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주, AI 시대에서 글쓰기 행위에 대하여
대단히 그렇진 않지만 때로는 대단히 그렇기도 한 편협한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나'다.
수요일 오후. 4시쯤이었나... 소리 없는 뜨뜻한 숨이 코로 뱉어지는 순간 H의 얼굴이 떠올랐다. 달리기에 소질이 있는 H는 소설 쓰는 게 취미이기도 한 재밌는 친구다. ‘바쁘려나...’ 잠도 깰 겸 글쓰기에 진심인 H에게 안부 인사 메시지를 보냈다. 마침 자기도 졸리던 참이었다며 곧바로 답장이 온 H와 쓸데없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다. 텔레파시 존재 여부에 열을 올리던 이야기는 어느새 글쓰기로 이어졌다.
주제는 AI였다. 최근 H는 글을 쓰며 AI의 도움을 받는데 부쩍 관심이 간다고 했다. 그러더니 앞으로는 AI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겠단 말을 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AI가 쓰는 것이지 H가 쓰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정제될 틈도 없이 노란색 말풍선 안에는 이미 실망스럽다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아차 싶었다. 아마도 이때는 내가 아닌 H의 글을 좋아하는 팬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팬의 입장에선 AI의 도움을 받겠단 H가 더 AI같이 느껴졌다. 다소 과격한 표현에도 H는 흔들림 없이 점잖게 자신의 의견을 전개했다. 작가들이 글을 쓰기 전 자료를 조사하듯 AI를 이용하는 것도 이와 다름없다는 논리였다. 더 나아가 AI에게 명령어를 입력하고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한 노력은 H의 몫이니 AI의 도움을 받더라도 그 결과물은 온전히 본인의 글이라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 전혀 흠을 잡을 수 없었다. 인간이 하는 것 중의 일부를 AI에게 지시하는 것뿐, 뭐가 다를지 생각해 보니 딱히 다를 게 없었다. 사전 조사에 더 빠르고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창작을 위한 시간을 오히려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AI가 얼마나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줄지, 창작하는 데 얼마큼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의 역량도 AI의 기술 못지않게 중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AI가 글을 쓰는 것'과 'AI를 활용해 글을 쓰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단 결론을 내렸다.
H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지도 않고 무례한 말을 한 것에 사과를 건넸다. 팬의 얼굴을 한 빌런은 편협함에 잠식당한 줄도 모른 채 가시 돋친 말을 배설하고 말았다. 혹시나 H에게 상처로 남을까 걱정됐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나 편협한 인간이었다니...' H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마음이 넓은 H는 다행히 사과를 받아 주었다. 아니, 오히려 내 생각도 틀린 것이 아니니 사과할 필요 없다며 토닥여주었다. 심성이 착한 사람을 친구로 둔 것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남은 일과시간도 힘내자며 마무리를 한 후, H와 나눈 주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창작물에 대한 정의는 어디까지일까.'
'언제부터 편협한 사고에 갇혀있던 걸까.'
생각을 거듭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답을 얻기 쉽지 않았다. 어떤 것이 문제인지조차 찾을 수 없었다. 살아오면서 저 밑바닥 어딘가에 침적된 경험들이, 논리를 무시한 채 새로운 시대와 변화를 거부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평소에 극도로 경계하던 것인데 나도 모르게 그런 인간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니 두통이 올 것만 같았다. '꼰대를 넘어 시대의 흐름에 도태된 인간이 되어가고 있던 걸까.' 이러다간 정말로 두통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이 문제는 일단 옆으로 치워두기로 했다. 대신에 그동안 글쓰기를 통해 어떤 즐거움을 얻고 있었는지, 왜 글을 쓰고 있는지에 집중해 봤다. 그러다 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추억을 남기기 위해 기록을 하고 있었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는 단순하게 보면 기록에 속한다. 기록을 왜 하는 것인가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활자가 되었든, 이미지가 되었든 기록의 과정은 만만치 않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같이 웃고, 함께 있는 공간에 떠도는 내음까지 세포 하나하나에 저장하는 과정을 겪은 후 기록으로 옮기는 것이 열정 없이 되기란 어렵다. 이 순간을 겪으며 차곡히 쌓인 감정은 하나의 페이지가 되어 역사가 된다. 수십 년이 흘러도 과거 소중했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 같은 상자를 만드는 시간이다. 그 때문에 이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영혼을 새기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있다.
AI를 활용해 쓴 글이라는 정보가 없다면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지, 그런 글에서 어떤 감동을 느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AI를 활용한다고 해서 이 과정의 순수함이 퇴색될 일은 없을 거란 결론을 내렸다. 기어코 감정을 끄집어내어 과거로 돌아갈 타임머신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H의 말이 맞았다. AI를 활용한다고 해도 그건 H의 글이다. 먹구름처럼 밀려온 수많은 질문 속에서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후 새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당장 AI를 이용해 글을 쓸 것이냐 묻는다면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좋으니 그 시간마저 즐기고 싶다고 대답할 것이다. 다만, AI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최소한 그것에 순응할 마음의 준비는 갖추게 되었다고 H에게 말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서 표류할 뻔했던 찰나, 선입견 없는 H의 순수함으로부터 새로운 동력을 선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