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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공룡 Sep 30. 2021

할아버지의 흔적

< 윤공룡 그림일기 >

할아버지의 손편지(왼쪽), 할머니의 손편지(오른쪽)







  자취방에서 짐을 빼고 본가로 내려오면서 자주 애용하던 손목시계를 어디에 뒀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잃어버린 시계를 찾기 위해 이방 저 방 온 방을 뒤지던 중 잊고 지내던 편지와 일기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시절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지 문뜩 궁금해져서 시계 찾던 것도 잊고 자리를 잡게 되었죠. 역시나 지금과는 다른 생각을 했었고, 어린 나이였지만 지금은 생각해낼 수 없던 기상천외하고도 이상한 생각들과 아이디어들이 적혀 있는 일기장. 그리고 학생 때부터 군생활하던 순간까지 받았던 편지들에는 젊은 10대와 20대의 풋풋함이 그대로 묻어있었습니다.


  특히 군생활에 썼던 '소중한 나의 병영일기(일명 소나기)'가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하나 펼쳐 보며 20대 초반의 활기 넘치던 그 시절에 푹 빠져있던 순간...! 갑자기 일기장 사이에서 아래로 쪽지 하나가 툭 떨어졌죠. 여동생이 가족에게 받아서 보냈던 롤링페이퍼와 편지였고, 거기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직접 볼펜을 들고 적어 내려 간 쪽지가 있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2014년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1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점차 회복하시어 4년 동안 요양병원 생활을 하시고 2018년에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지금까지 할아버지의 흔적이 하나도 없어서 마음 한편이 무거웠었는데... 이렇게 잊고 있던 쪽지를 발견하게 되니 마음속에 잊고 있던 소중한 기억을 찾은 느낌이었죠.


  사실 지금까지도 후회되는 것은, 할아버지가 아프시기 전 건강하실 때 왜 같이 사진 한 장도 못 찍었는 지에 대한 것입니다. 흔히 찍을 수 있는 핸드폰 셀카마저 한 장 없어서 할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커져만 갔었는데, 이 쪽지가 비록 맞춤법은 틀렸어도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서 진심을 담은 할아버지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할머니께 좋은 손자의 모습을 보여드리면 할아버지도 좋아하실까요? 어쩌면 저는 오늘 찾으려고 했던 손목시계와는 비교도 안 될 소중한 가치를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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