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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글 Nov 08. 2024

헤어질 결심

 은우엄마의 소식,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은우의 의대 합격과 은아의 과학고 재학이라는 소식을 들은 이후 꽤 오랜 기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대단하게만 보였던 아들 하준의 학교가 한없이 초라해 보이고 딸 하진의 말도 안 되는 시험점수가 눈앞을 캄캄하게 했다. 떠먹여 줘도 아무것도 못 받아먹은 하준과 하진이 꼴도 보기 싫은 날들이었다.

 

 뭐가 잘못이었던 걸까, 남편 말대로 내가 너무 극성이었나, 철석같이 믿어왔던 내 교육관이 문제였던가, 되짚어보고 속앓이 하고 스스로를 긁어내는 시간에 파묻히다 이대로는 그 촌스러운 은우엄마에게 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핸드폰을 들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나와 같은 사람을 통해 들을 수 있으리라. 혹여 만에 하나 내가 틀렸더라도, 같이 틀린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해서 내 마음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리고, 현우엄마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어머 하준엄마. 요즘 통 연락이 없더니 웬일이야. 하준이 학교 보내느라 바빴어? 카톡 프사도 하준이 입학식 사진으로 바꿨더라? 우리 자랑스러운 하준이는 학교 잘 다녀?"

 잠깐 잊고 있던 현우엄마 특유의 까슬하고 하이톤 목소리에 머리가 지끈 했지만, 말 한마디도 올곧게 하지 않고 비꼬는 듯한 말투에 지금 내 얘기를 들어줄 최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현우엄마. 현우엄마랑 현우도 잘 지내지? 그쪽 학교는 어떻대? 수업분위기는 괜찮대?"

 "글쎄, 현우가 그런 얘긴 없긴 했는데. 아무래도 전국에서 똑똑한 애들만 모아놨으니까 그렇지 않을까? 하준이네 학교도 비슷하지 않나?"

 지금이다.

 "그래? 근데 뭐, 전국에서 똑똑한 애들을 모아놓긴 했는데 제일 똑똑한 애들은 아니잖아."

 "어머, 하준엄마 욕심은? 고대, 연대면 전국에서 최상위에 드는 애들이야. 왜 그러실까. 하준이 합격했다고 들떠서 커피 사줬던 때가 어제면서."

 "내가 또 언제 들떴대.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준이 아빠 친구 아들이 있는데, 이번에 서울대 의대를 갔다네?"

 "어머, 서울대? 의대? 대단하네. 아~ 그래서 하준이 엄마가 기분이 안 좋았구나?"

 내 속을 계속 긁어대는 현우엄마의 목소리에 전화를 끊어버릴까도 하다 이미 말을 꺼냈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로 했다. 

 "기분이 안 좋았다기보다는. 그 집이 근데 애들 학원도 안 보내고 사교육에 돈을 거의 안 썼거든. 내가 알기론 그래. 그게 가능한가? 아니, 하준이나 현우나 거기까지 가는데 들인 돈이 얼마야."

 "... 정말? 애들 엄마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인데?"

 역시, 현우엄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꼬였던 배알이 조금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 안 해. 대단하지도 않아. 애 아빠는 그냥 평범한 회사 다니고, 애 엄마는 몇 년 전부터 방과 후 교사 한다던가, 어디 출장 강사한다던가. 어쨌든 정식 교사 아니고 계약직 일 하는 거 같았어."

 "어머, 그런데 아들을 서울대 의대에 보냈단 말이야? 무슨 수로?"

 "그러니까, 심지어 00시 알지? 거기에 살거든."

 "아, 하준엄마 이사 오기 전에 살던 동네? 무슨 일이래, 그 동네에 현수막 붙었겠네."

 아무렇지 않아 하듯 대답하는 현우엄마였지만 미묘하게 목소리가 가라앉는 것이 수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그와 비례하게 내 속은 점점 편안해져 가고 있었다. 매번 내가 예전 살던 동네를 은근히 까내리곤 해서 기분이 상한 적이 여럿이었지만, 이번엔 그것마저 거슬리지 않았다. 마지막 한 방 더 가야지.

 "현수막이 붙었는지 안 붙었는지는 모르겠어. 걔 집 딸은 심지어 과학고거든. 대전에 있는, 왜 예전에 현우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현우엄마가 보내고 싶어 하던 거기 있잖아. 근데 중학교 때 현실파악 했다고 포기했잖아. 거기 다닌대."

 "... 아, 거기? 거기를 또 동생이 다닌데? 오빠는 서울대 의대고?"

 현우엄마의 목소리는 급격히 가라앉았는데, 그것은 현우 엄마가 아닌 일반 사람으로 치자면 거의 울기 직전의 상태였다. 이제 내 속은 거의 다 나았다. 

 "그렇다네. 내가 애들 영어유치원 보낼 때 같이 보내자고 해도 꿈쩍도 안 하던 사람이거든. 그 이후에도 뭐 딱히 학원은 안 보내는 것 같더니, 어디 인터넷에서나 그런 일 있는 줄 알았지 실제로 내 주변에 이런 사례가 있을 줄 몰랐네."

 신이 난 것을 숨기지 못하고 현우엄마에게 이야기했더니 현우엄마는 약간 화까지 나는 듯 말했다.

 "그런 애들은 그냥 타고 난거지 뭐. 알잖아 하준엄마도. 그런 얘들은 그냥 유니콘이야 유니콘. 천 명에 아니 만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경우 아니야? 엄마 아빠가 전생에 덕을 엄청 쌓으셨나 보네."

 나는 더 신이 나 대답했다.

 "그런 것 치고는 아들 딸 둘 다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는 게 조금 신기하지 않아?"

 현우엄마는 잠깐 침묵하더니 돌연 기세를 바꾸고는 아예 대화의 주제를 틀어버렸다.

 "근데, 의대 가서도 적성 안 맞아서 자퇴하는 애들 많다더라?"



 한참 동안 현우엄마와 이야기를 하고 나니 속이 한결 괜찮아졌다. 역시 현우엄마에게 전화 걸길 잘했다, 싶던 때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아들 하준의 방이 벌컥 열리며 하준이 튀어 나왔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았더니 이미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아, 깜짝이야. 김하준. 너 왜 이 시간에 집에 있어? 학교 안 갔어?"

 "은우 형 어릴 때부터 원래 공부 잘했거든? 나한테 책도 엄청 읽어주고."

 집에 사람이 없는 줄 알고 큰 소리로 현우엄마와 통화했는데, 하준이 있었을 줄이야. 통화의 내용을 재빠르게 복기해 보자니 얼굴이 붉어졌다. 그 이야기로 하준과 대화하고 싶지는 않아 말꼬리를 돌렸다.

 "무슨 소리야, 너 여기서 뭐 하냐구. 학교 갈 시간 아니냐구."

 하준은 까치집이 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1교시는 집에서 통학하기 너무 빡세서 시간표 수정기간에 바꿨어요. 있다가 11시 수업부터 갈 거예요."

 과연 얼굴을 보자니 피곤에 찌든 듯한 모습이었다. 피부가 부쩍 거칠어진 것 같고, 눈은 퀭해 보였다. 

 "1교시 전공필수 아니야? 전공필수는 꼭 들어야 되는 거잖아? 2학기에는 그 수업 없지 않아?"

 하준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벅벅 긁어대던 손을 관자놀이로 가져가 꾹꾹 누르며 답했다.

 "2학년때 까지만 들어도 된대요. 일단 교양 먼저 듣고 내년에 들어도 돼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무슨 소리야. 그럼 2학년 때 들어야 할 전공과목이 더 많아지잖아. 시험공부 어떻게 하려고 그래. 어휴 진짜. 너 시간표 수정한 거 가져와 봐."

 하준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괘씸한 놈.  


 지방에 사는 아이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통학을 하기에 집과 하준의 학교 간의 거리는 꽤 멀었다. 버스의 배차간격과 환승시간까지 더하면 길이 막히는 시간엔 편도 2시간 가까이 걸리기도 했으니. 

 기숙사는 진작에 떨어졌고, 어디 자취방이라도 알아봐 줘야 하나 싶었지만 아직 하준을 내 시야 밖에서 놀리고 싶진 않았다. 한 번 자식은 영원한 자식이라지 않는가, 하준이 50살이 되어도 내 눈엔 아기처럼 보일 것이었다. 

 자취방의 월세가 부담되기도 했다. 그렇잖아도 비싼 대학 등록금에 고등학생이 된 하진의 학원비까지, 한 달 한 달 마이너스가 안되면 다행인 생활을 하고 있기에 여기에 서울 집의 월세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빚더미에 나앉을게 분명했다. 명문대에 들어가면 모든 고민이 해결될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감정이었다. 은우엄마 때문에 짜증 났던 마음을 겨우 가라앉혔더니, 앞 날 걱정 없이 마냥 해맑은 아들과 통장잔고 앞에서 다시금 한숨이 푹푹 나왔다.


 소파에 털썩 앉아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내 마음의 안식처, 동네 맘카페로 들어갔다. 

 한동안 또 바빠 안 들어갔더니, 예전에 달아두었던 누군가의 학원정보 문의에 대한 댓글에 대댓글이 달려있었다.


 - 감사합니다, 연대공대맘님. 그런데 자제분이 연대공대 다니시나 보네요. 정말 부러워요ㅜ 저희 아이가 지금 목표로 하는 학교거든요. 후배 될 수 있게 저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거지. 

 온몸에 피가 도는 기분이 느껴졌다.

 내가 잊고 있었던 기분, 나를 살리는 글. 얼굴에 미소가 자동으로 지어졌다. 

 

 어느새 대충 씻고 나와 학교를 가겠다는 하준에게 손인사를 대충 하고, 다시 카페로 빠졌다.  

 아이 교육에 골머리를 싸고 있는 후배 엄마들을 보자니 어깨가 더 펴졌다. 과연 내가 가진 게 그렇게 작은 게 아니었다. 내가 가진 것은, 남들은 간절히 원하는 꿈이었다.

 기분을 좀 더 누리고 싶어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제목 : 우리 동네에서 신촌까지, 통학?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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