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로 이사 온 지가 7년이 넘어간다.
그전에 내 인생의 절대적 시간은 주택에서 보냈다.
동향집에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더위보다 추위에 약한 나로서는 매년 겨울을 보내는 것이 힘들었다.
특히 화장실 갈 때, 샤워를 할 때,
따뜻한 온수를 미리 엄청나게 틀어놓고 수증기로 온기를 만들어 내거나, 합선의 위험을 감안하고 히터를 켜 놓고 공기 온도를 높이는 방법을 썼다.
그런 생활을 한지가 40년이 됐다.
아빠를 원망했었다. 내가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닌데, 우리 집이 남들보다 가난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따뜻한 아파트에서 못 사냐고. 내가 집 사서 나가겠다고! (돈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른 퇴직으로 마땅한 수입처가 없었던 아버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철없는 내 모습이 보인다.
내가 조금 더 독립적이거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작은 오피스텔이라도 얻어서 독립했을 것이다. 그 나이 먹도록 혼자 나와 살 생각을 못하니 말이었다. 사실 난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엄마가 집안 살림 해주는 집에서 지내는 것이 편했다. 결혼하라고 보채지도, 뭐라 하지도 않는데 굳이 내가 집을 나갈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항상 우리 집에서 쳐다보면 산 쪽으로 우뚝 서 있던 아파트. 처음엔 산을 가려서 밉기도 했지만 아파트가 처음 지어질 때부터 서글픈 마음으로 지켜봤다.
저런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이 얼마나 강했는지 간혹 아파트에 사는 꿈을 꾸기도 했다.
지금의 우리 아파트는 고급 마감재 덕분에 바깥 소음도 바깥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외풍도 없다. 그래서 바깥이 얼마나 추운지는 나가봐야 아는 호사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벽과 창문이 나를 단단하게 보호하고 있는 느낌이다. 외부의 기온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창문에 습기가 차 있으면 포근함까지 느껴진다. 바깥이 아무리 추워도 집 안에 있는 나는 안전하다는 안도감이랄까? 우리 집이 이렇게 따뜻하구나 확인이라고 할까?
아파트로 가자고 할 때 아빠는 갑갑해서 싫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주택을 팔고 아파트로 갈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긴 싫고 아빠는 에둘러서 말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빠가 이사하고 나서 만족감이 가장 높았다. 혹시 층간소음에 민감하지 않을까도 걱정했는데 아빠는 귀가 어둡고 우리 아파트는 잘 지은 아파트라 층간 소음도 거의 없다. 아빠는 항상 이 집이 정말 좋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아빠는 그 좋은 집에서 고작 6년밖에 살지 못하셨다.
이 집 저 집 이 아파트 저 아파트 이사 가는 것에 별 거부감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전세 만기로 어쩔 수 없이 이사 가야 하는 사람도 있고, 투자의 목적으로 살아보지도 않고 이 집 저 집 샀다가 팔다가를 반복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집은 한 번 살면 30년 이상을 사는 집이다. 전 집이 그랬다 10살에 이사 와서 41살에 이사 갔으니 말 다했다. 지금 이사 온 이 아파트는 나에겐 생애 첫 아파트이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마지막 남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빠가 계실 때는 인테리어 좀 바꾸자고, 구닥다리라고, 내가 돈을 내겠다고 몇 번 시도한 적이 있었다. 비록 내 집은 아니고 부모님 집이지만 잡지에 나오는 예쁜 집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손을 못 대겠다. 아무리 낡아도, 아무리 촌스러워도 그냥 그대로 둬야겠다는 생각이다. 왜냐면 아빠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엄마와 내가 살고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따뜻한 아파트에서 나서며, 집안의 온기와 엄마의 온기에 감사함을 느낀다. 엄마는 돈을 아낀다고 난방을 절대로 강하게 틀지 않는다. 더 따뜻하게 하고 있으면 좋은데 그게 엄마가 몸에 익힌, 몸에 남은 습성이다. 그래서 덩그러니 큰 집에 엄마 혼자 남겨두고 출근을 하는 마음이 매번 무겁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 아파트는 따뜻하니까, 저 유리창 밖으로 매서운 바람도 우리 아파트는 잘 막아줄 것이니까. 마음이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