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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Sep 06. 2022

이사할 용기

1. 4 중순,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보름  4 로 이삿날을 정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도 이사  집을 알아보느라 자려고 모로 누워서도 네이버 부동산을 뒤적거릴 때여서 엄마의 이사가 남일 같지 않았다. 지난 12 어느 . 오랜만에 내려간 엄마 집에서 낮에 내도록  놀고는 한밤중에 밤을 까다가 말다툼이 깊어져 속이 터질  같아  11시에 집을 뛰쳐나왔다.  길로 역에 가서 기차 타고 야간 버스 타고 고만 서울 집으로 올라와버렸다. 그때만 해도  원룸 전세계약이 5월에 끝나면 엄마와 다시 같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이맘때쯤이지. 엄마와 같이 사는 집은 어떤 조건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까? 각자 생활패턴을 어떻게 서로에게 맞춰야 할까? 같은 의견을 나누던 중이었는데 의견은 고사하고 도대체 이렇게 말이  통해서야.


그렇게 서울로 올라와버린    동안 집에 내려가지도 않고 엄마 연락에 답도   했는데, 엄마는 내가 답을 하든 말든 꾸준히 카톡을 보내셨다. 그때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달에 걸쳐 받아보면서 ‘이거 언제  이기는  풀어져야 하지눈치 보고 있던 참에 엄마가 이사 간다고 하니 이건 모른척하면  되는 일이라 모든 걸 접어두고 이사 전날 아침 일찍 집에 내려갔다.



2. 이사 전날, 엄마는 아침에 퇴근하고 와서 리모델링 공사가 끝난 새집을 같이 쓸고 닦았다.

 집은 엄마가 근무하는 요양원에서 가깝다. 이전 집에서는 시간이 오락가락하는 버스를 타느라 아침에 헐레벌떡 나가야 했다. 차로는 고작 15 거리를 집에서 버스정류장 10분, 기다리는 5, 버스 30분, 내려서 걷는 10분으로 쪼개고 쪼개서 1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제 걸어서 20분이면   있으니 아침에  먹고 손톱 깎고 뉴스 보다가 8 20분에 나가도 되고, 야근하고 집에 와도 9 반이라 거실에 아침 햇살이 남아있다.


엄마가 65세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일을 시작하고 여기가  번째. 규모가  법인 요양원으로 왔더니 체계가  잡혀있어 쓸데없는 걸로 스트레스  준다면서 그럭저럭 정착해서 벌써 3 넘게 다니고 있다. 70세가 넘은 우리 엄마는  요양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면서 가장 빠른 걸음으로 출근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침 8시 반 요양원 정문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면  타고 출근하던 요양사 선생님들이 ‘하이고 윤선생님은 출근이 즐거운가 봐~’ 하고 인사한다. 4 요양원 건물을 빗자루를 들고 하루에 수시로 오르내려도 엘리베이터   타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 다닌다는 씩씩하고 튼튼한 우리 엄마.


3. 고3 때 엄마가 집 앞 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가 생각난다.

하루는 율학습이 끝나고 늦은  집에  와서 위를 올려다봤는데 불이 꺼져있었다. 거실의 메모에는   성모병원으로 오라고 쓰여있었다. ( 그때 핸드폰이 없었다.)  당시 엄마는 다리에 힘이 없어 걸을  자주 휘청거렸는데 그날도 고르지 않은 보도블록에  끝이 걸려 넘어져 무릎뼈가 깨진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무릎에 인공관절을 박아 넣는 수술을 했다. 그때만 해도 엄마가 50대였지. 60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병원에서 간병인 일을  시작했을 때는 어깻죽지에 인대가 심하게 늘어나서 인대 수술을 하네 마네  가족이 고민하기도 했다. 어깨에서 팔을 연결하는 인대가  가닥이 있는데 가생이  가닥은 이미 닳고 가운데  가닥이 끊어지기 직전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대 수술은 완치를 장담할  없다는 말에 과감하게 수술을 포기하고 안산까지 양봉원을 다니면서 봉침을 무지하게 디며 인대를 소생시킨 팔이다, 지금 엄마의 팔은.



4. 일평생 관절과 근육을 닳아 없애며 일만 한 엄마가 70대에 이렇게 건강해졌다.

이삿날. 아침 일찍 포장이사에서 4분이 오셨는데 시간이 갈수록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셨다. 아줌마 혼자 사는 집인데 짐이 많으면 얼마나 많겠어 싶었겠지. 그런데 물건을 내려도 내려도 계속 나왔다. 중국에 가 있는 오빠가 맡긴 짐을 감안해도 큰 가구는 별로 없는데 자잘한 물건이 끝도 없이 나왔다. 5톤 탑차를 가득 채운 짐을 그대로 새 집에 올려 보내고. 오후까지 지루하게 물건 틈새 끼워넣기가 이어지는데 엄마는 그 많은 물건의 있을 자리를 다 정해서 알려줬다. 그건 여기에 놔주세요. 저건 저기에 놔주세요. 그리고 온갖 요금, 이용료, 연체료를 농협 앱을 켜서 송금하고 수시로 전화를 받아서 날짜를 정하고 실랑이를 했다.


! 70 여인에게 이런 에너지라니! 집을  흔들  떨어져 나오는   없이 자잘한 물건과 일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장악하는 에너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사는 엄마가 가진 삶에 대한 의욕을 보여주었다. 이전 전셋집의 재개발 소식에 만기보다 일찍 나가느라 난관이 많았다는데 그걸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엄마는 ‘  있다’ ‘해낼  있다얼마나 속으로 외쳤을까? 자꾸만 고개를 떨구는 마음을 일으키고 일으키는 것이 용기이다. 살면서 어느 때보다 엄마에게서 강한 에너지를 보았다.


마찬가지로 나의 마음을 알아주려고 끊임없이 과거의 내 입장에서 자신을 돌이켜봤을 엄마. 고만 잊고 싶은 기억을 작정하고 꺼내 처음부터 끝까지 복기해야 했겠지. 기꺼이 밤새 잠 못 들고 자책하고 후회할 마음을 먹고 또 먹은 용기. 나를 위해서. 그 용기를 보았다.



(옆집 로트와일러(송아지 같지만 강아지임) 이게  난리야, 하며 들어와서 기웃거리다가 아저씨한테 끌려나갔다. , 경기도 외곽의 엄마 집은 매매인데 1억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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