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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May 19. 2024

너와 다른 나, 나와 다른 너.

플라스틱 수납장 사건





물건은 무조건 많은 게 좋아.
한번 살 때 싸게 많이 사면 이득이잖아.
언젠가 쓰일지도 몰라.
일단 사놓고 보자.
어딘가엔 쓰일 거야.
어차피 있어야 할 건데 사두면 좋잖아.


물건은 필요한 것만 있어야 해.
수납장이 많을 필요가 없어.
필요할 때 그때 가서 사면돼.
  물건을 하나 사도 여러 가지 방면으로 고민해 보고 물건의 쓰임이 다할 때까지 쓴다는 생각으로 사야지.








신랑과 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부터 열까지 안 맞는 것 투성이었다. 연애할 때는 그냥 성격이 다르다는 정도였다면 결혼을 하고 나니 생활방식부터 사물을 바라보는 사고방식 자체가 아예 달랐다.


남편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감정보다는 해결법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이다. 문제가 생기면 내 마음에 먼저 생채기가 난다. 지금 내가 슬프고 답답한 마음이 먼저 나를 지배한다.


이런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연애도 오래 했던 우리였지만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 생활방식부터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아이 기저귀와 손수건등을 보관할 서랍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홈쇼핑 채널에서 플라스틱 서랍장을 방송하고 있는 게 아닌가.


'오 좋은데? 무겁지도 않고 서랍장 개수도 많고 이리저리 조립도 할 수 있고.... 무독성이라고? 좋아 좋아'


원터치세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결제부터 구매까지 이어지는 건 몇 초도 안 걸린다.


문제는 이 서랍장이 배송되면서부터였다. 배송이 되던 날 우리가 집에 없었다. 친정에서 주말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나는 택배아저씨께 관리실에 맡겨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


집으로 돌아간 날 관리실 아저씨는 우리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듯 관리실에서 나오시며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느낌이 다.


관리실에 들어가니 엄청나게 큰 박스들이 내 키보다도 더 높게 쌓여있었다. 좁은 관리실에서 이 박스들과 함께 지내시게 했다는 생각에 관리실 아저씨께 너무 죄송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하고는 집으로 이 박스들을 옮기려는데 신랑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화를 꾹꾹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나도 아무 말하지 않고 일단 박스부터 옮기자 싶어 관리실에서 끌차를 빌려 집으로 옮겼다. 이미 배가 남산만큼 나와있던 8개월 임산부는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박스들을 옮기는 신랑의 눈치를 요리조리 살피는 것밖에는.


집에 들어와 박스를 뜯으면서 서로 참아왔던 분노와 감정들이 폭발했다. 신랑은 이 서랍장들이 왜 필요한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집에 수납공간은 이미 충분한데 왜 물건을 아무 대책 없이 구매부터 하냐고 했다. 나는 신랑이 택배박스들을 관리실에 맡겨두고 부피가 큰 박스들을 집까지 옮기는 것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 전혀 다른 문제들을 거론하며 화를 내는 신랑의 말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이 기저귀와 손수건 옷가지등을 넣을 서랍장이 필요해서 샀다고 내 나름 구매의 이유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날의 싸움은 서로 무엇 때문에 정말 화가 났는지 이해는 하지 못한 채 고구마 백개먹은 답답함만 갖고 '그냥 이미 산 거니까 잘 사용하자'로  마무리되었다.


신혼집에서 이미 방하나 옷방으로 만들어 서랍장과 옷장을 만들어 둔 상태였기에 신랑 그것만으로도 아이의 옷들을 보관하기에 충분한 수상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랑의 기준에서는 더 이상의 수납장이 필요하지 않다.


반대로 나는 서랍장 두 개 중 하나는 신랑 옷, 하나는 내 옷 그리고 옷장들에는 나와 신랑의 옷들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아이의 옷을 수납하고 정리할 수납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문제는 수납장의 개수와 불분명한 용도 그리고 집안에서 놓일 위치였다. 단순히 "아이옷"만 수납할 용도로 큰 사이즈 작은 사이즈가 다양하게 섞여있는 9개의 플라스틱 수납장이 과연 모두 필요했을까.


결국 작은 수납장 세 개는 화장대옆에서 각종 잡동사니들을 담아놓는 수납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화장대에 커다란 서랍장이 세 칸이나 있는데 그 옆에 굳이 플라스틱 수납장을 놓아서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담아두는 내가 신랑은 아마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는 옷을 보관할 장소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입는 옷이라 해봐야 배냇저고리 두세 벌에 내복들 천기저귀와 손수건들이니 서랍한칸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이 사실을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닫게 되었다.


과거의 나 자신을 아무리 탓하고 바보 같다고 생각해 보아야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런 선택이 없었다면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정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같으면 아마 수납장을 사기보단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해 보고 처분하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과연 알고 있을까? 어쩌면 안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적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다름을 인정하며 상대방의 생각이나 입장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문제적 상황들을 부딪히며 헤쳐나가야 할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들을 부딪힐 때마다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아닐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다양함과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적 사고방식을 가지려 노력해 본다. 이 또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이라는 선택을 통해서 워나가는 인생의 지혜일 것이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위의 노래가사처럼 단순히 나이를 들어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살아가며 맞이하는 매 순간, 매 선택에 대한 결과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라는 꽃이 제대로 피어날 수 있기 위해서는 어쩌면 많은 비바람을 맞이하고 버텨냄으로써 더욱더 향기로워질 것이다.









메인사진출처: 핀터레스트(Artpi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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