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집장사집, 다가구주택 그림/ 원룸 그림은 안 그려도 된다. 처음 회기동 설명 때 그렸으니.)
네이버 부동산 어플에서 ‘1억 이하+방 2개+지상’을 필터링하고 손가락 두 개로 Zoom In 해서 나오는 집은 서울 동서남북 어디 동이든 모두 똑같이 생겼다. 골목에 다닥다닥 붙은, 90년대 초에 지어진 3층정도 빨간 벽돌의 주택이나 빌라. 크기는 10평 남짓.
이것은 전두환의 500만 호 건설에 이어 노태우의 200만 호 건설 방안의 하나로 추진된 ‘다가구주택’이라는 집의 형태이다. 1960년대 서울 변두리에 수없이 건축된 이른바 ‘집장사집’은 원래가 혼잡하고 밀집된 주거집단이었는데, 그것이 ‘다가구주택’이라는 이름으로 확장되고 3층~5층으로 고층화된것이다.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3권>) 이 주택 한 채에는 보통 한 층에 2가구씩 차지하고 많게는 3~4 가구로 쪼개서 출입구가 미로같기도 하다. 어느새 나이를 먹은 ‘다가구주택’을 허문 자리에 이제는 4~7평으로 더 잘게 쪼개진 원룸 건물이 들어선다. 10층 20층으로.
창문만 있으면요,
빨간 벽돌 삼층집들이 빼곡한 상봉 골목. 다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찍은 사진 속에 나온 한 집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2층이 아마 주인집 일려나? 자기 살 집으로 지었나? 1,3층보다 공을 들였다. 밖을 볼 수 있게 공중에 작게 테라스를 내고 육각형 볼록 창문도 붙였다. 비 오는 날에는 창가에 자리하던 화분을 죄다 꺼내 흠뻑 젹셔주고, 볕 좋은 날에는 저 손바닥만 한 테라스에 건조대를 펼쳐 이불을 널고, 손주들이 놀러 온 밤에는 부르스타를 꺼내와 삼겹살 굽는 모습이 상상된다.
내가 태어나던 해 언저리 90년대에 지은 다 똑같은 마감재 빨간 벽돌집이지만 가끔 이렇게 집주인이 집에서 뭘 하고 싶은지를 고려한 구조가 보인다. 집안에서 딱 한 뼘 나와 밖에 걸쳐 앉을 수 있는 공간은 햇빛과 바람을 내 집안으로 불러들여오고, 우리는 햇빛과 바람을 새로운 집안일 재료로 삼을 수 있다.
나는 그 햇살을 내 작업에 담고 싶다. 작업이란 엉덩이로 하는 것이고 원룸에서 그랬듯이 자칫하면 셀프 감금이 되어버린다. 그럴 때 내 세상에 오래 갇혀있지 않도록. 창문 앞 화초처럼 수시로 바깥세상을 내다보며 비가 오는 날엔 지금이야말로 내 작업을 들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지 마음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