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in BJ
베이징에 9년을 사는 동안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Writers in BJ를 1기에서 9기까지 배출하며 글쓰기와 출간을 도운 일이다. Writers in BJ는 베이징에서 나와 함께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모임 또는 그에 속한 글벗들을 말한다.
Writers in BJ는 가면을 쓰지 않아도 좋은 곳이다. 글벗들이 함께 모여 글을 쓰고 나누지만, 서로의 나이도 직업도, 심지어 세상에서 평생 사용해 온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 그런 곳이기에 세상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던 속살을 드러내고도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글 속에 드러난 상처와 수치를 서로 핥아주며, 글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쁨의 빛을 함께 맘껏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Writers in BJ가 태어난 건 첫 책을 출간했을 때, 지인이 툭 던진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도 글 쓰는 것 배우고 싶다. 우리 글쓰기 수업 좀 해주라.
내가 글쓰기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설렘 반 의심 반으로 일을 벌였다. 처음에는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끼리 모였고, 그들이 데려온 또 다른 누군가가 합류하며 매주 모여 두 시간씩 글을 썼다. 8주간의 글쓰기 여행이 끝났을 때, 그냥 넘어가기 아쉬워 우리끼리 소장하기 위한 일종의 학급문집 같은 작은 책을 묶었다. 그 책을 인쇄하기 전 아는 편집자에게 편집의 도움을 약간 얻었다. 그때 편집자가 "이북으로 내드릴까요?" 하는 질문을 받고서야, 우리 책을 출간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그렇게 해서 개인소장용으로 찍으려돈 <베이징에서 만난 작가들>이 이북으로 출간되었다.
두 번째 여행에서는 한 가지 테마를 가지고 책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테마를 감정으로 정하고 33개의 감정에 얽힌 글을 함께 썼다. 8주간의 글쓰기 여행이 끝났을 때 66개의 이야기를 담은 <감정 읽기>를 출간해 2쇄까지 찍었다. <감정 읽기> 공동 저자들이 모여 저자강연을 했다. 책이 있고, 사진과 그림이 있고, 모노드라마에 즉흥 랩 공연까지 곁들인 다채롭고 감동적인 무대였다.
세 번째 여행에서 ‘저는 못해요’ ‘책 못 내요’ 하던 주부들이 모여 <어쩌다 글>을 출간했다. <어쩌다 글> 실물 책이 손에 들어오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고 하는 글벗들이 많았다.
“엄마, 나 학교 가도 글 계속 써야 해. 식탁에서 글 쓰는 엄마 모습이 익숙해졌어.”
“엄마, 왜 요즘 글 안 쓰고 자꾸 땡땡이쳐?”
글 쓰는 엄마의 모습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열렬한 독자이자 팬이 되어준 것이다. '저자강연 같은 거 절대 안 해요’하던 저자들이, <어쩌다 북토크>라는 이름으로 북토크도 했다. 도서관 공간을 꽉 채울 만큼 많은 분들이 찾아와 축하해 주었고, 신문에 기사도 났다.
언제나 시작은 작고 초라했다. 1기부터 9기까지 아홉 번의 글쓰기 여행을 하는 동안, '난 잘 쓸 수 있어요' 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처음 문을 두드릴 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전부 다 '전 못해요' '글쓰기 어려워요' 노래를 불렀다. 그럴 때마다 유일하게 자신감 넘치게 할 수 있다는 걸 외친 사람은 나였다. 못 하겠다고 빼는 그 말 뒤에 엄청난 열정과 재능이 숨어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별 것 아닌 작은 노트들이, 그냥 잠깐 끼적여본 노트들이 하나 둘 모여 쌓여갈 때, 마치 작은 물방울이 모여 어마어마하게 크고 넓은 바다를 이루듯 우리가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걸 믿었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일수록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얼마나 놀라운 것들을 만들 수 있는지 알게 되었기에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저 설렘과 기대로 아주 조금씩 끼적일 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 노트들을 모았다. 글벗들이 함께 쓴 노트가 5천 개쯤 모였을 때, 9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글을 쓰고 싶고, 조금씩 쓰고 있지만, 출간이나 저자강연 등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마치 먼 남의 나라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는 혼자 하기를 고집하기보다는 함께 모여 글을 쓰고 출간하는 것이 좋다.
요즘 메일로 원고 투고가 오는 경우를 잘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어. 여러 명이 한 권의 책을 공저로 출판된 저자의 이력을 갖고 있다는 거지. 꼼꼼하게 분석해 보면 이런 패턴을 단박에 알아차리지. 아마도 어느 글쓰기 교실의 전략이 아닌가 싶어.
여러 명이 십시일반 돈을 내서 한 권의 책을 사주는 형식으로 일단 출판해 보자는 거지. 그걸로 출판의 경력을 쌓는 방식인 셈이야. 보통 독자라면 잘 모르겠지만, 출판물을 좀 먹어본 사람이라면 이 바닥의 생리를 잘 알고 있어서 이 정도는 다 꿰뚫어 보는 법이지.
그래서 말인데, 그런 경력이 네게 큰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꽤 오산인데, 어쩌면 좋니? 나는 그런 저자들의 원고는 ‘믿고’ 거르는 편이야….
조선우 <출판하고 싶은 너에게> 중
어느 편집자의 따끔한 충고처럼, 여러 명이 공저를 내는 일이 출간 경력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출간의 전 과정을 경험해 본 사람은 나중에 혼자 책을 출간할 때도 경험이 있기에 자신감을 갖고 해낼 수 있다. 필요에 따라 함께 모여 쓰고 출간의 모든 과정에서 서로 돕되, 각자 자신의 책을 출간할 수도 있다.
누가 뭐래도 매일 쓰는 당신이 작가다. 작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책 출간이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면 함께 쓰기를 통해 목표를 앞당겨 보자. 글쓰기도 함께 하면 멀리 갈 수 있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소설미학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1:1 글쓰기 코칭 신청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