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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y November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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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Nov 26. 2024

군고구마

11월 26일





참 이상하다. 1년 동안 고구마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다가 싸늘해지는 11월이 중순이 지나고 곳곳에 고구마 구워지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면 고구마 생각이 난다. 옛날에는 한겨울에 나오는 군고구마 드럼통 앞에서 종이봉투에 담아주는 군고구마를 사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요즘은 편의점 앞만 지나가도 달큼한 군고구마 냄새가 진동을 한다.


고구마를 떠올리면 대만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만의 겨울은 춥다기보다 으슬으슬하다. 살을 에이는 추위가 아닌 습하고 으슬으슬한 추위와 함께 비가 지속된다. 공기 중의 많은 습도는 냄새를 더 오래 머금게 하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 대만의 편의점에서 맡았던 군고구마 냄새와 차예단(茶葉蛋-달걀을 찻잎과 간장에 조린 것) 냄새는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다. 차예단은 향신료 냄새 때문에 한번 먹어보고는 절대 먹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냄새만큼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작은 기계 속 돌멩이 위에서 잘 구워지고 있는 군고구마 냄새는 항상 나를 유혹했다. 구마 껍질과 고구마 살갗 부분의 사이가 적당히 벌어져 쭈글쭈글한 껍질 안에서 흘러나온 꿀 같은 육즙이 살짝 묻어 나와 있는 게 맛있다. 그렇게 처음 겨울의 대만 편의점에서 사 먹은 군고구마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고구마가 이렇게 달 수 있다고?' 싶을 정도로 달콤함과 고구마의 쫀득거림이 천상의 맛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동안 인생을 헛살았구나... 이런 고구마의 맛을 처음 보다니... 내가 그동안 먹었던 고구마는 고구마도 아니었어...'


내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맛있게 먹었던 고구마는 통영 욕지도에 사시는 엄마 친구분께서 보내주셨던 고구마였다. 그때 그 고구마보다 더 맛있는 고구마는 없을 거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대만에서 이런 고구마를 맛볼 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게 여러 번 편의점에서 고구마를 사 먹던 나는 아는 동생과 함께 합리적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고구마를 굽기 전에 설탕물에 담가두는 걸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달다고? 매번? 시나당 같은 단맛이 나는 조미료미리 담가두는 게 아닐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한번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뭐 굳이 그렇게 까지 하지는 말자며 우리는 다이어트를 핑계 삼아 군고구마로 끼니를 때우고는 했다. (물론 여러 차례의 끼니 중 한 끼였지만...) 이 맛있는 꿀고구마는 더 이상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고 그만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타이베이 구팅(古亭) 역 근처에서 군고구마를 파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발견하고 말았다. 우리의 다짐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고 그 할아버지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밤 5시 이후에 군고구마 드럼통을 가지고 나오시는 할아버지의 고구마는 편의점 고구마의 설탕 같은 인위적인 단맛이 아니라 진짜 고구마 자체가 쫀득하고 달달한 맛이었다. 종이봉투에 담긴 따끈한 군고구마를 품에 안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내내 바람결에 내 코끝을 살살 간지럽히던 달큼한 군고구마 냄새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포실한 밤고구마 말고, 촉촉한 꿀고구마가 좋다. 쫀득하고 달큼한 고구마가 구워지면서 그 풍미를 폭발시키는 듯한 고구마 냄새는 나로 하여금 겨울을 연상시킨다. 아이를 등하교시키며 지나다니는 길에 편의점 곳곳에서 고구마가 구워지고 있다. 차가운 바람과 구워지는 고구마 냄새가 솔솔 풍겨나면서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시작을 알려준다.


어쩌면 이제 추억으로 음식을 찾게 되는 나이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에어프라이기에 욕지도에서 온 꿀고구마 4개를 넣어 굽는다. 그리고 구워지는 군고구마의 달큼 냄새와 함께 쫀득한 추억을 한입 베어 문다.


겨울의 맛이다.






이미지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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