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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Sep 08. 2022

면목동, 우림시장 근처, 4층, 9000, 투룸

얼기설기

1. 재래시장

이번에는 면목동. 상봉동 아래에 있는 동네이다. 부동산 아저씨의 차를 타고 큰길에서 우회전해 <우림시장> 공중 간판이 있는 길로 들어갔다. 시장 메인도로가 2차선이네. 통로를 아케이드 지붕으로 덮은 우림시장은 큰 규모의 재래시장으로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축산물이 주종목이다. 시장이나 마트가 가까이 있으면 확실히 오며 가며 밥은 잘 챙겨 먹게 된다.


서울에 10개 넘는 동이 몇 개 없는데 그중 하나가 여기. 면목동은 정말 동이 크다고 하셨다. 다른 이름으로 동을 새로 만들어 행정구역을 분리시키지 않고 1동 2동 3동..으로 몸집을 불린 것은 같은 면적 안에서 인구가 계속 늘어났다는 뜻. 그래서 이 일대에서는 크고 작은 재래시장이 어딜 가나 가까이에 있다. 시장이 가깝게 있다는 건 회사나 아파트보다는 오래 자리 잡고 사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많은 동네일 것이다.


시장 골목밖에도 상점이 많다. 집 가는 길이 축산파트였는지 깐두리 축산, 풍년 영양탕, 사철탕,, 웬만하면 육류 음식을 피하는 나로서는 읽기 괴로운 간판이었다. 요즘 정육점은 고기든 뼈든 다 토막내서 팩 째로 냉장고에 넣어놓는데, 여기는 아직 옛날 스타일로 해체한 고깃덩어리를 쇠꼬챙이에 축 걸어놓는 집이 있다. 털을 벗겨낸 두껍고 허연 살가죽과 비계, 시뻘건 층이 뒤섞인 덩어리와 내 눈이 접촉사고. 으악. 빨리 잊고 싶어서 눈을 꼭 감았다 떴다. 이 집에 오게 된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2. 다 와서 보니 옆집이 보살집이네.

요 며칠 이 일대를 돌아다니다 보니 골목길 사이에 보살집 점집이 눈에 띄게 많다. 마치 편의점처럼 자연스럽게 생활편의시설로 녹아든 것 같다. 이 일대 상봉동, 면목동에서는 어디서나 고개를 들면 동쪽으로 용마산이 보이는데 이 산이 높진 않아도 산맥이 길다. 아무래도 산의 정기에 폭 안긴 동네라 신령님도 용한 보살님도 많은가 보다.   


3. 점집 앞을 지나 세 나온 집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에서 안쪽 끝까지 들어가 현관문을 열고 2층 3층을 차례대로 올라가는데 아저씨가 불 켜는 스위치를 못 찾아서 어두운 통로를 벽을 더듬거리며 올라갔다. 문을 열고 가파른 계단을 열개쯤 올라가고, 긴 통로를 쭉 걷고, 길 끝에서 또 가파른 계단을 열 개 올라서 또다시 어두운 통로를 직진. 이걸 몇 번 반복해서 4층까지. 아직 오후인데 창문 없는 새까만 터널이 강렬했다. 분명히 2층 3층 통로를 걷는 동안 벽에 집 문이 있었을 텐데 전혀 기억이 안 난다.


4. 각 층에는 코너마다 집이 한 채씩, 총 4채의 집이 코너의 2면을 차지했다.

4층에 다다라 현관문을 열고 짧은 복도를 지나 두 번째 현관문을 열어 집으로 들어갔다. 이 짧은 복도는 외벽 안쪽의 빈 공간인데 짐 놓기 좋고 겨울에는 조금 덜 추울지도 모른다. 현관문 안쪽에는 아주 작은 싱크대, 그 앞에 방 2개가 나란히 있다. 왼쪽 방에서는 앞 건물이 보였다. 오른쪽의 건물 코너 쪽 방은 창문이 두 면 모두 크게 나 있어서 길 앞도, 옆집 보살 집도 보였다. 길은 꽤 넓어서 앞집이 부담스럽지 않고, 난 4층, 보살집은 3층으로 한 층 낮아서 집 너머 멀리까지도 잘 보였다. 두 벽에 절반을 차지하는 큰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전 창문-이랑 비교됨) 


보살집 옆에 살면 뭐가 불편하지? 점은 1:1 상담 서비스 아닌가? 어차피 교회처럼 몇십 명씩 모이는 거 아니니까 주말에 차가 꽉 차거나 찬송가 합창할 일도 없고. 점집 근처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 뭐가 좋은지 나쁜지 아예 지식이 없어서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나: 사장님, 점집이 옆에 있으면 어때요? 많이 불편한가요? 별 상관없나요?

사장님: 으음, 뭐 귀신을 안 믿으면 안 무서울 수도 있는데.. 굿 할 때도 있고 그럴 땐 시끄럽고 향 냄새가 많이 나죠, 아무래도.

나: 아… 굿… 전 점 같은 거 믿지 않아요. 점집이 그럼 혹시 좀 기피시설인가요?

사장님: 사람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죠…

나:(그래서 싸게 나온 거구나)


그때 마침 아줌마 보살님이(?) 현관문을 열고 나와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셨다. 퉁퉁한 살집을 감싸는 꽉 끼는 검은 스판 나시와 몸뻬바지. 흐트러진 파마머리. 터프해 보여.


5. 집에는 가구가 꽉 차 있었다.

두 사람 들어서면 꽉 차는 작은 주방에 투도어 냉장고가, 안방엔 장롱, 책꽂이, TV 선반, 거울이 있고 보살 뷰 작은 방에도 싱글 침대, 전자레인지, 김치냉장고까지 모두 쓰라고 살림살이 새로 살 필요 없다고 한다. 이전 세입자는 어떻게 가전가구를 다 남기고 갔지? 죄다 별로 쓰고 싶지 않은 손때 묻고 시트지 벗겨진 어정쩡한 가구였지만 그래도 쓸 것만 골라서 쓰면 되니까. 이 집을 어쩔까 하면서 현관을 나서는데 현관문 밖 복도에 슬레이트로 대충 칸을 막아서 만든 화장실이 있었다. 아차! 화장실을 이제야 보다니. 덜컹거리며 열리는 이 철제문 안에 유리창문 옆으로 변기와 샤워기가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시장이나 점집이 시끄러워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 화장실의 몰골을 보고서는 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만약 그곳에 쪼끄만 싱크대를 끼워 맞췄다면 난 밥을 잘 안 해 먹으니 그러려니 했으려나. 그런데 화장실을 이렇게 얼기설기 지은 걸 보고선 이 집이 원래 사람 살게 지은 집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화장실이 없는 집은 원래 무슨 용도였을까? 동물은 용변을 볼 때 공격에 노출된 취약한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 우리 집 강아지도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꼭 따라 들어와서 문 앞을 지켜주고 자기도 그 김에 변을 보곤 했다. 우리는 화장실에서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밤새 무의식에 가라앉은 노폐물을 아침에 편안한 마음으로 비워내고, 거울 앞에서 얼굴을 씻고 몸을 닦으며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를 얻는다. 공사장의 임시 화장실 같이 누구나 와서 코 틀어막고 얼른 볼 일만 보고 가는 그런 화장실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엄마와 얘기하다가 알게 됐는데, 살림살이가 다 남아있는 것은 아마 이전 세입자가 새집으로 이사 가며 전부 새 가구를 들이기로 했거나, 사정이 생겨서 살던 곳 정리도 못하고 몸만 쏙 빠져나간 걸 거라고 했다. 집주인 역시 새 사람 맞을 준비를 안 하고 있는 거고. 다시 떠올려보니 벽 군데군데 다른 무늬의 벽지가 마치 구멍 난 양말 기우듯 한 두 폭씩 대충 발라져 있었고 가구가 다 구색이 안 맞던 것도 생각났다.


작년 초에 강원도에 대형 산불이 있었다. 농촌 어르신들이 한밤중에 몸만 겨우 빠져나와 대피했다가 며칠 뒤 집에 돌아와 보니 외양간은 불 타 무너지고 도망갈 줄 모르는 소와 개들이 불에 그을린 채 집주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망우동의 보살 뷰 집 역시 가구도 화장실도 모든 게 얼기설기 방치된 채 주인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이 집에선 편안함을 찾지 못할 것 같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 어디까지나 제 생활의 중요도에 따른 주관적인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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