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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 Apr 21. 2024

어려움이 떠난 자리에 남은 흔적

열여섯 번째 주, 사람과 관계에서 얻은 교훈




일주일을 집어삼켰던 지난주의 위기감이 진정되기는커녕 심화하였던 한 주였다. 


문제의 시작이 나의 선택으로 시작된 것이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문제가 될지도 몰랐던 것이 현실이 된 것엔 복합적인 요소가 혼재되어 있었다. 뉴스 소재라고만 생각했던 거시경제, 국내외 정세, 선거, 불안정한 시황 등 대내외적 이슈들은 어느새 나의 문제와 밀접하게 동기화돼 있었다.


이제는 혼자 아등바등해 봤자 뭘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난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전화를 돌리기로 했다. 도와달라는 의미였고 도움의 목적은 명확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성향 자체가 부탁을 잘 못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성향을 존중해 줄 여유 따위 더 이상은 사치였다. 


폰의 연락처 앱을 실행시키고 열심히 스크롤을 내렸다.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oo님. 부탁드릴 일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통화 가능하실 때 답장 주시면 제가 전화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분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전, 오타는 없는지 멘트는 정중하고 적정한지 검토를 거듭했다. 이 정도면 괜찮다 싶어 전송 버튼을 눌렀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만 남았다.


'잘하는 일일까?'

'혹시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지?'

'관계가 어색해지진 않을까?'

'아 몰라. 이런 생각할 여유가 어딨어?'


카톡의 숫자 1이 사라지기 전까지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아랫배에 기분 나쁜 싸한 느낌이 지속됐다. 뭔가 긴장할 때마다 등장하는 그런 기분.. 20분 정도 흘렀다. 이제는 아랫배가 그러거나 말거나 할 때쯤 메시지를 보낸 지 25분에서 30분 사이 모두에게 연락이 왔다. 차례로 연락이 와서 통화 시간이 겹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럼요. 윤기 님 부탁인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제가 당장 생각나는 한 분이 있는데 그분 연락처 바로 전달할게요. 그리고 그분께 윤기 님 잘 챙겨달라고 연락 한 통 넣어두겠습니다."


"아이고. 요즘 시황이 어렵다고 하더니 윤기 님한테까지 어려움이 있었네요. 제가 내일부터 직접 나서볼게요. 수소문을 해봐야 하니 며칠 걸릴 수도 있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해결될 수 있을 거예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나자 몸에 힘이 빠졌다. 감사함과 안도감 때문에도 몸에 힘이 빠질 수 있단 걸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녹아버린 탓이었을 거다. 이들의 반응을 보며 몇 분 전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걱정했던 모습이 떠올라 되려 죄송했다. 이들은 마치 언제라도 도움을 주려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았으니까. 어조에서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 마음이 드러났다. 만약 이분들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자기 일처럼 도와주겠단 마음을 받은 것만 해도 호흡을 차오르게 만들었던 문제를 잊게 할 만큼 황홀한 경험이었다.






"윤기 씨, 올라갈 때 보이는 옆 사람을 잘 챙겨야 해요. 언젠가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나게 될 텐데, 그때 그 사람들이 윤기 씨를 도와줄 사람들이에요."


10년 전, 어느 강의장에서 만난 어르신의 말씀을 언제나 마음 한편에 간직하며 살고 있다. 당시에도 큰 울림이 있었던 탓도 있지만 삶의 마일리지가 쌓일수록 그때 해주신 말씀의 무게가 몇 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나 잘난 맛에 살 때도 있었으나 실제로 나 혼자만 잘나서 될 수 없단 걸 깨닫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혼자 할 수 있단 것의 대부분은 재능과 노력에 운이 더해진 경우라 존재 여부 자체가 논란이 되는 운이란 것을 제외하면, 혼자 잘나서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무사히 진행된 것의 이유를 차분하게 따져보니 대부분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부모님, 친구, 지인, 인지하지 못한 어떤 분들까지.


결국 10년 전 만났던 어르신의 말씀엔 삶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었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노력과 시간도 중요하지만 나를 응원하고,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챙기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물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뜻밖의 도움을 주는 경험을 해왔고, 어느 정도는 어르신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도움을 받고 나니 여전히 부족하단 결론에 도달했다. 언제, 어떻게, 누구와 도움을 주고받게 될지 모른다.


몸에 좋은 약이 쓴 것처럼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려움은 언제나 진득한 교훈을 남기고 떠난다.

이번 주, 사람과 관계의 중요함을 되새기는 7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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