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티 Feb 17. 2021

케이티, 디 에그 픽커

3 대 1 다구리 맞짱 까기

대체적으로 닭을 떠올리면 낮은 음성으로 꼬꼬꼬 울면서 따사로운 햇살 아래 몇 마리 병아리들과 바닥에 모이를 쪼아 먹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아니면 닭장 안에서 알을 품고서는 꾸벅꾸벅 조는 암탉 정도? 물론 이게 완전히 틀린 연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시골집 마당에서 키우는 닭은 분명히 저런 평화로운 삶을 살 테니까. 하지만 내가 일한 공장형 양계장 닭들은 좁고 더러운 우리 안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닭들이었다. 겨우 자기 한 몸 서있을 공간 외에는 쉴 곳도, 누울 곳도 없는 곳에서 말이다.


그렇다 보니 거기 닭들은 스트레스 수치가 차다 못해 지붕을 뚫고 나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를 푸는 일차 대상은 우리 안에서 시름시름 앓는 닭들이었다. 이런 닭들은 딱 봐도 거의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거진 엉덩이 쪽에 큰 고름 주머니 같은 걸 차고 몸에 땜빵이 듬성듬성 있었다. 그리고 눈에 반투명한 막 같은 게 내려와서 흐리멍덩했는데, 움직임이 다른 닭에 비해 배로 둔했다. 그래서 출근을 하고 제일 처음 하는 일은 우리 안에 닭똥을 치우면서 시름시름 앓다 죽은 닭 시체를 치우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누가 봐도 죽어가는 닭들이 자연사하기까지 우리에 그냥 방치되어 있었고 다른 건강한 닭들은 이런 닭들을 마구 괴롭혔다. 이때 제일 보기 괴로웠던 건 건강한 닭들이 죽어가는 닭의 고름 주머니를 마구 쪼는 모습이었다. 어찌나 끔찍하고 불쾌했던지 처음에는 헛구역질이 다 나왔다. 그리고 워낙 힘이 없고 둔하니까 눈만 느리게 끔뻑거리면서 그대로 괴롭힘을 당하는 닭이 너무 불쌍했다.


하지만 이 닭들을 어여삐 여기기에는 사실 내 코가 석자였다. 이런 약한 닭 다음으로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 된 건 나였으니까. 특히 H 언니와 떨어져 다른 작업장에 배치되고 나서 상당한 수모를 겪었는데, 수탉들이 자꾸 맞짱을 신청해서 정말 난처했다.


기본적으로 우리에 들어가면 거의 99%는 암탉이라고 보면 된다. 어차피 수탉이야 유정란 때문에 기르기 때문에 수요가 훨씬 적고 인간처럼 교배에 엄청난 체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안에서 몇 안되는 수탉끼리 싸우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 놈들이 자기들끼리만 싸우면 되지 나한테까지 자꾸 대결을 신청했다. 그리고 대결을 신청하는 방법은 모든 수탉이 같았다. 일, 나를 쏘아본다. 이, 목도리 도마뱀처럼 목덜미 털을 쫙 세워서 기선을 제압한다. 삼, 삼지창을 닮은 닭발로 돋움 닫기를 세네 번 한다. 사,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 있는 힘껏 드롭킥을 날린다.


닭이 드롭킥을 날려봐야 얼마나 세겠어, 싶은가? 세다. 정말 세다. 이 수탉들로 말하자만 우리가 흔히 장닭이라고 부르는 크기에 닭들이었다. 내 키가 164cm인데 이 수탉들은 내 허리께까지 족히 오는 것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발 크기도 무지막지했고 그 완력도 한 번 차이면 온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거기다 한 놈이 성이 나면 다른 한 놈도 성이 나서 무슨 나비 효과처럼 우리에 있는 수탉들 전부다 나만 노렸다. 한 번은 다들 정말 대단히 열이 받았는지 세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해야 했던 적도 있다. 무슨 동네 주먹 짱의 전설도 아니고 3 대 1 다구리 대결이라니.


그때 비루한 내 한 몸뚱이를 지켜줄 유일한 무기는 계란을 주울 때 사용하는 집게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무섭기도 해서 가만히 내버려 두거나 도망갔는데, 그러면 완전히 실성한 듯이 달려들어서 나중에는 그러면 절대 안 되지만 수탉 등허리를 집게로 세게 때려줬다. 퍽, 한 대 때리면 깜짝 놀랐다는 듯이 날개를 펄럭하는데 이러고 나면 마치 뇌를 리셋한 듯 시침을 뚝 뗐다. 마치 주폭 때문에 경찰을 불렀더니 아주 순한 양이 되듯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도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가만히 있는 수탉도 너무 가증스러워서 일부러 한 대 때려주기도 했다. 물론 긁어 부스럼이었다.


그리고 닭에게 공격을 받는 날은 이때뿐만이 아니었다. 양계장에서는 마치 건강 검진처럼 주기적으로 닭 무게를 재는데,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맨손으로 닭을 낚아채서 특수 저울에 닭을 머리부터 거꾸로 집어넣어야 했다. 요도 힘도 없는 나는 이게 너무 힘들었는데 어설프게 닭을 잡았어도 그걸 거꾸로 집어넣는 게 관건이었고 그러다 보니 발광하는 닭 날개에 셀 수 없이 싸대기를 맞았다. 그리고 닭 날개 싸대기의 경우 수탉 표 드롭킥보다는 훨씬 맞을 만했지만 여느 싸대기가 그렇듯 대단히 불쾌했다.


이 외에도 계란을 줍다가 실수로 떨어뜨리면 주변에 수십 마리 닭들이 우다다 달려와서 순식간에 다 쪼아 먹기도 했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갑자기, 정말 난데없이 25,000 마리 모두가 한꺼번에 꽥!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괴팍한 동물인, 위에서 말했듯이 아무래도 닭들이 사는 환경 때문인 것 같다. 더럽고, 좁고, 깨끗한 공기가 없는 곳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곳에 사는 것이니까.


거기다 수탉의 경우, 생식 능력이 떨어지거나 하면 개체수 조절을 위해 멀쩡히 살아있는 닭의 목을 졸라 죽이기까지 한다. 이런 일은 나 같은 에그 픽커가 아닌 캐처라고 하는 남자 직원들이 주로 하는데, 죽이는 이유만큼 방법도 참 잔인했다. 수탉을 잡아 긴 나무 막대 아래 목을 대고 머리통을 무자비하게 잡아 빼버리는 식이었다. 그러면 목숨이 끊어진 닭의 목은 한 세 배정도 늘어나 힘 없이 달랑달랑거렸고 눈에는 반투명한 막이 내려왔다. 그리고 진짜 최악은 우리가 작업을 하지 않는 밤에 수탉을 죽이고 그대로 놓고 가는 경우 내가 아침에 그 시체를 치워야 하는 것이었다. 어찌나 그 느낌이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딱딱하게 굳은 시체 다리를 들어 올리면 느껴졌던 늘어난 목의 움직임이 손끝에 생생히 남아있다.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 한참 사회의 공분을 사던 다큐멘터리 중에 공장형 양계장의 생태를 담은 작품이 있었다. 당시 학교 과목 중 환경 시간에 해당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화면에 나오는 닭이 딱하기는 해도 먼 얘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에도 평소에 즐겨 먹던 계란, 치킨, 닭갈비 등을 먹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그리피스에서 한 달 남짓 양계장에서 일하면서 나는 깊은 트라우마를 겪었다. 계란은 한 일 년 가까이 먹을 수 없었고 닭고기는 그것보단 짧았지만 얼마간 입에 댈 수 없었다. 당시에는 계란을 떠올리기만 해도 닭똥 냄새, 열악한 사육 환경, 가차 없이 죽여 버린 수탉의 쾡한 눈과 덜렁거리는 목이 마구 교차하면서 비위가 상했다.


그러면 이렇게 오직 인간의 편의를 위해 살고 죽는 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바로 cage egg가 아닌 free range egg를 사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자연 농법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은데, cage egg는 내가 일한 공장형 양계장에서 나온 계란이고 free range egg는 그것보다 더 자연친화적인 환경에서 사육하는 닭이 낳은 계란이다. 가격은 조금 차이가 나지만 공장형 양계장의 실체를 낱낱이 아는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를 포함해 더 많은 사람들이 윤리적인 방법으로 얻은 음식을 소비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이전 19화 저 푸른 초원 위에 양계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