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오래 살았던 것을 빼면, 좋은 집도 아니다.
그런 옛날 집이 꿈에 자주 나오고 있다.
1년여 전부터다. 옛날 집이 꿈에 자주 나오는 것은 과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과거 미해결된 감정의 반영.. 등 때문이라고 한다.
10살부터 41살까지 살았으니 옛날 집은 지금까지 내 인생 대부분을 살았던 공간이다. 유년 청소년 청년.. 중년까지인가. 그곳을 허물던 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집을 허물고 원룸을 짓는다고 했다. 허무는 날 아침 일찍 옛날 집을 들렀다. 집 안 구석구석 돌아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마지막’ 임을 그 어떤 때보다 실감하며 실물로 존재하는 집의 모습을 끝까지 담아 보려 했다.
빨간 벽돌집. 1980년대 중반 우리 동네에 빨간 벽돌집은 흔치 않았다. 빨간 벽돌집을 지어 이사오던 날 왠지 어깨가 으쓱했다.
‘이 동네에서 우리 집이 제일 예뻐’
처음으로 내 방도 생겼다. 침대도 넣었다. 친구들도 초대했다. 마당에서 고무줄놀이도 하고, 내 생애 첫 반려견 ‘깨동이’도 키웠다. 하지만 어릴 때는 커 보이던 집이 나이가 들수록 좁고, 낡고,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당시에 친구들은 몇 번의 이사로 더 큰 아파트로 이사 갔다. 물론 이사를 가면서 재산도 쑥쑥 늘어나는 것으로 보였다. 겨울에 내복은 기본이고 옷을 여러 겹 껴입던 나와 달리 친구들은 아파트에서 반팔로 지낸다고 했다. 부러웠고 부끄러웠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을 초대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더니 대학 이후로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회사를 들어가고 나서는 혹시 사람들이 내가 어디 사는지 물을까 봐 애써 말을 돌리기도 했다. 좋은 동네 좋은 집이 아닌 것을 들키기 싫었던 이유에서였다. 나는 잘 사는 집 딸처럼 보이고 싶었나 보다.
겨울에 추위가 싫어서 엄마한테 매번 짜증을 냈다. 가난이 싫다고 외치기도 했다. 엄연히 성인이었던 내가 돈을 더 벌어 더 좋은 집을 사면 될 것을 부모 탓만 하고 있었다. 절대적으로 가난하지도 못살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맘대로 안 되는, 남들 삶과 비교하고 있는 못난 나였다.
그런데 그 집을 이사 갈 때는 그렇게 눈물이 났다. 부모님의 첫 집이자, 부모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집을 나는 무시했다. 물론 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던 집이었는데 소중히 여기지 못했다.
어제 옛날 집이 또 꿈에 나왔다. 아파트로 이사 온 지 7년이 넘었는데 희한하게도 절대로 지금 사는 집이 꿈에 나오지는 않는다. 매번 옛날 집만 꿈에 나온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일까, 해결하지 못한 감정들이 남아있어서일까. 아버지가 그리워서일까...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계속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대로 있고 싶나 보다. 지금은 알지 못했던, 깨닫지 못했던 그 옛날의 소중한 시간들이 그립나 보다. 후회하나 보다. 돌아가고 싶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