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 약하면 패스합시다.
내가 워홀을 할 때만 해도 세컨드 비자를 따기 위해 워홀러들이 많이 찾은 일은 소고기 공장이나 양고기 공장 일, 아니면 정말로 농사를 짓거나 작물을 수확을 하는 농장 일이었다. 특히 NSW에서는 더보나 탬워스로 고기 공장 일을 하러 많이 갔고, 농장은 스탠소프 딸기 농장이나 번다버그로 많이 갔다. 그런데 양계장은 정말 흔치 않았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호주에 살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세컨드 비자 사냥에 나선 이도 많이 봤지만, 양계장에서 일한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다. 더러 닭 가공 공장에서 일한 사람은 있어도 말이다.
그래서 H 언니와 나도 역시 양계장 일을 들었을 때는 쉽사리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거기다 양계장 얘기를 해준 대만 친구들이 그다지 영어를 잘하지 않았다. 그래서 손짓 발짓해가며 겨우 설명하는 걸 알아들은 바로는 초원(field)에 닭들이 돌아다니고 계란을 줍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초원이라... 유명 트로트 가사가 떠올랐다. 그래서 드디어 고생 끝에 꿀잡을 구한 것이구나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H 언니는 내게 먼지 때문에 이제 울 일은 없겠다면 농담을 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하기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하러 간 양계장은 대만 친구들이 묘사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일단 그 규모가 대단해서 마치 하나의 대단지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농장 안에 닭 사육장으로 쓰는 대규모 창고들이 몇 키로 씩 떨어져 있는 형태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인상이 깊었던 건 농장 게이트를 지나기도 전에 진동하기 시작한 닭똥 냄새였다. 마치 몇 년 동안 청소를 안 한 유황 온천에 개똥은 덕지덕지 발라놓은 듯한 냄새랄까? 상상 이상의 악취였다.
그래도 그나마 농장 투어를 하기 위해 건물 내부로 들어오니 냄새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리엔테이션을 하며 해처리라고 부르는 부화장도 투어를 했는데, 삐약거리는 노란 병아리들을 보면서도 머리 한쪽으로는 스타크래프트가 떠올라 역시 나는 한국인임을 되새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름 순조롭게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H 언니와 나는 다행히 같은 팀에 합류했다. 우리가 합류한 팀에는 호주 아주머니 두 분, 젊은 호주 여자, 인도인 아저씨 두 분, 이렇게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H 언니도 어린 축에 속했을 정도로 평균 연령이 높은 팀이었는데, 특히 호주 아주머니들은 젊은 친구들이 여기까지 와서 양계장에서 일하냐고 신기해했다.
그런데 웃기지만 출근 첫날 가장 먼저 할 일이 샤워였다. 작업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에 샤워실에서 꼼꼼하게 씻어야 하는데, 바깥 병균으로부터 닭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거기다 나갈 때는 당연히 닭똥 냄새를 없애야 하니까 또 샤워를 하게 되고, 집에 가서 자기 전에도 샤워를 해야 했으니 당시 그리피스에서 내 개인 청결도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그리고 이렇게 샤워를 하고 나면 회사에서 제공하는 작업복을 입고 고무장화를 신고 작업 공간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이 외에도 나는 마스크, 목장갑, 목장갑 위에 얇은 고무장갑까지 완전 무장을 하고 나갔다. 회사에서 최소한으로 제공하는 개인안전장비를 나는 최대한 사용한 거다.
우리가 일한 양계장은 한 바퀴 도는 데 약 몇 십분 정도가 걸리는 거대한 창고에 약 25,000 마리 닭을 가둬놓고 기르는 공장형 양계장이었다. 다시 말하면, 대만인 친구가 말해준 얘기만 듣고 내가 상상한 드넓은 초원은 코빼기도 안 비췄다는 거다. 거기다 당연하지만, 앞서 말한 악취는 창고 안에서 극에 다다랐다. 어찌나 고약하던지, 적응하고 나서도 코로 편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니 처음에는 끊임없이 헛구역질이 나면서 머리가 띵해졌고, 나중에는 이 안에서 질식하겠다 싶었다.
여기에는 닭 사육장으로 쓰는 창고 구조도 한몫했는데, 역시 바깥 병균으로부터 닭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창문이 하나도 없었고 문이라고는 온 몸에 있는 힘이란 힘은 다 동원해야 열리는 거대한 철문뿐이었다. 그리고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에서 나오는 먼지에 25,000 마리 닭이 속수무책으로 싸대는 똥까지 합세해 창고 속 공기는 불쾌할 정도로 묵직했다.
거기다 내가 생각한 만큼 계란 줍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닭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이리저리 낳아놓은 알을 그냥 땅에서 줍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창고 안에 일렬로 만들어 놓은 후줄근한 골판지 닭장 안에 계란이 덩그러니 있으면 횡재, 알을 품고 있는 암탉 엉덩이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서 계란을 빼내야 하면 중간, 알을 낳고 있는 닭 똥꼬 아래 손을 대고 막 나오는 계란을 받아내야 하면 낭패였다.
그리고 특히 닭들이 공룡알을 낳는 모습을 눈 앞에서 봐야 할 때가 가장 괴로웠다. 여기서 공룡알이란 기존에 먹는 계란보다 2배에서 3배 정도 큰 알인데, 보통 크기에 계란을 낳는 닭이 꽥꽥꽥한다면 공룡알을 낳는 닭은 끄왜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다. 거기다 이 엄청난 산고에 사무친 비명 외에도 계란 크기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벌어지는 닭 똥꼬를 보는 것도 포스트 양계장 트라우마를 겪는 데 톡톡히 한 몫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조금 신기했던 건 갓 세상으로 나온 계란의 촉감이었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했는데 찰나에 굳곤 했다. 마치 곧 프라이팬 모서리에서 깨질 걸 예상하는 것처럼.
지금도 첫 출근을 하고 난 뒤 느꼈던 심정이 생생히 기억난다. 이제 드디어 세컨드 비자 요건인 90일을 세어나가게 되어 들떴는데, 공장형 양계장이라는 아비스에 던져진 후 마음이 복잡했다.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H 언니와 나는 잠깐 동안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여기서 정말 90일을 버틸 수 있을까? 그냥 세컨드를 포기하고 시드니로 돌아가는 게 어때요, 언니? 하지만 숫자 3을 좋아하는 한국인답게 우리는 딱, 3일만 눈, 아니 코를 딱 감고 일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적응하는 동물답게 우리는 3일 만에 일해도 괜찮을 정도로 적응해버렸다. 양계장 악취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