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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Apr 21. 2024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은 욕심의 대가이다.

진달래야 어디 있니?




스무 살, 학교 도서 사서일을 하면서 들었던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학교에 출근해서 믹스커피 두봉을 타서 진하게 마시고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믹스커피 두 봉지가 가져올 커다란 결과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커피 향이 내 하루의 시작을 위로해 주는 기분이었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게, 더운 여름에는 차갑게 마시는 믹스커피의 맛이란 너무나도 중독적이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원래도 날씬한 편은 아니었지만 50킬로 초반대였던 몸무게가 어느덧 앞자리가 바뀌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자에 앉을 때  기분 나쁘게 내 엉덩이가 꽉 끼는 기분이 들었다. 걸을 때마다 허벅지 안쪽에 마찰이 생겨서 지글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입고 다니던 옷들이 몸에 꽉 끼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 당시 나의 월급은 모두 우리 집의 생활비로 쓰여야 했기에 헬스를 가거나 돈을 들여 운동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습관처럼 먹던 믹스커피를 끊고 매일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를 보며 집에서 운동하는 것이었다. 달력에 엑스표를 치면서 3개월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했다. 계단이 있는 곳이면 무조건 계단으로 오르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녔다. 그랬더니 몸무게가 조금씩 이전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매일 운동을 할 때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근데 이런 운동이면 정말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너무 지겹고 매일 운동하는 게 괴롭게 느껴졌다. 살이 빠져서 좋긴 했지만 과연 이렇게 지겨운 운동을 매일 하며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쨌든 살이 빠지니 자연스레 지겹게 느껴지는 운동에 소홀해졌고 다시 먹는 양이 늘어나자 또 몸무게가 늘어나기를 반복했다.


가 부린 욕심(먹는 행복과 즐거움)과 고통(살이 찌는 것과 운동이라는 지겨움)은 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 아직까지도 수영하러 가는 시간이 즐겁게 느껴진다는 건 여태껏 내가 해왔던 운동들 중에 중독성이 가장 강한 운동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수영이 너무나 재밌다. 20대 때 무작정 따라 했던 다이어트 비디오처럼 재미없지도 지겹지도 않다. 마스터반에서 수영하시는 분들을 보면 보통 수영시작하신 지 10년이 훌쩍 넘으신 분들이 많다.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아침에 수영하고 가면 하루가 그렇게 개운하고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도 활기차게 하루를 수영으로 시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수영이라는 운동자체의 매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수영이라면 내가 평생 즐기며 할 수 있을 것 같은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재밌어서 일주일에 5일씩 수영을 다녔는데 몸이 점점 아프기 시작했다.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오른쪽 갈비뼈와 등 쪽 근육이 아프면서 경련이 오기도 했다. 목의 긴장도가 높아져서 하루종일 뻣뻣하게 굳은 목을 스트레칭해줘야 했다. 어깨와 등뒤 쪽 견갑골도 말썽이었다. 어깨를 돌리면 뚝뚝 나는 소리와 함께 통증이 시작되었고 등뒤에 담이 온 것처럼 하루종일 불편하게 느껴졌다. 물리치료와 도수치료를 받으면서도 수영하러 가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수영에 대한 즐거움에 치우쳐서 내 몸상태에 맞게 운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겪는 고통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지면서 내 몸이 보내는 신호들을 무시했다. 제대로 된 스포츠를 즐겨본 적이 없는 나는 수영의 재미에 푹 빠져 제대로 '잘'해보고 싶었다. 내 몸의 상태는 생각하지 않은 채 중도를 지키지 못했다.

 

결국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은 내가 부린 욕심의 대것이었다.







벚꽃들이 한차례 피고 지고 떨어진 꽃잎들은 바람에 흩날려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을 때 진달래와 철쭉이 피기 시작했다. SNS를 보다 창원에 있는 천주산이라는 곳에 진달래 군락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본 사진에서 천주산은 지금 온 산이 진달래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진달래 속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말았다.


가야 했다.


마침 신랑이 연차로 쉬는 평일이었다. 딸아이를 등교시키고 바로 천주산으로 떠났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보슬보슬 내리는 정도라 오전까지는 많이 오지 않겠지 싶었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가방에 물한병과 바나나 두개, 사탕 한 봉지만 넣어서 출발했다. 천주산 등산로 출발지에서 만난 할아버지께 진달래 군락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여쭈어보았다.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길로 가면 왕복 3시간 거리를 2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동네 뒷산 오르듯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달 한 번씩 신랑과 새벽에 올랐던 청도 운문산 사리암을 생각하니 그렇게 힘들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진달래 군락지라고 보인 사진 속에서는 가는 길이 나무데크와 계단으로 잘 되어 있어 보였다. 산에 오르니 빗방울이 굵어졌지만 신랑과 나는 오히려 더 운치 있고 좋다며 한껏 들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꾸만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아닌 산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갈림길이 자꾸 나왔고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옆으로 계속 둘러가는 느낌이었다. 포장도로가 아닌 흙길에 돌멩이들이 비를 맞아 미끄럽기까지 했다. 신랑이 앞에서 걸어가며 수차례 미끄러질뻔하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손바닥은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거센 빗줄기에 이미 온몸이 젖어있었다. 그렇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을 때 먼저 올라가셨던 등산객분들을 만났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라고 하셨다. 정상이 다 와가는데 도대체 내가 사진에서 본 그 진달래들은 어디 있단 말인가... 주변을 둘러보아도 내 눈에 보이는 건 짙게 깔린 운무뿐이었다. 내가 봤던 사진처럼 그 예쁜 진달래 속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돌아가고 싶었다. 그냥 돌아가자는 나에게 신랑이 조금만 더 가면 다 왔으니 그래도 정상은 찍고 가자고 했다. 황금 같은 평일 쉬는 날을 내가 망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가 오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괜찮다며 가자고 이끈 나 스스로가 너무나 바보 같았다. 자연 앞에 오만했던 내 모습에 실망스러웠다.


진달래 속에 파묻힌 사진 한 장 찍어보려고 부린 나의 욕심 때문에 비를 맞고 추위에 오돌오돌 떨기도, 차원이 다른 근육통과 피로감에 며칠을 고생했다.


그러나 우리는 늘 고통 속에서 무엇인가를 깨닫고 꽃 피우는 존재인가 보다. 무사히 산에서 내려온 우리 부부는 서로를 보며 따스하게 안아주었고, 서로가 있어 얼마나 감사한가를 다시 한번 느꼈다. 아무리 좋고 아름다운 곳이라도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우중산속이라도 버틸 수 있음을.


욕심을 부린 대가가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이라면,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꽃을 피우게 되나 보다. 그러니 고통의 순간 속에서 너무 고통스러워하지만은 않기를. 너무 아파하지만은 않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희망 그리고 아름다움을 찾기를 고대해 본다.





진달래야? 어디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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