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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Sep 20. 2022

자꾸 떠나는 이유 (중)

어차피 떠날 건데 뭐, 하며 살기 때문이다.


[2] 어차피 떠날 건데 뭐, 하며 살기 때문이다.


3. 원룸

아프리카에서 돌아와 엄마와 잠시 원룸에 살 때 바짝 돈을 모아서 투룸 아파트로 이사 갔었다. 그리고 다시 나와서 혼자 사는 원룸에서도 지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역시 투룸으로. 짐과 사람은 분리가 되어야 한다.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원룸은 오래 살 집이 못 되고 잠시 거쳐가는 곳인가 보다.



4. 전세

원룸이 거쳐가는 거라면 전세 역시 거쳐가는것이다. 내가 거쳐가는 집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거쳐간다. ‘2 살고 떠날 건데 하면서 불편을 감수하게 된다. 내가 20대부터 줄기차게 집을 떠났던 이유를 정리해봤다. 나는 학교, 직장, 여행  집에서  곳에 자리를 잡게 되면 그냥  근처에서 살기 위해 집을 떠났다. 지금 여기에 마음 붙이고 계속 살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에 1, 2년의 기간이 예상되면 그냥 그곳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내 친구 J, Y, S는 어렸을 때부터 쭉 한 동네에 살고 있다. 다들 남친이랑도 오래 사귄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한 사람이랑 오래 만나는 거냐 물어본 적이 있는데, Y는 “믿는 구석 하나 있으면 그냥 그거 믿고 사는 거야”라고 답했다. Y는 남친이랑 자주 투닥거리지만 어떤 날 자기가 심하게 삐진 것 같으면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남친이 자기 마음을 탁 읽고 먼저 적극적으로 화해하려 손을 내민다고 한다. 신경전을 하다가도 늘 먼저 손 내미는 모습이 쟤는 나랑 헤어질 생각이 절대 없구나 싶어서 믿음직스럽다고 했다. Y는 5월에 그 남친과 결혼을 했다.


보통 오래 사귀는 커플한테 “너네는 아직도 만나면 재밌어?” 물어보면 “재밌으니까 만나지~” 한다. 재미가 별거냐 그냥 같이 보내는 시간에 많이 웃으면 재밌는 거다. 아마 집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집에서 매일 잘 자고, 잘 해 먹고, 잘 놀고 잘 쉬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편하고 즐겁다면 어쩌다 생기는 문제는 웬만하면 고쳐서 살고 싶을 것 같다. 굳이 먼 직장, 먼 대학에 들어가서 이 안락함을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그럼 나는 이번 집에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오래   있을까?


지금 내게 제일 하고 싶은 거, 그림을 그려야지. 방 하나를 작업실로 만들 것이다. 공동 작업실을 구하면 출근하는 기분도 나고 함께 하는 시너지도 있겠지만 월세가 또 든다. 그 돈을 지출할 수 있을 때까지는 집에서 작업해보자. 작업실에는 여러 도구를 늘어놓고 써야 하고 내 지난 작업과 책을 보관할 책장과 캐비닛도 들여놔야 해서 둘 중 큰 방을 작업실로 써야겠다. 집에 하루 종일 있는 날이 많을 테니까 환기와 채광도 중요하다. 창문이 크고 옆집 상관없이 마음대로 열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주위에 시끄러운 이웃이 없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술집 많고 젊은이들이 몇 년만 살다 떠나는 대학가는 피하는 게 좋겠다.


처음엔 대출금 한도 1억이 너무 적게 느껴져서 서울 밖으로 갈까 했으나 경기도에서도 그 돈으로 멀끔한 집을 구하긴 이미 틀려먹었다. 오히려 서울에서 이런 집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더 있기로 했다. 서울은 지자체와 각종 재단과 기관이 많아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많이 연다. 지금 나는 막 학교를 나와서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부터 제주도나 산골짜기로 들어가 도 닦기보다는(그것도 해보고 싶긴 하지만) 대도시 인프라에 기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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