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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yverse Oct 17. 2020

신혼여행하면 발리

해외 동거의 실체

지금 아기와 아기 아빠가 낮잠 자는 틈을 타서 모유 수유기에 젖을 짜며 이 챕터를 쓰고 있다. 원래 멀티태스킹을 좋아하긴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 별의별 일을 함께 하게 됐다. 무튼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트와일라이트만큼이나 많이 본 영화 중 한국 영화로는 ‘김종욱 찾기’가 있다. 첫사랑을 찾아주는 한기준이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열기 전 다니던 여행사에서 고객들에게 여행지에 대해 너무 실질적인 정보를 주다 직장 상사에게 혼나는 씬이 있다. 그때 그 직장 상사는 고객에게 주어야 할 정보를 예를 들며 신혼부부의 천국 발리를 예로 들었다. 그렇게 처음 개념을 잡게 된 발리가 있는 인도네시아는 한국에서 6~7시간 비행을 하면 나오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 하나로 한국인들도 이민을 많이 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영국에 있던 덕에 해외여행하면 대부분 유럽이나 미주 위주로 해봤던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오히려 낯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던 인도네시아는 내가 무지했던 것에 비해 아름다운 곳이 굉장히 많은 섬나라였다. 게다가 같은 아시아 국가로서 한국 문화에 호위적인 사람이 굉장히 많은 곳이어서 나에게는 정말 살기 편한 곳이었다. 물가도 한국에 비해 엄청 싼 편이어서 웬만한 월급으로 왕처럼 살 수 있었고, 실제로 우리는 남편 회사 덕에 가사 도우미가 있는 집에서 기사가 있는 차를 타고 다니며 나름 편안한 삶을 누렸다. 떠나온 지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친한 친구들이 많을 만큼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무엇보다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쉽게 성립되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국제결혼을 하기까지 겪어 온 나만의 삶에 대해 나름의 이실 직고를 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삶 자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결혼 전 남편과 함께 각자의 본국이 아닌 제3국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 그리고 그게 인도네시아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고, 그 얘기를 하다 보면 인도네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도로 쓰게 될 이번 챕터와 다음 챕터를 통해 내가 인도네시아에 대해 잘 모르고 언급한 내용이 있다던지 기대보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면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바란다.

여행을 하다 보면 대한민국 여권의 힘이 그렇게 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네 번째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만 해도 온화파에 속하지만 무슬림 국가라는 이유로 여러 나라에 들어갈 때 비자를 필요로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협정이 맺어져 있는 나라가 많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거나 비자 웨이버가 적용되는 국가들이 꽤 많은 편이다. 인도네시아와 한국도 원활한 수출입 관계로 관광 목적으로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고, 다만 입국 심사에 앞서 소정의 입국 비자 스탬프를 현금 구매해야 한다. 이렇게 입국할 경우 만 30일을 머물 수 있다. 남편은 근무 시작일에 맞춰 8월 말에 먼저 인도네시아로 입국하고, 나는 한국에서 남은 일도 처리할 겸 직장도 알아볼 겸 한 달 뒤에 조인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던 우리는 떨어져 지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우리가 인도네시아로 이사를 가던 해에 한국에서는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리기로 되어있었다. 대학교 때부터 연이 닿아 국제 요트 경기에서 영어 사회를 봐온 나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마지막으로 나름의 경기 사회 ‘은퇴’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렇게 다짐하고 간 아시아게임에서 많은 지인들과 마지막으로 얼굴 보고 일을 하며 작별을 인사를 하던 아시아게임의 차선 지는 인도네시아였다. 그래서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되었고, 다음 목적지가 우연히 인도네시아라고 쉽게 말할 수 있었다. 쉽다고 말하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동거남과 함께 한국을 떠나게 되어 갑자기 인도네시아를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묻어갈 수 있는 외부 요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 줄 모르겠으나, 사실을 아는 마당에 그 사실을 미화해서 사람들에게 한국을 떠나게 된 이유, 인도네시아로 가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만은 않았다. 게다가 떠나기 직전까지 내 직장 자리는 확정이 나지 않았고, 가서 찾아지겠지 하는 믿음을 가지고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 일을 마치고 재빨리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해외 취업을 이유로 들 수도 없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는 동안 같은 맥락에서 애매한 상황은 꼭 생기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인도네시아로 떠난 후 운이 좋게도 한국에서 했던 명품 바이어 경력을 살려 현지 명품 수입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한국 문화와 연예인에 관심이 많았던 회사 부사장을 포함해 많은 직원들은 한국어를 배울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일적으로도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한국에서 뜨고 있는 국내 브랜드를 찾아 인도네시아로 수입해 오는 임무를 맡은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성공적으로 첫 수입을 하기로 결정한 아이템은 바로 한국 회사에서 만든 시계 브랜드였다. 명품 시계를 수입하는 바이어들은 일 년에 두 번씩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시계 박람회에 바잉 트립을 가곤 하는데, 앞서 말한 한국 시계 브랜드는 전 세계적인 바젤 시계 박람회에 큰 부스를 내어 전 세계 바이어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를 가졌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인도네시아 부사장은 세계적인 자리에서 각광을 받은 한국 시계 브랜드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브랜드 관계자와 연락을 취하고 인도네시아에 돌아와 나에게 해당 브랜드에 대해 자문을 물었다. 부사장이 발굴해온 한국산 시계 D브랜드를 본 나는 놀람과 동시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해당 브랜드는 내가 남편과 사귀기 시작할 때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한창 개발하고 있던 시계 브랜드였다. 바로 내 자리 건너편에 앉아 계시던 차장님이 총책임자였던 D브랜드는 반응이 좋아 차장님이 해외 바이어들과 연락을 취하는 것을 자주 건너 듣곤 했었다. 인연도 이런 인연은 없다고 세상 반가워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러기에 앞서 내심 내가 당황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G백화점을 그만두고 블로거 생활을 두 달만에 접은 뒤 힘겹게 들어갔던 두 번째 직장은 안타깝게도 남편과 열렬한 연애를 시작하는 바람에 첫 직장만큼 혼신을 다하지 못했고, 회사에서 가졌던 기대에 반해 한 달만에 퇴사를 했었기 때문이다. G백화점 바이어 시절 관계가 좋던 거래처로 알게 된 두 번째 회사는 내 이력을 아는 만큼 나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긴 설명 없이 친했던 사장님께 인사도 못 드리고 한 달만에 내발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사실은 인도네시아로 떠날 때까지 실업 상태로 지내면서 너무 쉽게 직장을 그만둔 것에 대해 두고두고 후회를 했었다. 이 긴 이야기를 이 상황에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뻔히 아는 분들이 있는 프로젝트에 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개입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나마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덕에 대부분 이메일로 소통하고 긴급한 상황에만 전화를 하면 되는 거리가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브랜드와 사업을 전개하고 있던 인도네시아 회사의 임원진은 그 해 샤넬 크루즈 패션쇼가 DDP에서 열려 거래처 임원으로서 한국에 초대받게 되면서 결국 한국 출장을 가게 되었고, 그 참에 나도 함께 가게 되었다. 한국 출신인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근무를 해 되려 한국으로 출장을 간다니, 인생은 참 살고 볼 일이었다. 게다가 한국에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출장을 가는 길이다 보니 부모님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일부러 호텔이 아닌 부모님 댁에 머무르기로 할 수는 있었으나, 따로 친구들을 만나고 더 놀다 올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가게 된 한국 출장에서 결국은 D브랜드를 전개하던 내 두 번째 회사와 미팅을 하게 되었고, 내 건너편 자리에 앉아있던 차장님뿐 아니라 사장님, 해외 사업부 전무님, 상무님 등 온갖 임원진이 출석한 자리에서 인도네시아 임원진 측에 앉아 맞대면을 하게 됐다. 이번에도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저 아이는 그렇게 들어오고 싶어 했던 회사를 왜 한 달 만에 그만두었을까 하는 의문에 인도네시아로 가게 되어서라는 답변을 스스로 하시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공적인 자리에서 다행히 아무도 나에게 그 당시 왜 갑자기 그만두었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갑자기 왜 그만두었는지는 모르지만 본인들이 수출하는 시계를 사러 온 해외 바이어로 와 다행이라고 여기며 최대한 좋은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열심히 판매를 하셨다. 내 속에서는 만감이 교차했다. 특히 나를 각별히 챙겨주셨던 사장님에게는 아무리 이렇게 다시 만났다 하더라도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 같아 죄송함을 표현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다들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을 좋은 일로 여겨주셨고, 나도 굳이 그때 죄송했다는 얘기는 안 꺼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인도네시아 임원진을 위해 준비한 초특급 한식 정식 자리에서는 민망하게도 양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던 컨설턴트분이 굳이 내가 이런 자리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며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내가 멋있다고 치켜세워 주셨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말을 들은 한국 사장님이 혹시라도 실상을 알아차릴까 걱정이 되었다. 나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사적으로 친했던 인도네시아 부사장은 내 상황을 대충 눈치를 채고 있는 터라 컨설턴트의 말을 듣고 내가 고맙다고 하거나 으쓱해 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말을 아끼며 예술 같은 한식 정식 코스를 하나하나 넘겼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도네시아서의 생활은 이런저런 맘고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해프닝과 추억거리로 가득했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남편을 보러 인도네시아로 바로 건너간 나는 첫 회사를 찾을 때까지 약 3개월 정도의 백수생활을 또 하게 되었었다. 그때 남편도 마침 휴가를 좀 받을 수 있어서 우리는 11월에 발리를 가보기로 했다. 열대지방인 인도네시아는 우리나처럼 사계절이 아닌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데, 우기는 11월부터 그다음 해 구정 정도까지라고 볼 수 있다. 남편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받은 휴가라 우리는 우기가 언제 시작하는지 알아볼 새도 없이 비수기라 엄청 할인을 진행 중인 고급빌라가 나와 바로 예약을 해버렸다. 그 이후로 또 여러 번 찾게 된 발리였지만 처음으로 갔던 발리는 나에겐 항상 ‘김종욱 찾기’에서 들었던 대로 신혼부부의 천국이었다. 그래서일까, 결혼은 아직 안 했지만 나름 휴양지로 첫 해외여행을 떠난 우리의 발리 여행은 나에게 마치 신혼여행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밤늦게 도착해 주변도 보이지 않는 도로를 2시간 이상 달려 도착한 우붓 숲 속에 위치했던 빌라는 아침에 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호주인 남편과 인도네시아인 부인이 주말 별장처럼 지어서 빌라로 렌트한다는 우리의 빌라에는 우기의 시작이라 그런지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밤 사이에 비가 내린 흔적이 있는 야외 테이블은 발리 특유의 계단식 논이 보이는 발코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친절한 빌라 스테프들은 우리에게 주문을 받아가 곧 아침 식사를 차려주었다. 열대 과일이 가득한 아침상 건너편에 앉아있는 남편을 보며 므흣한 감정이 교차했다. 남편이 아니었음 내가 지금 이 곳에 와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의미로 따지고 보면 이게 우리의 신혼여행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뒤 우리의 실제 신혼여행은 미국 서부와 하와이가 되었다. 상황상 결혼 후 거의 1년이 지난 후에나 갈 수 있었던 우리 신혼여행은 사건사고 많은 우리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일반적이지 못했다. 마치 일부러 튀어보려고 온갖 힘을 다하는 듯 보이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사실 철저히 우리의 필요와 의도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우리의 결정과 노력에 의해 모든 일을 해 나갔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진짜로 설레고 신혼 같았던 내 맘속의 진정한 신혼여행은 아직도 우리의 첫 발리 여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도 나에 대해 매일 배우고 새로운 걸 알아가지만 이런 나를 보면 나도 참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인 것 같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봐.


 * 많은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the_young_heiress

꿈만 같았던 발리 빌리
계단식 논이 보이던 우리의 발코니
나름 신혼여행중인 우리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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