 창)



                                                     


“요즘 다 이거 하잖아. 너도 깔아봐”

어린이집 안 다니는 네 살 아들과 24시간 함께하던 2015년.

육아에 지쳐 요즘 유행이 뭔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눈 돌릴 여유조차 없던 살던 중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어플을 다운로드해 주고 가입까지 도와준다.


이게 인스타그램이라는 건가.

싸이월드가 마지막이었던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다른 세상이었다.

여행하고 싶었던 나라도, 가보고 싶던 카페도, 정신없는 육아로 잃어버린 낭만까지 모두 핸드폰 화면 안에 있었다.

그렇게 틈날 때마다 핸드폰 화면 안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크게 질투 날 일은 없었다.

나에게 질투란 힘껏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욕망이니까. 인스타그램 속 세상은 애초의 질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것에서 터졌다.

덮어두고 지냈던 상처들.

핸드폰 화면 속 타인들의 행복한 순간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 상처들이 말한다.


‘너 이런 거 없잖아’

없다.

내가 가진 것은 그 시절 엄청나게 싸웠던 남편과 , K장녀 역할만을 바라는 친정엄마.

가장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가족에 의해 벼랑 끝에 몰리는 마음.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마음 한 자락 의지할 곳이 없었다.

우울감이 커질수록,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잠식될수록 나는 멍하니 누워있거나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인스타그램 속 그녀들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집 인테리어와 정리 정돈은 기본. 음식솜씨까지.

억지로 몸을 움직여 따라 해 보곤 했지만 그녀들에겐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행복이 있었다.

내 노력이 부족한 걸까. 우울한 마음에 자책까지 더해지는 날들.




‘이렇게 살 순 없어.’

우울증으로 3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아이는 자랐고, 아이의 눈치는 생각보다 빨리 자랐다.

아이 앞에서 '괜찮은 척' 하는 것 이 불가능해졌다. 행복까진 아니더라도 진짜로 괜찮고 싶었다.

아이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우울증 검사 후 수치를 보고 놀란 의사 선생님의 첫 번째 처방은 걷기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 근처 공원을 걸었다. 걸으며 생각했다. 나에 대해서. 날 힘들게 했던 것들에 대해서.

하루 이 삼십 분, 때론 한 시간씩 둘러보던 인스타그램을 끊었고, 놓았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의 상처를 억지로 이해하는 걸 멈췄다.

정말 괜찮아질 때까지 생각하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꼬박 2년.

그저 걷고 책을 읽고 사람 만나기를 줄이고 내 마음에 집중했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봄의 벚꽃이, 여름의 무더위 속 시원한 빗줄기가, 가을의 낙엽이, 겨울의 흰 눈이 보였다.

아이의 사랑을, 남편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던 시간들.

그 시간을 보내고 서야 정말로 괜찮아진 내가 되었다.



삶 속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늘 함께 가고 있고, 내 안의 상처는 아직도 불쑥불쑥 말을 걸지만 이젠 제법 단단해진 마음이 말한다.

‘나 이제 진짜 괜찮은 것 같아. ‘


금요일 저녁 세 식구 야구 보는 시간, 주말 집 앞 카페에서 남편과의 대화, 하루의 끝 잘 자라고 아이에게 전하는 그 인사 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고.

이런 보통의 하루면 족하다고 내 마음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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