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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Oct 27. 2022

4.2km 마라톤의 감정선  

말아톤 아니고요

'사랑, 하나, 오티즘 레이스'

자폐성 장애를 후원하는 마라톤에 참가하기로 했다.


관심도 없었던 자폐성 장애, 발달장애에 관심이 생기고,

마라톤, 등산 이런 것에 질색하던 내가

자발적으로 마라톤에 참여하게 된 중심에는 상윤이가 있다.


네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을 세상의 다른 면.


나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세요. 함께 살아가요!'

라는 문구를 배 번호판에 쓰고

진녹색 반팔티셔츠에 옷핀으로 고정한 뒤,

친정엄마가 이마트에서 행사 때 사주신 하나뿐인 러닝화를 신고


"엄마 다녀올게!"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4.2km를 자유롭게 뛴 후,

SNS 메시지로 완주 인증을 하면 끝.


처음이라 잔뜩 긴장했지만

'산책 삼아 자주 걸어봤으니 마라톤도 뭐 큰 차이 없겠지.' 생각했다.

목표는 걷지 않고 완주하기.


갑자기 닥쳐온 쌀쌀한 가을 날씨.

큰 일교차에 따라 초여름도 됐다가 한파가 오기도 했다가...

각자 옷들은 제각각.

어떤 사람은 털옷을, 어떤 사람은 얇은 긴팔에 경량 패딩을,

여기 한 명은 배 번호판 달린 진녹색 반팔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집에서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밖에 나와 사거리 횡단보도에 서 있는 순간부터

화르륵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계절에 배 번호판 달린 반팔티셔츠를 입고 있는 나.


배 번호판에는 '다름을 인정해 주세요. 함께 살아가요!'라고 쓰여있지만

부끄러웠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남들은 산책하며 걷는 길을 홀로 달리고 있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나갈 때

"엄마, 저 아줌마는 왜 달려?"

"마라톤 하나 봐."

"뭐라고 적혀있는 거야?"

수군수군 소리가 귀에 다 들어왔다.


하필이면 주말이라 공원과 광장에는 각종 행사들로 사람이 바글거렸다.


'차라리 달리자.

빨리 달려서 사라져 버리자.'

나는 부끄러움에 오버페이스를 했다.


차라리 달리는 건 괜찮았다.

중간에 한번 횡단보도에 멈춰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시선이 집중되는 듯한 느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딴청을 피워댔다.


마치 내 기분 상윤이가 된 것 같았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나온 후부터는 망가진 페이스를 찾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다.

숨이 가쁘다.

다리가 아프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 나오자 긴장하느라 느끼지 못했던 숨 가쁨과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최근에 제일 포기하지 않고 뛰었던 상황을 생각해보자.'

지금이 그 때라고 생각하고 뛰면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상윤이는 종종 실종되곤 했다.

보통은 30분 이내에 찾을 수 있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30분이 훌쩍 지나도록 찾질 못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었다.

실종이 된 상윤이를 찾느라 당시 나는 2시간 30분가량 쉬지 않고 계속 뛰어다녔다.


마침 실종된 상윤이를 찾았던 그 장소를 지나던 차였다.

'그래, 나는 실종된 상윤이를 찾는 중이야.

계속 뛰어야만 상윤이를 찾을 수 있어. 멈추면 못 만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뛰니 발에 힘이 들어간다.

다리는 계속 움직이고 나는 페이스를 찾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때의 감정까지 파고들어 버린 것.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순식간에 정말 사연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무슨 사연이길래 저렇게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달리고 있을지 궁금하겠지?

아무 사연도 없어요. 저는 그냥 기부 달리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눈물을 참으며 뛰기는 계속되었다.

따르릉 자전거가 지나가고,

파워워킹을 하며 운동하는 사람들도 지나가는데

모두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차라리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뛸걸 그랬네.

다른데 정신을 두고 뛰면 이런 잡생각은 좀 덜 들 텐데...

신랑한테 블루투스 이어폰을 빌려올걸...

그런데 난 아직도 블루투스 이어폰이 뭐가 편한지 모르겠어.

유선 이어폰은 구멍에 꽂기만 하면 바로 작동되는데

무선 이어폰은 블루투스도 찾아 연결해야 되고 배터리도 빨리 닳고

매일 충전도 해야 되고 불편한 것 투성인데 다들 무선 이어폰만 찾는 걸까.

이런 생각이 꼰대 생각이지.

완전 아줌마네 아줌마.


하긴 난 유선 이어폰도 없다.

상윤이가 다 물어뜯어 고장 내거나 사라져 버렸잖아.

집에 가면 유선 이어폰이든 무선 이어폰이든 하나 챙겨둬야겠다.

그런데 지금 얼마나 온 거야?

아직 반도 안 왔어?

아니지, 3분의 1이나 왔네.

좋아, 3분의 2만 더 뛰면 돼.


아 콧물이 나온다.

진짜 지긋지긋한 비염.

휴지도 없는데 어쩌지?

쿨쩍 쿨쩍 들이마셔버리자.

마시면 나오고 마시면 나오고 짜증 나 콧물!'


이런 잡생각을 하면서 뛰다 보니 어느새 절반을 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서러워졌다.


'내가 왜 이거 한다고 해가지고...

이게 다 김상윤 때문이야.

내가 자폐성 장애인의 엄마이기 때문이야.

네가 비장애인이었으면 내가 이런 거 안 해도 되는 거잖아.'


또 서러움이 북받쳐올라 차가운 뺨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눈물과 함께 다시 콧물도 같이 흐르고

나는 온전히 나의 - 날숨 두 번에 들숨 한번 - 거친 숨소리에

발구르기 여덟 번과 콧물 쿨쩍 한 번의 박자를 맞추며 전진해 나갔다.


이내 잡생각도 없어지고 묵묵히 전진해 나가다가

마지막 1km가 남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다른 착장이고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한 번씩 흘긋 쳐다보지만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이 상황에 익숙해진 것이리라.


나는 달리는 동안

네가 달라서 느꼈을 법한 부끄러운 감정을 공유했고,

네가 다르기에 너를 잃어버렸던 슬펐던 경험을 재생했고,

너의 다름에 대한 근본적인 원망도 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너의 다름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중이다.


너의 다름은 특별하지 않으므로

너의 부모는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인 거야.


끝까지 걷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완주가 하고 싶었다.

마치 이 마라톤은 '너와 함께 가는 나의 삶'과 닮아있었다.

나는 너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젠 오히려 쳐다보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배를 내밀고 알려주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자폐성 장애인의 엄마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다름을 특별하게 보지 말아 주세요.

인정하고 존중해 주세요. 우리 함께 더불어 살아가요.'


터덜터덜

4.2km를 완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왔던 길 그대로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갔다.


프리마켓이 화려하게 열린 광장을 지나,

하루 종일 축제로 번잡한 공원을 지나...

나는 그대로.

배 번호판이 달린 반팔티셔츠를 입은 나는 그대로.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그 속에서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다르다고 느끼고 괜히 긴장했던 건 나 하나뿐일지도 모르겠다.



4.23km

28분 26초 완주.




















당신의 오늘 하루도,

특별함 없이 평범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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