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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Oct 29. 2022

기만의 사회학

5

【이 소설은 5회로 연재됩니다】

   

서미자 녹음파일을 들은 국장은 결정적 한방이 필요하다며 보완조사를 지시했다. 출장 파일을 정리할 때 눈치 백 단 장대리가 무슨 조사인지 소외감 느낀다고 농 반 진 반 던졌다. 마터호른과 로라이마가 합친 곳을 살펴보는 중이라고 응수했다. 자기가 끼어들만한 한마디만 나오면 맹랑한 입재간을 참지 못하는 장대리가 침보라소 수준이냐고 싱긋 웃으며 물었다.


-훔볼트 얘기까지 꺼내면 머리 아퍼지니까 그만. 꿀 빠는 일은 아니지만 출장길에 지역특산품 꿀 한 병 사 올 테니까 그거 먹고 다 같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아이 참. 팀장님은 꼭 중간에 말 끊으시는 게 고질병이라니까요. 팀장님, 사실은요

-됐고!


조종은 며칠 사이에 바위산 한쪽 길목이 훤히 트였다. 이승룡 집은 낮은 양철지붕이 내려앉은 대폿집 옆길로 구불구불 이백여 미터 들어가 다섯 동이 옹기종기 모인 빌라 세 번째 건물에 있다. 차문을 열자 빌라 앞 벚나무에서 말매미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잡다한 살림살이가 어질러진 집안에 혼자 있던 부인이 핏기 없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 고려장 지내러 안 간다고 악을 쓰던 시아버지를 울고불고 겨우 달래 엊그제 시동생이 청평 요양병원에 모셨고 본인은 남동생이 사는 광주로 곧 떠날 거라고 했다.    

 

-이젠 경찰 경자만 들어도 경기가 날 지경에요. 제 몰골을 보세요. 오늘 아침에 처음으로 밥 한 숟가락 떴네요. 심신이 너무 힘드니까 짧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경찰에 다 말씀을 하셨겠지만 그래도 빠진 게 있거나 꼭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지금 해주세요. 저희가 넘길 때 정상참작이 될 수 있습니다

-명예야 뭐 이젠 죽은 사람이니까 그렇다 쳐도 재산은 지킬 수 있나요?      


방에서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들고 나온 부인이 네댓 장 넘기다가 손가락으로 한 인물을 짚었다.     


-이 사람요. 이 인간이 동창이잖아요. 대학 4학년 때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소년급제 했다고 조종이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때 우리 남편은 군대 다녀와서 시댁 약초 농장 일을 거들고 있었데요. 촌에서 사법고시 한 명 나오면 그 지역 전체에 현수막 붙고 호들갑이 말도 못 해요. 초등학교만 여기서 졸업하고 구로 문래동 마찌꼬바에서 용접 일하는 아버지 따라 중학교 때 서울로 이사 갔어도 고향에 큰집이며 일가붙이들이 살고 있으니까 인사하러 내려왔더랍니다. 우리 남편이 축하해 주러 조종 사람 다 모인 능이오리백숙집에 갔더니 실실 쪼개며 남편 보고 그러더래요. 넌 여전히 촌티가 풀풀 난다, 이런 축하연 자리에 잠바 입고 오는 놈이 어딨냐, 이랬다는 거에요. 면장에 서장에 조합장까지 우리 시어른 알 만한 사람은 다 모인 자리에서 대놓고 무시를 하더랍니다. 그래도 남편은 시아버지 체면 봐서 꾹 참았답디다. 큰애 낳자마자 장옥 열었고요. 애들 자랄 때 물놀이 한번 못 가고 밤낮없이 일했어요

-어려운 분들도 많이 도와주셨다고 하던데요

-그거야 정치하려면 터를 닦아야 하잖아요. 도배봉사도 공장에서 파지로 버리는 거 거저 갖다 해서 돈은 안 들어갔어요. 문짝 같은 자재도 철거하는데서 공짜로 실어 왔고요. 그런 하찮은 일에 일일이 돈 쓰면 돈을 어떻게 모아요. 남편이 재산도 늘고 이름도 날리니까 그 인간이 어느 날 전화를 했더라고요. 고향 밥 한번 먹어보자고요. 개밥 찌꺼기 같은 밥이나 파는 조종 식당 말고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겠다는 거에요

-부담되셨겠어요

-아휴, 말도 마세요. 조종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문어까지 영덕에서 공수하고 명절에도 애들한테 양껏 못 먹이던 갈비에 1등급 한우육회하고 인삼주까지 말도 마요. 누가 보면 대통령이라도 납시는 줄 알았을 정도로 차렸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주 열불 나요

-혼자 왔나요?

-집에는 혼자 들어왔는데 갈 때 보니까 운전석에 양복 입은 웬 남자가 앉아 있더라고요. 사람을 두 시간 넘게 혼자 차에서 기다리게 해 놓고, 지는 걸신 걸린 것 마냥 문어숙회에 육회 접시 다 비웠어요

-그때가 언제인가요?

-도지사 출마 전에요. 어디더라? 그 왜 특활비 부정으로 유명했던 곳 있잖아요.

-의원님 댁에 왜 밥 먹으러 온 건가요?

-왜 긴요. 돈 뜯으러 왔죠. 가진 거라곤 때가 낀 스뎅 밥그릇 몇 개 밖에 없는 집구석 출신에다가 마누라도 별 볼일 없는 신인 여배우였는데 무슨 돈이 있겠어요. 향우회 회장을 울 양반이 두 번이나 했거든요. 고향 좋다는 게 뭐냐 그러면서 향우회 같은 데서 자기 밀어주면 자기도 울 남편 뱃지 달게 해 주겠다고요. 저 더러는 의원 사모님 소리 들으실 분이라고 몇 번이나 얘기하는지 민망해서 혼났어요. 제가 남편하고 싸우면서 많이 말렸어요. 법 주무르는 사람은 무섭잖아요. 근데 그이가 뭔 귀신에 홀렸는지 더 미치도록 사업을 확장하는 거에요. 시아버님도 송충이는 솔잎 먹고살아야 한다고, 잘못하다간 패가망신한다고 정치판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얼마나 혼을 냈게요. 고집이 어찌나 고래심줄 같은지 말 안 들었죠. 남편 몰래 용인까지 가서 기문둔갑으로 용하다는 도사한테 점을 봤거든요. 정치에 나가면 망나니 귀신이 명치에 붙어서 해찰 부리고 까딱했다간 망나니 귀신에게 아랫도리를 잡힐 수라 용빼는 재주가 없다는 말 듣고 기함해서 이혼 서류에 도장 찍자는 말까지 나왔어요. 우리 집 양반 그렇게 가고 나서 조문도 안 온 그 놈이 기자들한테는 얼굴도 잊은 동창일 뿐이라고 유들유들 웃으면서 도덕군자 행세하는데 기가 막혀서. 사람이 진짜 그러면 안 되잖아요.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말 다르고 하는 짓 다를 수가 있는지. 조사관님, 제가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그 인간이 청소년 숲 체험 센터 건립하는 거 뇌물 요구하면서 특혜 준 거랑 아들 유학비 꼭 처벌받는 거 보고 싶어요. 얼마나 악질인지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야 해요. 인간이 양심이 없어요. 지금 그거 조사하나요? 

-네. 의원님에게 다른 명의 계좌 얘기는 들으셨나요? 조사하면 나오긴 해요

-집엔 없어요. 가겟방에 찾아봤더니 거기도 없어서 곰곰이 생각했더니 화도 사는 시누이 집에 중요한 물건을 맡겨 놓은 게 있다고 그랬던 게 생각나요. 시누이는 농아라서 누구에게도 말을 할 것 같지 않으니까 맡긴 거죠. 그 인간에게 서울 아파트 한 채는 들어갔다고 남편이 그랬어요. 그 집 아들 미국 유학할 때도 용돈 하라고 나눠서 수천만 원이나 쥐어주고. 아휴, 다 미친 짓이지. 조사관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남편 욕심 없고 인정 많은 건 춘천이나 소흘 사람까지 다 알아요. 결국 더러운 갈보년에게 넘어가 이런 분탕질이 생길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마누라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오밤중에 차 안에서 딴년하고 오입질이라니. 대한민국 사람들이 지금 이거 다 알잖아요. 의원 사모님 소리 듣던 내가 하루아침에 복상사로 죽은 놈 여편네가 됐는데 이런 개망신이 어딨겠어요. 파리 새끼마냥 손 비비던 인간들 누구 하나 아는 척 안 하는 거 보면 세상인심 참 더러워서. 아휴, 제 터지는 속을 누구한테 터놓고 말할 곳도 없구요. 오죽하면 조사관님에게 이런 꼴을 다 보이는가 싶어요. 창피해서 여기서 더는 못 살아요. 속이 여북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요. 시어른 모시고 조신하게 살림한 거밖에 없는 나한테 왜 이런 청천벽력 같은 헤살이 끼었는지 지금 요대로 퐉 고꾸라져서 죽고 싶은 심정에요   


화도에서 통장 두 개를 갖고 돌아오는 길에 큰 호수가 찻길 옆으로 이어졌다. 띄엄띄엄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앉은 낚시꾼들이 붓으로 먹물 한 점씩 찍어놓은 것 마냥 움직임이 없다. 혜덕화는 도지사 문제를 사회화하고 남편의 문제는 개인화했다. 자동차 뒷좌석에서 잠자는 철학자 김영민 선생 아포리즘 ‘차마, 깨칠 뻔하였다’에서 말한 “사람만이 절망이다”를 곱씹을 것도 없이 공모자였음에도 자신 쪽의 행동은 당연히 축소하는 편향되고 왜곡된 그 마음이 인간의 절망이다. 낚시터 주차장 구석 포플러 나무 그늘에 차를 세우고 윤슬에 눈부신 수면을 바라보며 새우깡에 소주 반 병을 마셨다. 수제비 반죽을 뚝뚝 떼어 놓은 것 같은 구름이 흘러가면 꿩 깃털처럼 기다란 구름이 밀려왔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무미예찬’에서 말한 “재현 너머 재현, 풍경 너머 풍경”이 호수 위에서 시현됐다. 차 안을 꽉 메운 Santana의 Smooth와 뒤섞인 술기운이 마취약처럼 눅지근하게 번지는 오후였다.     

 

보궐선거가 한창일 때 서미자를 포천 구치소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다음날 청주로 이감된다고 했다. 새빨간 매니큐어가 얼룩덜룩 벗겨진 손톱을 오므리던 서미자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외로운 사람 위로해 준 게 뭐가 큰 잘못이라구. 의원님이 얼매나 외로워했는지 아무도 몰라요. 소처럼 일만 하다 보니 예순이 되었다고 그러면서 마누라도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다 필요 없고 인생이 허무하다고 울었어요. 그 뭐시기 일은 내가 잘 모르지만 눈친 챘지. 막판에 건설회사까지 차린 의원님 돈 받고 그 뭐시기가 바위산 허무는 거 허가해 준 거잖아요. 명절 앞두고 극빈층 집수리나 도로정비 같은 것도 다 관 끼고 했을 테고. 나한테 물증은 없어요. 그런 걸 의원님이 나한테 말해줄 만큼 호락호락하겠어요. 내 생각이다 이거여요. 바위산이 허물어져야 차가 빵빵 다니고 사람들이 몰려오잖아요. 스키장이며 골프장에 리조트에 술집이며 가게가 막 생겨 돈이 돌 테고. 읍내 예식장이나 국도변 모텔들이 요샌 손님이 없어서 귀곡산장이 돼 간다드만. 거기 싸게 인수해서 보조금 받아갖구 요양원으로 바꾸면 돈벌이 좋을 거라고 의원님이 나한테 그 말은 했어요. 돈이 돌면 의원님 사업도 흥하고 나처럼 몸땡이로 사는 인간은 청소라도 하면서 입에 풀칠 허고요. 좋다고 하는 게 다 좋기만 한 게 안 혀듯 나쁘다고 하는 게 다 나쁘기만 허겄어요? 어쨌거나 외로운 의원님이 가여워서 정성껏 안아줬어요. 근디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 돕던 의원님이 나한텐 인색합디다. 내 진심을 안 믿은 건지 꼭 월세 낼 돈만큼만 줘요. 뭐 나도 옛날보단 기술이 떨어진 데다가 거기 아픈 게 도져서 이젠 이 짓도 다 끝났다 싶응께

-의원님에게 누구 아는 분 계좌라든가 빌려 주신 적은 없나요?


한 손으로 허리를 두드리던 서미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체 그런 건. 그 바닥은 태반이 남의 이름으로 산다면서요? 누가 나쁜 놈이냐고 따지기보다 덜 나쁜 놈이 누구냐 이거 가려내는 게 쉬울 것 같은데 안 그려요? 인자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세상에 바랄 게 한 개도 읎어요. 내 죽으면 화장 혀서 인간 새끼들 없는 심심산골 벚꽃나무 아래 묻혔으면 좋겄어요

-왜요?

-죽어서라도 이 쉬어 터진 세상 말고 꽃 피는 거나 보고 싶어서 안 그려요. 보들보들한 새순 돋으면 볕도 따듯해질 거이고, 꽃 피면 온 산이 산벚꽃으로 환해질 테고. 겨울에 눈 오면 암말 않고 묵묵히 눈이불 뒤집어쓰고 부처님처럼 잔다 안 허요

     

자신이 태어난 야스나야 폴랴나 물푸레나무 숲 햇빛이 잘 드는 밝은 땅 돌관에 누운 톨스토이 무덤이 그랬다. 6년 전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간 비석조차 없던 거인의 무덤은 고요하고 그윽하고 거룩했다. 50 루블을 주고 산 기념엽서를 자작나무 액자에 끼워서 책장 가장자리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옆에 놓았다. 어렸을 때 형이 들려준 황금 지팡이가 나오는 땅이라는 상상을 버리지 않은 성자의 무덤 같은 작가의 무덤 앞에서 인간의 언어를 버려야만 자연으로 가는 곧은길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서미자는 성매매 특별법 위반으로 3년 형을 선고받았다. 도지사는 수원 도지사 공관에서 삼청동 공관으로 영전했고 조종은 관광특수 개발지구로 지정됐다. 어려서는 능소화 줄기를 부드럽게 잇지 못하더니 정확한 착지도 못해 조사 파일은 봉인됐다. 인간이라는 부서지기 쉬운 몽상가들, 허세와 자뻑이 가득한 탐험가들, 대양을 가로질러 달리는 용감한 전사들 중에서 이도 저도 아닌 나는 실패했다. 내가 실패한 요인은 예견된 결과를 과소 평가해 벼리지 못한 안일하고 무딘 판단에 있다. 실패하더라도 인간의 삶을 지탱할 보장성 보험은 무엇인가? 돈, 사회적 지위, 권력, 지혜, 용기, 건강, 사랑...... 큰 바위산이 아니라 작은 모래더미에 부딪쳐 몸이 깨질 줄 모르면서 자기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착각은 얼마나 바보 같은가. 사소한 일상의 어느 한 부분이 생애를 결정한다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 삶이란 참으로 의외이며 정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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