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단언집 16화

책상

글을 읽거나, 쓸 때에 받치고 쓰는 상

by 유예리

집에서 하루를 보내는 날이면,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지낸다.

나에게 책상은 또 다른 집이다.


독특하게 책상을 작게 쪼개서 쓴다. 흔히 볼 수 있는 1200(이 글에서 길이는 모두 mm 단위다) 짜리 책상을 4 구역으로 나눴다. 먼저 제일 오른편에는 세로크기가 책상과 딱 맞는, 가로는 400인 갈색 칼판을 깔아 두었다. 그 위에는 속지를 재조합한 A5 크기의 노트가 항상 자리를 지킨다. 노트는 아이디어를 만들거나, 번뜩 떠오르는 글감을 적는데 쓴다. 갈색의 구역은 작업실이다.


그 위에 한 단을 높일 수 있는 선반이 있다. 너비는 400 남짓이라 칼판과 딱 맞고, 폭은 200 정도로 그다지 넓진 않다. 그래도 그 위에 필요한 것이 모두 올라가 있다. 시계, 달력, 필기구, 포스트잇, 그리고 달마다 엽서 사진을 바꿔둔다. 높이가 100쯤 올라와 그 아래를 서랍처럼 쓰는데, 필요하지만 숨기고 싶은 것들은 그곳에 둔다. 선반은 붙박이장이다.


책상 중간이 되는 구역은 노트북과 키보드가 있다. 업무도 하고, 게임도 하고, 이렇게 글도 쓴다. 노트북은 스탠드에 올려두어 시선이 제일 높은 곳에 있고, 키보드는 필요에 따라 스탠드 밑에 넣어두거나 빼 쓴다. 키보드를 넣어둘 때면, 노트북 앞 공간이 제법 생긴다. 그러면 밥도 먹고, 커피와 다과를 즐기며, 책을 두고 읽기도 한다. 이 구역은 마치 거실이다.


마지막, 제일 왼쪽은 누가 봐도 서재다. 한 달에 4권의 책을 번갈아가면서 읽어내는 탓에, 읽고 있는 책을 손 닿는 곳에 놓아뒀다. 책의 범위와 내용을 헷갈리지 않으려면 책갈피와 인덱스를 치열하게 붙여야 한다. 그 때문에 많은 책갈피와 인덱스가 함께 자리한다.


책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학부 때 보았던 설계 도면이 생각난다. 네모 반듯한 책상에 반듯하게 공간을 나눠두었으니 비슷한 구석이 있다. 구역 경계는 뚜렷하나, 그 간에 침범은 자유롭게 허용한다. 마치 문을 경계로 넘나드는 주거 공간과 유사하다. 그러니 책상을 집에 비유해 적었다.


책상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건축학 교수님의 말씀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는 책상을 나와 같은 시선으로 보았던 게 아닐까. 지금에서야 그 말을 이해한다.





이 글은 디퍼(differ) 툴킷 '단어를 탐구하며 관점을 키우는 법'을 활용해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이야기 나누어 글로 남길 수 있도록 기회 주신 differ 커뮤니티에 소소한 감사 인사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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