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26
지금은 이메일조차 낡은 통신 수단이 되어버렸지만, 내 글쓰기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언제나 편지가 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담아, 오직 한 명의 독자를 위해 쓰던 그 시절의 글. 그 안에는 글자의 모양보다 더 중요한 떨림과 체온이 있었다.
나는 사실 손글씨를 잘 쓰지 못한다. 글씨체가 고르지 않고 못났다. 가끔은 내가 쓴 글씨를 못 알아볼 정도로 악필이다. 게다가 조금만 써도 손가락이 금세 아파온다. 어릴 적 연필 잡는 버릇을 잘못 들인 탓이다. 내가 쓰는 거의 모든 글은 노트북 화면에서 태어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손글씨를 그리워한다. 글자가 종이에 새겨질 때, 단순한 기록이나 문장을 넘어선 어떤 ‘살아 있는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손글씨로 글을 쓰면 모든 것이 느려진다.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 획마다 달라지는 압력, 종이 위에 남는 미세한 떨림까지. 글자가 문장이 되기 전에, 이미 몸을 통과한 자취로 남는다. 손글씨는 지우개로 지워도, 화이트로 덧칠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 불완전함 덕분에 한때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는다. 손글씨는 단순히 내용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한 사람의 호흡과 망설임까지 기록하는 증거물이다.
반대로, 타자로 친 문장은 언제나 매끈하다. 잘못 친 단어도 흔적 하나 없이 지워지고, 수십 수백 번을 고쳐도 원래의 흔적은 남지 않는다. 효율적이고 편리하지만, 지나온 시간이 말끔히 삭제된다. 때로는 빠른 속도가 사유를 앞질러 버리기도 한다. 생각이 충분히 익기도 전에, 손끝이 먼저 달려가 문장을 완성해 버린다. 과정은 삭제되고, 결과만 남는다.
내가 손글씨를 붙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똑같이 복제될 수 없는 것, 오직 나만의 것을 남긴다는 생각 때문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서투른 필체는 내 글의 서명처럼 각인된다. 활자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나만의 울림이 거기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글을 노트북으로 쓰지만, 새벽에 일어나 하루의 첫 문장만큼은 손글씨로 연다. 다이어리에 적는 짧은 일기나, 필사 노트의 몇 문장. 그 작은 의식이 내 글을 붙잡아준다. 타자로 쏟아내는 긴 글 속에, 조금이라도 내 필체의 숨결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기도 같은 것이다.
노트 한 귀퉁이에 흘려 쓴 메모, 다이어리에 남은 삐뚤빼뚤한 기록. 완벽하게 정제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나라는 사람의 시간을 증명한다. 손글씨의 아름다움은 그 불완전함에 있다. 흔들린 획, 번진 잉크, 삐뚤어진 줄 간격이야말로 살아 있음의 증거다. 그 사소한 자취 속에 나의 고유한 목소리가 있다. 진정한 글쓰기란 어쩌면 문장을 잘 꾸미는 일이 아니라, 나만의 흔적을 끝내 지워버리지 않을 용기일지 모른다. 오늘도, 서툴고 느리지만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삐뚜름한 글씨로 흔적을 남긴다.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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