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내 책을 출간했을 때 기쁨도 잠시, 곧 나를 압도적으로 장악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출간 전 나는 6년이란 긴 시간을 숨어서 글을 썼다. 남편과 아이들 외에는 그 누구도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토록 원하던 책 출간이 이뤄지고 나니, 상황이 뒤집어졌다.
책은 잘 팔려요?
다음 책은 언제 나와요?
출간 전에는 그저 책 한 권만 출간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막상 책이 출간되자 책이 잘 팔렸으면 좋겠다, 다음 책을 빨리 출간하면 좋겠다 등 바람은 늘어가기만 했다. 혼자 숨어서 쓸 때는 고독하기는 해도 두렵지는 않았는데, 글을 쓴다는 사실이 까발려지자 글쓰기에 꼭 필요한 고독은 줄고, 두려움만 늘어갔다. 책이 잘 안 팔릴까 두렵고, 내 책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두려웠다. 누군가 내 책이 보잘것없다거나 작가가 세일즈맨이냐고 비난하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막상 칭찬이나 인정을 받을 때는 시기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한마디로 작가로서의 삶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모든 작가들은 작가의 자격이 있는지 공격을 받는다. 그것을 무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작가로서 살아남는 한 방법이다."
줄리아 카메론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 중
심지어 베스트셀러 작가나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한 작가들도 비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겨우 이 정도 책이 왜 잘 팔리는 거야?’ ‘대중적이긴 한데 영 깊이가 없어’ 등의 비평과 비난에 시달릴 수 있다. 깊이 있고 어려운 책을 낸 작가들은 ‘아무도 읽어 주지 않는 책이 무슨 소용이야?’ ‘몇 권이나 팔았대?’ 등의 비평을 피하기 어렵다. 어디 작가뿐이겠는가. 우리는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산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고통은 막상 닥치면 별것 아닐 때가 많다. 두려움은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두려움의 역할은 내게 겁을 줘 고통을 최대한 피하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의 실체가 없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뛰어들어야 한다. 막상 닥치고 나면 두려움 따위는 언제 있었나 싶게 사라지고 말 테니까. 파울로 코엘료의 <악마와 미스 프랭>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삶은 두려움의 연속, 교수대로 올라가는 계단' 어차피 교수대에 오르는 길이라면, 얼른 뛰어 올라가 두려움을 목매달아 버리자.
나 같은 겁쟁이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다 적자면 지면이 모자랄 것이다. 두려움 속에 숨어 있는 눈곱만큼의 용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고 싶다.
-나는 글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글을 쓰기 시작할 만큼 용감했다.
-6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원고를 투고해 내 책을 출간할 수 있을 만큼 용감했다.
-혼자 쓰기도 버거우면서 다른 사람들을 작가로 만들어 주기 위해 글쓰기 워크숍을 시작할 만큼 용감했다
-'난 못 해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격려해 책을 출간할 수 있도록 도울 만큼 용감했다
-12년 7개월 걸려 소설가로 등단할 때까지 소설 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만큼 용감했다
앞으로도 나는 더욱 용감해질 것이다. 내가 쓴 글들이 폴더 안에 갇혀있지 않고 출간되어 널리 읽힐 수 있도록 끝까지 출판사 문을 두드릴 수 있을 만큼 용감해질 것이다. 변죽만 울리거나 이미 나와 있는 글들에 기대어 안전하게 쓰는 글 말고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만큼 용감해질 것이다. 내가 출간한 책들, 곧 내가 낳은 자식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세상에 알릴 수 있을 만큼 용감해질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용감한 사람은 소수지만, 용기 있는 행동을 조금씩 쌓아갈 때 우리 모두는 용감해질 수 있다.
말 많은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굳건히 믿고 글을 완성해 책으로 출간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책 한 권을 출간했다고 작가의 여정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발전시켜 다음 작품을 써야 한다. 살아가는 동안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는 게 작가다.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 나 자신을 열어 보이는 것 같아 두려움과 의심이 따르기 마련이다. 의심과 두려움, 목매달아 버리자. 내 글을 좋아하고 내 글을 읽고 뭔가를 얻을 독자들이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쓸 수 없는 이유가 1,001 가지쯤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쓰는 당신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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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오늘도 쓰는 당신이 작가입니다' 30화 연재를 마쳤습니다.
매주 목요일 제 글을 읽고 응원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수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쓰는 당신이 작가입니다. 당신의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시카고대학교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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