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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웅 Jan 06. 2023

세 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그날의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마케터가 필요한데 같이 해볼래?


오랜 벗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좋은 자리가 있는데 함께 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날의 제안과 선택은 이후의 나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

4년 4개월 동안 광고대행사에서 AE(Account Executive)로 일했다. AE는 광고주와 대행사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다양한 기획과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자를 말한다. 업무 강도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만, 덕분에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다만, 쉴 틈 없이 일했던 터라 새로운 전환이 필요했다. 3년 가까이 한 그룹사의 PM(Project Manager)을 담당하면서 안정적으로 성과를 창출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안주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변화되지 않는 환경을 깰 필요가 있었고, 결국 퇴사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생각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그럼 퇴사 후 재택(프리랜서)으로 일 해보는 건 어때요?  


순순히 수용하는 것도, 연봉을 높여 붙잡는 것도 아니었다. 퇴사를 수용하는 대신 프리랜서로 함께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대신, 앞서 얘기한 그룹사의 PM 역할은 재계약 시점까지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지금에야 코로나로 인해 재택 근무가 많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꽤 신선한 접근이었다.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은 전혀 고려해보지 않았던 터라 고민이 필요했다. 비록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되겠지만 시간과 공간에 큰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메리트로 느껴졌다. 환경을 바꾸는 것에 큰 부담이 있었는데 안정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퇴사 직후 바로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2.

한창 뜨거운 7월, 무더운 날씨에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프리랜서로서의 일을 시작했다. 8시 즈음 느지막이 일어나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방 책상에 홀로 앉아 일을 진행했다.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았던 광고대행사의 사무실을 벗어나 조용한 공간에서 일하려니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윽고 이러한 고요와 적막을 즐기기 시작했다.


근무시간은 9시부터 6시로 회사에서 일할 때와 동일했지만, 프리랜서가 되면서 광고 기획이나 콘텐츠 제작에서 일을 줄이고 커뮤니케이션과 운영 관리를 주로 담당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클라이언트 미팅을 진행했고, 남는 시간에는 운동을 하거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한 글을 썼다.


이렇게 보면 마냥 편하기만 했던 생활로 보이겠지만, 생각보다 더욱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했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알아서 할당된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스스로는 자기 통제력이 강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사무실 밖은 여러 유혹으로 넘쳐났다.


프리랜서 생활을 통해 얻은 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스스로를 통제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3

여러 유혹을 이겨내고, 프리랜서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을 때쯤 겨울이 찾아왔다.


광고대행사의 연말은 바쁘다. 비단 광고대행사뿐만 아니라 클라이언트 잡을 하는 회사에게 연말은 연장 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나날의 연속이다. 프리랜서가 되었지만 PM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제안서 작성으로 밤낮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담당했던 프로젝트의 연장 계약에 성공했다. 비록 더 이상 한 사무실에서 일하지는 않지만, 옛날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다시금 만들어낸 성과라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통화와 메신저로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전하며 곧 회포를 풀 날을 기약했다.


프로젝트의 연장 계약을 성공한 후, 이번에는 나의 프리랜서 업무에 대해 논의할 차례가 다가왔다. 애초에 서로의 기간을 재계약 시점까지로 얘기를 했던 터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다시 더욱 좋은 조건으로 프리랜서 제안을 받았다. 물론, 회사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대로 PM 역할을 수행하는 것.


이 시점의 나에게는 감사하게도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A. 계속해오던 프로젝트 PM의 연장

B. 빅데이터 스타트업에서 신설하는 마케팅팀 매니저

C. 신규 오픈하는 공간 브랜드의 마케터


B는 광고대행사에서 함께 일했던 팀장님에게 받은 제안이었다. 빅데이터에 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워낙 트렌드로 떠오르던 시점이었고, 새롭게 신설하는 팀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두 선택지와 다르게 정규직 채용이었기에 비교적 안정적인 선택지이기도 했다.


C는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로부터 받은 제안이었는데, 성수동에 새롭게 오픈하는 공간 브랜드의 마케터 역할이었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는 1년 계약직이기도 했고, 친구와 일한다는 것에 걱정이 앞서 우선순위에서 가장 먼 선택지였다. 그렇지만 비슷한 시기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공간과 관련된 책을 쓰면서 해당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고민을 거듭하면서 점차 매력적인 제안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존에 해오던 일과 결이 다르지만, 반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더욱 확장할 기회로 느껴졌다.


기나긴 고민 끝에 C를 선택했다. 결국 가장 도전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선택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시기의 나에게는 얼마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보다. 이후 몇 차례의 미팅을 가진 후 2020년 2월부터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이 선택이 창업으로 이어질 줄은.





<창업가로서 실패했다>

창업 후 2년, 실패를 기록하는 회고 에세이

https://brunch.co.kr/magazine/memoir-start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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