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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꾸준한 구원
아주 보통의 하루
완벽한 우울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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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Nov 1. 2024
"이제 나만의 작은 행복조차 남과 비교하고 과시하고 경쟁하는 아이템이 됐다. 한마디로 행복에 지쳐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가 더 행복한가 하는 경쟁 속에서 행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피로해진 것이다."
트렌드코리아 2025 (김난도, 정미영외 8명, 2024, 미래의 창)
“요즘 다 이거 하잖아. 너도 깔아봐”
어린이집 안 다니는 네 살 아들과 24시간 함께하던 2015년.
육아에 지쳐 요즘 유행이 뭔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눈 돌릴 여유조차 없던 살던 중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어플을 다운로드해 주고 가입까지 도와준다.
이게 인스타그램이라는 건가.
싸이월드가 마지막이었던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다른 세상이었다.
여행하고 싶었던 나라도, 가보고 싶던 카페도
, 정신없는 육아로 잃어버린 낭만까지 모두 핸드폰 화면 안에 있었다.
그렇게 틈날 때마다 핸드폰 화면 안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크게 질투 날 일은 없었다.
나에게 질투란 힘껏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욕망이니까. 인스타그램 속 세상은 애초의 질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것에서 터졌다.
덮어두고 지냈던 상처들.
핸드폰 화면 속 타인들의 행복한 순간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 상처들이 말한다.
‘너 이런 거 없잖아’
없다.
내가 가진 것은 그 시절 엄청나게 싸웠던 남편과 , K장녀 역할만을 바라는 친정엄마.
가장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
던 가족에 의해 벼랑 끝에 몰리는 마음.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마음 한 자락 의지할 곳이 없었다.
우울감이 커질수록,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잠식될수록 나는 멍하니 누워있거나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인스타그램 속 그녀들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집 인테리어와 정리 정돈은 기본. 음식솜씨까지.
억지로 몸을 움직여 따라 해 보곤 했지만 그녀들에겐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행복이 있었다.
내 노력이 부족한 걸까. 우울한 마음에 자책까지 더해지는 날들.
‘이렇게 살 순 없어.’
우울증으로 3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아이는 자랐고, 아이의 눈치는 생각보다 빨리 자랐다.
아이 앞에서 '괜찮은 척' 하는 것 이 불가능해졌다. 행복까진 아니더라도 진짜로 괜찮고 싶었다.
아이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우울증 검사 후 수치를 보고 놀란 의사 선생님의 첫 번째 처방은 걷기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 근처 공원을 걸었다. 걸으며 생각했다. 나에 대해서. 날 힘들게 했던 것들에 대해서.
하루 이 삼십 분, 때론 한 시간씩 둘러보던 인스타그램을 끊었고, 놓았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의 상처를 억지로 이해하는 걸 멈췄다.
정말 괜찮아질 때까지 생각하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꼬박 2년.
그저 걷고 책을 읽고 사람 만나기를 줄이고 내 마음에 집중했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봄의 벚꽃이, 여름의 무더위 속 시원한 빗줄기가, 가을의 낙엽이, 겨울의 흰 눈이 보였다.
아이의 사랑을, 남편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던 시간들.
그 시간을 보내고 서야 정말로 괜찮아진 내가 되었다.
삶 속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늘 함께 가고 있고, 내 안의 상처는 아직도 불쑥불쑥 말을 걸지만 이젠 제법 단단해진 마음이 말한다.
‘나 이제 진짜 괜찮은 것 같아. ‘
금요일 저녁 세 식구 야구 보는 시간, 주말 집 앞 카페에서 남편과의 대화, 하루의 끝 잘 자라고 아이에게 전하는 그 인사 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고.
이런 보통의 하루면 족하다고 내 마음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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