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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Sep 21. 2022

내돈내산 근육통

초보 크로스핏터의 근육통 극복기

"여보, 근육통이 이렇게 심한데 운동해도 되는 거야?"

"응, 그래. 참아."


"여보, 나 배가 너무 아파. 원래 복근도 근육통이 오는 거야?"

"응, 그래. 참아."


"여보, 나 온몸이 아파"

"응, 나도 그래. 참아."


 매정한 인간. 나의 징징거림에 남편은 매몰차게 철벽을 쳤지만, 크로스핏을 시작하고 처음 몇 주간 내 나름 근육통과의 전쟁을 치렀다. 헬스를 꾸준히 했던 남편은 그나마 나았지만, 근력운동과는 담쌓고 살았던 나는 학창 시절 수련원에서 기합을 받았을 때처럼 근육통이 심하게 왔다. 온몸의 근육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듯했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주리를 트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으윽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계단을 내려갈 때는 이 고통이 빨리 끝나도록 어기적어기적 뛰어 내려가면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누가 보면 정신이 아픈 사람인가 보다 했겠지만 그 편이 한 걸음씩 고통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때의 나는 숙련자들 사이에서 원래 그렇게 빠르게 해야 하는 줄 알고 속도를 맞추느라 근육통이 더 심했던 것 같다. 정말 크로스핏의 ㅋ자도 모르는 초보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는 다른 근육통이 찾아왔다. 그날도 나는 몸풀기부터 남들 속도에 맞추느라 마음이 급했다. 허겁지겁 스쿼트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허벅지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그동안의 묵직한 근육통이 아니라 찌르는듯한 느낌이었다. 아직 본 운동은 시작도 안 했는데 몸풀기에서 벌써? 아무리 다리를 두드리고 스트레칭을 해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그날 나의 기록은 남들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했다.


 운동을 마치고 절뚝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 다리는 아픈데 체력은 또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평소 같으면 이미 방전되어 안녕을 고했을 체력이 제 갈길을 가다 말고 '운동 제대로 안 했네!'라며 타박하는 것 같았다. 속상하기도 하고 겁도 났다. 근육이 어딘가 심하게 다친 건가? 이대로 당분간 수업을 쉬어야 하나 걱정이 됐다. 집에서 얼음찜질과 스트레칭을 하며 눈으로는 열심히 나와 비슷한 증상에 대해 검색해봤다. 횡문근융해증*, 근육 파열 등 무시무시한 병명들이 나왔다.

*횡문근융해증: 근육이 괴사 하여 근육 성분이 혈액으로 방출되는 증후군. 주요 증상은 근육통, 적갈색 소변 등이 있다.


"여보, 나 근육 파열은 아니겠지?"

"응, 아니야. 참아."


"여보, 나 내일 병원 가볼까?'

"응, 아니야. 마사지나 해."


"여보, 나 내일 운동 갈 수 있을까?"

"응, 가야지. 얼른 자. 내일 9시 기상, 10시 수업 간다!"


 참으로 매정한 인간. 아픈 다리와 서러운 마음을 부여잡고 잠에 들었다. 이 상태로 내일 아침 수업에 또 참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그 정도의 운동도 하긴 했다고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거짓말처럼 다리는 멀쩡했다. 다행히 쌩쌩해진 몸으로 아침 수업에 참석했다. 전날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한 덕분에 오랜만에 근육통도 없었고 몸도 개운했다. 오늘은 내 속도대로 천천히 운동을 하자고 다짐했다. 어차피 나는 생초보에 우리 박스의 지정 꼴찌니까 마음 편히 꼴찌를 하자. 점핑잭*도, 버피*도 천천히 내 속도대로 진행했다. 그리고 그날은 끝까지 통증 없이 운동을 끝낼 수 있었다.

*점핑잭: 팔 벌려 뛰기

*버피: 스쿼트 자세에서 바닥에 손을 짚고, 점프하듯 다리를 뒤로 뻗어 푸시업 자세를 만든다. 바닥에 가슴을 닿게 한 후 다시 점프하듯 다리를 몸 쪽으로 당기며 일어나서 점프를 하면 한 개가 끝난다.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남자들은 쥐라고 표현하는 근육경련을 한 번씩은 겪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운동과 담쌓았던 나는 쥐가 내린 적이 없기에, 찌르는듯한 통증이 근육경련인 줄도 몰랐다. 워낙 근육량도 적었고, 크로스핏 같은 고강도의 운동을 처음 하다 보니 근육이 버티질 못한 것이다. 나란 종이 인형, 아직도 갈길이 멀다. 


 크로스 핏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가 되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지 근육경련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로도 크고 작은 근육통은 계속됐다. 나는 어깨와 등 심지어 배에도 이렇게 강한 근육통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심각하지 않은 근육통은 내 근육이 그만큼 자극을 받고 성장하는 증거라고 여기고 즐기면 된다. 나처럼 과하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 폼롤러나 스트레칭, 얼음찜질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는 뱁새를 나무라는 황새는 없다. 혼나지 않으니 숙련자들에게 맞추려고 가랑이를 찢지는 말자. 뱁새가 무리하게 황새를 쫓아가려고 하면 나처럼 쥐가 나거나, 심각한 근육통이 생길 수 있으니 자신의 수준에 맞는 속도와 무게로 안전하게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혹 심한 근육통은 정말 심각한 질병의 전조 증상일 수도 있으니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잘 들여다 보자. 며칠이 지나도 낫기는커녕 점점 심해지는 근육통에는 근육이완제를 복용하는 게 효과적일 수도 있다.


물론 근육통이 나 같은 종이 인형에게만 오는 것은 아니다. 헬스를 오래 해온 남편도 크고 작은 근육통을 겪고 있다. 어제는 무리한 기록 욕심을 부리더니 온몸이 아프다며 축 쳐져 있다. 기회는 이때다. 나의 복수를 받아라.


"괜찮아.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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