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빙'이란 말을 그렇게 자주 써?
티브이 뉴스에서 '얼마나 추웠으면 유빙이 둥둥, 북극해처럼 변한 서해'라는 타이틀의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수십 년 만의 초강력 한파를 강조하기 위해 극지방에서 볼 수 있는 유빙이 강과 바다를 뒤덮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강 위를 둥둥 떠다니는 작은 빙산 같은 유빙이 화면을 가득 덮었다.
"유빙이란 말을 그렇게 자주 써?"
뉴스를 함께 보던 남편이 물었다.
"아니, 나도 시에서만 본 것 같아."
알래스카나 아이슬란드에 사는 것도 아니니, 유빙이라는 단어를 쓸 일은 거의 없다. 극지방을 배경으로 하는 책을 읽거나 시 같은 문학 작품을 접할 때가 아니라면.
"짧은 뉴스에서 계속 유빙, 유빙, 하니 좀 거슬리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마치 '유빙'이라는 단어를 학습하기 위해 일부러 반복해 수십 개의 문장을 만든 어학 비디오처럼, 귀에 남는 건 기사의 메시지가 아니라 '유빙'이라는 단어뿐이었다.
"'유빙'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어 너무 기뻤나 봐."
농담으로 건넸지만, 그 말은 내게 단순한 농이 될 수 없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금을 캐듯 새로운 단어나 아름다운 어휘를 발굴해야 한다. 어쩌다 그런 단어를 만나면 신이 나서 이 문장, 저 문장에 넣어 본다. 새로 산 옷을 이것저것 다른 옷들에 대어 보며 코디하는 것처럼. 그런 과정에서 조화롭지 않은 문장을 만들기도 하고, 그 어휘를 남용하기도 한다. 과한 액세서리를 덜어낼 때 보다 세련된 코디를 완성할 수 있는 것처럼, 문장 역시 퇴고의 과정에서 '덜어내기'는 필수다. 지나치게 반복되는 표현은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을 주는 표현으로 바꾸기도 한다. 지난한 과정을 무수히 되풀이해야 정제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메시지는 날아가고 유빙, 유빙, 유빙 밖에는 남지 않았지만, 그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걸 발견한 뒤 하루종일 그걸 쥐고 신나게 노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줄 시처럼 정밀하게 세공된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 다른 편에는 세련되고 우아한 문장 따위 꺼져버려, 하는 마음도 존재한다. 거칠고 투박해도 좋으니 원석 자체가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돌을 볼 때마다 어떻게 깎을까, 만 고민하다 보면 원석 자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심지어 원석을 만나는 게 두렵다. 내가 천편일률 무개성하게 깎아버리게 될까 봐.
유빙, 유빙, 유빙, 하면 어때. 언제 또 유빙이라는 단어를 써 보겠어. 유빙은 물 위에 떠내려가는 얼음덩이기도 하지만, 유빙, 유빙, 하는 소리는 이제 막 시동을 걸고 어딘가 출발하려는 탈것의 엔진 소리 같기도 하다.
유빙, 유빙, 유빙!!
자, 지루하고 고된 퇴고 따위 집어치우고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써보자.
유빙, 유빙, 유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