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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Oct 29. 2022

기만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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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5회로 연재됩니다】  


서미자 말에 따르면 이승룡을 처음 만난 건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막 시작되었을 즈음이다. 서미자는 도로 환경미화 공공근로사업에서 만난 미소 엄마 소개로 이승룡 선거사무소에 운동원으로 들어갔다. 이승룡 소문은 조종으로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들었다고 한다. 알부자이면서 저소득층 무료 도배나 홀몸가정 아동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독거노인 집을 무상으로 수리해 준다는 얘기였다. 제 뱃속만 챙기는 아귀 같은 세상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참된 사람이라고 순댓국집 사장하고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썰을 풀었다.     


인간들이 만드는 사회에서 참된 가치와 참된 사실도 인간이 만든다. 사람에게 주목을 끄는 ‘참’은 인간이 소망하는 수사이다. 행동과 말이 일치할 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태도를 보일 때, 옳다고 생각하는 덕성을 발휘할 때 참된 사람이라고 부른다. 너그럽고 긍정적인 말만 하는 데다가 교내에 떨어진 쓰레기도 직접 줍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 추천까지 해준다고 해서 별명이 ‘참 선생’이었던 회계학 원리 교수는 이제 막 취업을 해서 원룸 월세 내기도 빠듯한 제자들에게 밥값을 대신 내게 하고, 병원비를 결제하게 했으며, 해외여행 항공료까지 뜯었다. 본인은 연봉 1억 원을 받으며 제자들 앞에서 돈이 없다고 울상을 짓고 하소연에 능숙한 그 교수는 영혼까지 좋은 생각으로 살아야 참된 사람이 된다고 입술 가장자리에 허연 침을 고이며 말했다.  


자신은 도덕이나 법을 초월한 존재인 줄 아는 부류는 이미지 조작을 통해 도덕이나 법을 비웃으며 ‘참’을 행한다고 으스대며 자만한다. 어려서부터 질문이 많아서 선생이나 부모에게 성가신 아이였던 내가 편의적 도덕관을 경계하게 된 회계학 교수 일화에서 보듯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와 태도는 수많은 유기적 관계의 결과물로 단편적이지 않다. 승리했을 때, 성취했을 때, 많이 가지게 되었을 때 나무가 물을 향해 뿌리를 뻗는 것처럼 나타나는 행동에서 ‘참’과 ‘교만’이 드러난다. 패배했을 때, 이루지 못했을 때, 가진 게 없을 때에도 ‘참됨’과 ‘옹이’같은 마음가짐이 나타난다. 대가 없는 봉사, 대가 없는 헌신, 대가 없는 나눔이 어려운 것은 이익을 저울질하는 인간의 계산본능 때문이다. 이승룡처럼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일수록 계산속도가 빠르다.        


서미자가 참된 사람으로 알고 있던 이승룡을 만나기 위해 선거 사무실이 있는 거북이 슈퍼 3층에 간 첫날, 운동원 반장인 새마을 부녀회 부회장이 선거 운동 주의사항을 칼칼한 목소리로 알려줬다. 보건소에서 본 파란색 나일론 가리개 안쪽에서 이승룡은 구름과자를 꼬나문 채 살집이 퉁퉁한 또래 연배인 듯한 남자 두 명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젊었을 때 용산, 신흥동, 평택에서 놀던 서미자가 보기에 복잡한 기하학무늬가 아롱진 앵두색 넥타이를 매고 어깨에 빳빳한 심이 한주먹은 들어간 펑퍼짐한 진회색 양복을 입은 이승룡 첫인상은 시골에서 잡동사니 짐이나 나르는 노새 같은 몰골이었다. 반장이 서미자를 가리개 뒤로 데리고 오자 변두리 금마차 라이브 카페나 삼차원 단란주점 같은 유흥음식점에서 온갖 남녀의 유흥을 경험한 백전노장의 빛바랜 분홍 레자 소파에 앉아 힐끔거리던 노새가 잘해보자며 악수를 청했다. 노새가 계단을 내려가고 나서도 사무실은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운동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삼사일이 고비라던 미소 엄마 말처럼 몸이 물먹은 솜이불같이 천근만근 처져서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에는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상체를 일으켰다. 달세 내고 오래간만에 일출봉에 원정 가서 춤추는 상상을 하며 기어오르다시피 거북이 슈퍼 3층 계단을 올라갔다. 운동원들은 아침 일찍 출석 점검 차 사무실에 모여 자양강장제를 마시며 욱신거리는 몸을 서로 주물렀다.


운동원들은 어제 저녁 남편과 부부싸움 한 얘기부터 준비물을 놓고 간 아이 등교와 시어머니 김치 맛까지 품평했다. 한바탕 언어유희가 끝나면 파란 띠를 어깨에 두르고 우르르 계단을 내려갔다. 교회, 사거리, 농협 앞, 주차장을 옮겨 다니며 기호 2번 이승룡, 기호 2번 성실선생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선거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씰룩씰룩 대고 팔을 높이 들어 좌우로 흔들어댔다. 관절이 제 각각 덜그럭거렸지만 돈 생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일주일이 되니까 허벅지에 탄력이 붙고 등줄기가 꼿꼿해졌다. 쉰 살을 넘으면서 갱년기로 우울하다가 모처럼 활기찬 기운이 돌아 아침마다 정성 들여 화장했다.      


예전에 같이 공공근로 일을 하던 여자들은 붉으래 죽죽 푸르래 죽죽한 옷들을 태나지 않게 걸치고 돈타령에 남편 타령에 신세타령을 했다. 서미자는 때 빼고 광 내 본 적 없을 것 같은 인생살이가 측은해서 적당히 자기 과거를 윤색하며 맞장구를 쳐줬다. 월세 10만 원짜리 컨테이너에서 살망정 화사하게 화장하고 화려한 잠자리 날개 같은 블라우스에 발목까지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 다녔다. 네일숍에서 5만 원 주고 다듬은 손톱이 망가지지 않게 면장갑을 두 겹 끼고 호미를 잡았다. 앞에서는 예쁘다, 젊어 보인다, 부러워하던 여자들은 영세민 주제에 영락없이 카바레 나가는 여자 같다고 뒤에서 수군댔다. 미소 엄마에게 소문을 전해 들은 서미자는 메뚜기 이마빡만 한 조종에서 뭘 알겠냐고 코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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