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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Oct 29. 2022

행복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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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5회로 연재됩니다】


-오늘 풍속은 된바람이 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초속 12미터 강풍이 예상되므로 농작물 시설과 건물 간판을 점검해주시고 화재예방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라디오를 끄고 내비에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입력했다. 의회 회관 옆길로 들어가 성당으로 진입하기 직전 대형 신문사 뒷골목에 깜빡이를 켠 화물차에서 책상과 의자가 내리고 있다. 회오리바람에 인부가 쓴 뉴욕 양키즈 야구모자가 원을 그리며 공중으로 날아갔다. 토성의 가을은 북반구에 거대한 육각형 폭풍이 불면서 시작된다는 글을 어디에선가 읽었다. 성당 입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비행접시라도 뜬것처럼 뿌연 먼지뭉치가 군데군데 엉켜있다.       


물 빠진 청바지에 감청색 윈드점퍼를 받쳐 입은 호리호리한 남자가 주차장 앞 벽에 붙은 작은 예수상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서성댔다. 희끗희끗한 머리색만 다를 뿐 한눈에 척 봐도 파일에서 본 김명수다. 쉰 살이 다 되도록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 옆에만 붙어 살던 인물치고는 얼굴에 기름기가 돌지 않아 낭인 같은 인상이다. 화강암과 붉은 벽돌을 섞어 지은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차문을 여니 바람이 훅 덮친다. 파일을 손에 꼭 쥐었다.


-김명수 선생님?     


눈동자를 좌우로 한번 굴리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제 차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아는 수녀님께 미리 부탁을 드려놨어요     


문이 반쯤 열린 사무실 앞까지 가는 동안 김명수가 두어 번 뒤를 돌아봤다. 스무 살이 갓 넘어 보이는 수녀가 한눈에 봐도 유서 깊어 보이는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비둘기 색 수녀복 자락이 센 바람에 훌러덩 뒤집어지고 휘몰아친 바람에 사무실 문이 쿵 닫혔다. 주교관 입구 돌계단에는 색 바랜 꽃댕강나무 이파리가 수북이 쌓였다. 백년은 넘었음직한 목조건물 유리문 앞에서 신발을 벗고 왁스로 반들반들 칠한 나무 복도를 지나 맨 끝 방문을 열었다. 정면에 양 떼를 모는 예수 성화 액자가 하얀 벽에 걸려 있을 뿐 아무 장식이 없는 정갈한 방이다.      

 

-전화에서 미리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면담 순서를 시작하겠습니다. 파일 확인이 끝나고 말씀을 하시는 순간부터 녹음을 할 텐데요. 통화에서 동의하신다고 하셨으니까 이의는 없으신 것으로 압니다만 별도로 하실 말씀 있으시면 녹음 전에 지금 하셔도 됩니다

-녹음은 제가 동의할 때만 했으면 합니다

-어떤 경우에 동의하실 건가요?

-경찰 손에 넘어가는 순간부터 저쪽은 증거인멸을 시도할 게 뻔합니다. 제가 이번에 다 제공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지 않겠습니까     


조사팀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장대리 말이 맞았다. 정보를 오래 다뤄본 사람은 의심하는 촉이 남달라서 한 가지 패는 끝까지 쥐고 있다. 김명수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왼손 약지에 낀 밋밋한 금반지가 잘 어울리는 가늘고 흰 손가락이다. 파일 실끈을 풀어 얼굴이 굳은 김명수 앞으로 밀어 놓고 공무용 녹음기를 꺼냈다. 김명수가 마지막 파일을 넘길 때 재킷 왼쪽 주머니에 슬그머니 손을 넣어 녹음 USB의 볼록한 윗면을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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