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61
나는 문장의 주술적인 힘을 믿는다.
오래전, 이 문장을 떠받치는 장편소설을 쓴 적 있다. 두 인물이 번갈아가며 한 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구조. 그들이 쓴 소설은 곧 그들의 현실이 되었고, 그들의 현실은 다시 소설 속 문장을 불러왔다. 스스로 등장인물이 되어 자기 삶을 써 내려가는 방식, 그것은 메타소설이자 삶의 가장 정직한 은유였다. 글이 삶을 움직이고, 삶이 다시 글을 낳는 순환.
글쓴이는 자신이 쓰는 대로 살고, 산 대로 쓴다. 이 믿음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체험에서 나온 진실이다. 내가 쓰는 모든 문장은 비록 노골적으로 나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결국 내 삶과 미래에 스며든다.
글을 쓸 때 우리는 마치 책장을 넘기듯,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글을 쓰면서 어릴 적 장면 하나를 불러낸 적 있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열 살의 나. 튀튀를 입고 무대 위에서 빙글빙글 돌던 기억. 재능 없음이라는 낙인이 작은 열망을 덮어버렸고, 기억은 곧 희미해졌다.
그 장면을 글로 쓴 후,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거짓말처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취미 발레 수업을 소개하는 지인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길로 나는 다시 발레 슈즈를 신었다. 쏘떼(sauté)를 하며 몸을 위로 띄워 올릴 때, 가볍게 날아오르던 감각이 돌아왔다. 잊힌 꿈이 문장에서 깨어났고, 현실은 그 꿈의 길을 찾아냈다.
비슷한 일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오래 갈망만 하던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아마추어 밴드를 꾸려 무대에도 올랐다. 도심의 한 모퉁이에서 버스킹을 하고, 작은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물감을 만지며 유화를 그렸고, 생경했던 차(茶)의 세계에도 발을 디뎠다. 아이들과 한 달씩 여행을 떠나며 새로운 시간을 쌓았고, 가족 밴드를 만들어 음악으로 서로에게 다가갔다. 작가가 된 것은 어쩌면 그 모든 길목에서 따라온 작은 부산물이었을지 모른다. 글을 쓰는 삶은 글쓰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고 생기가 넘쳤다.
심리학은 이런 현상을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 부른다. 믿음이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이 현실을 바꾼다. 아무 성분도 없는 위약이 모르핀의 절반가량의 진통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플라세보 효과가 보여주듯, 기대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 글은 기대와 믿음을 언어로 구체화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작가가 되라고 권하지는 않지만, 꼭 글을 쓰라고 강권한다.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삶을 다른 궤도로 밀어 넣는 힘이기 때문이다. 문장은 나를 움직이는 주문. 한 줄의 문장이 내일의 나를 불러온다.
이제 오늘의 문장을 쓰려할 때마다 나는 망설인다. 한 번의 선택이 미래를 불러온다면, 이 순간 쓰는 문장이 내일의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글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무게는 삶의 궤도를 바꿀 만큼 무겁고, 동시에 날아오를 만큼 가볍다. 나는 다시 묻는다. 어떤 세계에서 내일의 눈을 뜨고 싶은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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