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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가제트'가 아니야

by 윤 log

나 어릴 적 아주 좋아했던 TV만화 시리즈 ‘형사 가제트’

자유자재로 팔과 다리가 뻗어져 나오고 중절모에선 프로펠러가 짠하고 등장해 어디로든 날아가는 신사 로봇.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때면 가끔씩 이 가제트 로봇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마지막 주 여름방학을 보내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내(엄마들의)가 하는 일들을 생각해 본다.


아침 시간

할 일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제 마무리했었어야 했지만 다 못한 일들이 다음날 아침 한꺼번에 나를 반긴다.

개인적인 일도 집안일만큼 많기에 미뤄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집안일은 완벽히 끝내야 본전이고 안 하면 '엄마가 제때 일을 안 했구나'라고 바로 알아차리게 된다.


방학이지만 3주간 이어지는 방과 후 수업을 하러 학교에 가야 하니 아침엔 시리얼, 토스트, 계란밥 같은 간단한 메뉴를 주고 하교하면 배고파하는 아이들 점심을 챙긴다. 첫째는 국과 고기가 있어야 한 끼 잘 먹었다는 '한식파', 둘째는 양식을 더 잘 먹는 아이였는데 이젠 오빠와 비슷한 식단을 주어도 맛있게 잘 먹어주어 따로 또 다른 메뉴를 만들지 않아도 돼서 한결 편해졌다. 그래도 돌밥돌밥돌밥(돌아서면 밥때)의 루틴은 여름엔 정말 쥐약이다.

설거지를 하다가 아이가 뭐가 안된다고 부르면 깨끗이 씻어 해치우고 싶은 그릇들을 뒤로하고 고무장갑을 낑낑대며 벚어젖혀 나름 정성껏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으로 딱 붙어있는 레고를 분리한다. 다시 고무장갑을 손에 끼자마자 이번엔 화장실에 화장지가 떨어졌단다.

그래, 이 그릇들보단 너의 엉덩이를 더 빨리 닦아야겠지.. 그럼 그럼..


속도 차이가 많이 나는 우리 집 남매

첫째는 밥을 차리자마자 앉아서 바로 식사 시작이다. 다 차려준 후 마지막으로 내가 앉으려 하면 다 먹었다고 일어난다. 영상기법으로 디졸브 처리가 돼버린다. 아.. 마치 페이드 아웃처럼 아들은 스리슬쩍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래, 오늘도 빨리 먹었구나,’ 그러니까 살이 찌……’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일어난다. 그럼 내 숟가락을 집기도 전에 첫째가 먹고 난 숟가락과 젓가락 그리고 식기들을 먼저 치운다.

바로 이어서 둘째 놈. 계란말이에 들어간 당근과 양파를 젓가락으로 세심하게 연구하듯 제거하고 있다.

(그녀의 연구대상은 밥 속의 콩, 귤껍질을 까고 나면 귤에 붙어있는 하얗고 길쭉한 아이들, 이빨로 다 뜯어내어 없는 손톱으로 잘게 잘게 벗겨낸 포도 껍질. 온 세상의 껍질들과 야채들을 연구 중이다)

난 그래도 당근은 조금씩 섭취해야 함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려 입도 쉬지 않는다.


오후 시간

첫째는 피아노 수업 마친 후 친구들과의 달콤한 매점 방문과 자전거 라이딩 그리고 아파트 주민 카페에서 휴식시간을 가지며 나름대로 시간을 보낸다.

둘째는 최근에 수영을 배우고 있다. 첫째도 걱정이지만 둘째인 딸도 갑자기 살이 올라 걱정하던 차에

학교에서 배웠던 생존수영 경험과 제주도 리조트 수영장에서의 재미있었던 기억인지 먼저 수영을 배우겠다고 해서 옳거니! 제일 빨리 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고 선착순 접수에 성공했다. 이제 한 달 넘게 배웠지만 재밌어하니 뿌듯하고 참 다행이다 싶다.

첫날은 낯선 환경이니 탈의실, 샤워실도 같이 가서 도와주었다. 이젠 같이 강습받는 아이들과도 친해지고 수영할 때 장난도치는 모습을 보니 여유가 생긴 것 같아 안심이 된다. 딸아이 수영 끝나기를 기다리는 그 한 시간이 내겐 너무나 달콤한 시간이 되었다. 날 더운 여름 아이들이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것만 보고 있어도 힐링이다.


저녁 시간

여름이라 땀이 많이 나는 계절이니 보양식 위주로 식단을 짜본다.

간단한 레시피로 온 가족이 풍성하게 먹을 수 있는 삼계탕은 여름철 자주 해 먹는 음식이다. 푹 익힌 닭다리 하나씩 뜯어주고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 밥을 툭 말아먹으면 특별한 반찬 없이 시어머니표 김치만 있으면 아이들도 아주 맛있게 먹는다. 그럼 자연스럽게 다음 날 아침메뉴는 닭죽. 이렇게 효율적이고 영양가 많은 음식이 있을까 싶다.

이 외에 돼지고기 수육, 김치찌개, 감자전, 김치전, 부대찌개, 계란말이, 일주일에 한 번은 내가 좋아하는 김밥, 오징어 볶음, 가자미 부침, 콩나물 비빔밥, 비빔국수, 북엇국, 미역국, 스파게티, 스테이크 등등등

외식도 종종 하지만 항상 어제 뭘 먹었는지 아이들이 오늘은 뭘 좋아할지, 오늘은 또 뭐 먹지? 고민의 연속이다. 가끔 우리 집에 라면과 짜파게티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덩실 춤을 추며 고마워한다.


이번 주로 끝이 나는 여름방학, 첫째의 초등 마지막 여름방학인데 많이 챙겨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졸업하기 전 선선해질 가을엔 좋은 추억 하나 남겨주고 싶다.






(아이들 방학과 함께 자체적으로 브런치 글을 2주간 쉬었습니다.

잘 쉬었으니 다시 글쓰는 사람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랫만에 어렸을 때 모습이 담긴 아이들 사진이 눈에 들어와 몇 장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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