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62
꿈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10년 치 기록’이라고 해서 어마어마한 분량이 쌓인 건 아니다. 꿈은 매일 꾸지만, 깨어난 뒤에도 기억나는 날은 드물다. 오히려 기억을 붙잡으려 애쓸수록 장면은 더 빨리 흩어졌다. 그러다 가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이미지가 남을 때가 있다. 장대한 서사가 다 사라지고 마지막에 남는 기묘한 파편. 그것이 내게는 글쓰기의 씨앗이 된다.
날이 어두워졌다. 달이 떠야 할 하늘에 커다란 뇌가 매달려 있었다. 천체처럼 아득한 거리가 아니라, 사다리만 놓으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였다. 희고 낡은 운동화 끈 같은 줄에 걸려 있던 그 뇌는 껍질 벗긴 호두처럼 매끈했고,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처럼 공중에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바라보았다. 낯선 두려움과 알 수 없는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깨자마자 책상 앞으로 달려갔다. 그 장면이 금세 망각의 물결에 휩쓸릴까 두려웠다. 글을 쓰는 일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재료를 오래 묵혀 깊은 맛을 내는 장 담그기 같은 글쓰기. 그리고 이처럼 순간을 다급히 붙잡아 기록하는 글쓰기. 나는 후자에 몸을 맡겼다. 손끝으로 이미지의 윤곽을 기록하고, 언어로 바꾸고, 문장으로 세우는 동안 잊힐 뻔한 생각들이 되살아났다.
100일 챌린지 또한 그런 기록의 연장이다. 매일 새벽, 꿈의 파편을 끌어올리듯 생각의 조각을 붙잡아 한 편씩 쌓아 올린다. 대부분은 이해조차 쉽지 않고,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날도 많다. 하지만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장대한 서사가 모습을 드러내리라는 믿음이 나를 움직인다. 결국 글은 꿈과 같다. 잡으려 애쓰면 애쓸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꿈.
꿈을 기록하는 일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본 본능적 유혹이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꿈의 이미지를 채집하며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걸 김영하 작가의 산문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뻔하지 않은 재료, 기묘하게 낯선 서사의 씨앗이 종종 무의식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 또한 그런 이미지를 읽으며 자신의 무의식을 반사경처럼 들여다본다. 그래서 꿈은 언제나 신선하고 매혹적인 창고다.
밤하늘에 걸린 거대한 뇌는 무엇을 뜻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더듬어가며 해석할 뿐이다. 그것은 내 사유의 핵심이거나, 글쓰기의 씨앗일지도 모른다. 뇌가 하늘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은, 사유가 결코 내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암시처럼 다가왔다. 그것은 인류가 오래 축적해 온 기억과 감정의 저장소, 즉 집단 무의식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그 곁을 맴돌며 번역을 시도하는 사람일 뿐.
사실 그 거대한 뇌는 스스로 하늘에 떠 있지 못했다. 운동화 끈 같은 소박한 매듭이 그것을 붙들고 있었다. 깊은 사유를 지탱하는 것은 의외로 소소한 단어 하나, 일상의 미세한 감각 하나다.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거대한 사유를 떠받치는 힘은 언제나 사소하고 우연한 발견에서 나온다.
나는 여전히 꿈을 기록하며 무의식을 의식으로 번역한다. 잠시라도 놓치면 흘러가 버릴 장면을 붙들어 언어로 옮기는 일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탐색하고 확인하는 방식이다. 밤하늘에 걸린 뇌는 여전히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닿을 듯 말 듯 떠 있는 그것, 그리고 그것을 붙잡으려는 나의 의지. 오늘도 나는 꿈의 파편을 현실로 옮겨와 기록한다. 언젠가 그 조각들이 모여 완전한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믿으면서.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