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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Jun 30. 2024

타인의 말에 자주 상처받는 나에게 건네는 해답

말의 품격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엔 신랑은 아이와 수영장에 가서 놀다 오고는 했다. 덕분에 딸아이는 물에 대한 공포감도 없고 아빠에게 수영을 배우기도 했다. 신랑이 미국으로 3개월간 출장을 떠난 지금, 이제 나 혼자 아이를 데리고 주말마다 수영장에 가서 놀다 오고는 한다. 항상 함께 오던 신랑 없이 나 혼자 아이를 데리고 올 때면 신랑의 빈자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수영을 배우고 나니 아이와 둘이 와서 이렇게 놀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수영장에서 아이와 이토록 신나게 놀 수 있다니... 나의 변화가 나조차도 신기하게 느껴지고는 한다.


아이와 수영장에 들어가면 딸아이는 내 무릎에 앉은 채 품에 안겨있다. 8살이 된 딸아이를 품에 안고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아이의 볼에 내 볼을 맞대고 온기를 나눈다. 물온도에 조금 적응하고 나면 딸아이는 돌고래가 되어 수영장 물을 가르고 나아간다. 우리는 물속에서 숨 참기 대결을 하기도 하고, 몸으로 말해요 퀴즈를 하기도 한다. 1시간 반 정도 물속에서 신나게 놀다 보면 우리 둘의 손가락이 쭈글쭈글해지는 것을 발견하고 물놀이를 마친다.


지난 토요일, 그렇게 우리는 물놀이를 끝내고 샤워를 하러 나갔다. 샤워장 안에서 몸의 물기를 닦고 탈의실로 나와 머리를 말리러 가던 참이었다. 갑자기 옆쪽에서 누군가를 나무라는 듯한 큰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옆쪽으로 가보았다. 사물함이 있는 가운데 넓은 평상이 놓여 있는 곳에서 초등학생 여자 아이 두 명이 물을 뚝뚝 흘리며 몸의 물기를 닦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한 할머니께서 아이들을 혼내고 있었다.


"물기를 샤워장 안에서 닦고 나와야지! 이렇게 밖에서 물을  흘리고 다니면 너네가 지나온 자리에 있는 물기를 밟고 누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어?! 그런 것도 배우고 너네끼리 수영장에 온 거야?!"


할머니께서는 역정을 내시며 했던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며 아이들을 혼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놀란 토끼눈을 하고 닦던 몸을 마저 닦지도 못한 채 얼음이 되어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옆에서 보다 못한 다른 아주머니 한 분께서 더 심한 말을 내뱉으려는 할머니를 말리셨다.


"에고, 할머니 이제 고만 말씀하셔요. 아이들도  알아들었을 거예요. "


"얘들아 다음부터는 샤워장 안에서 물기를 닦고 나오렴. 밖에 나와서 닦으면 바닥에 떨어진 물기를 밟고 사람들이 미끄러지는 사고가 날 수도 있단다."


아주머니의 중재로 할머니는 혼잣말로 역정을 내시면서 나가시고, 아이들은 닦던 몸을 마저 닦고 자신들이 걸어온 자리를 되짚어 돌아가며 바닥에 떨어진 물들을 닦았다.


머리를 말리며 거울 넘어 할머니께 혼이 났던 아이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한 아이는 곧 눈물이 흐를 듯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다른 한 아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허둥지둥 옷을 입으러 락커를 향해 갔다. 그 할머니께서 아이들에게 역정을 내실 때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신경질적인 어투가 자꾸만 내 귓가에 맴돌았다. 만약 내가 저 아이들이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저 아이들이 내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했다. 그런데 잠시 끓는 마음을 멈추고 생각해 보니 나는 아이들의 입장을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감정이입해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왜 그토록 그 상황에 화가 나셨던 걸까. 머리를 말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 나에게 그 상황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딸아이가 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엄마, 아까 그 할머니 무서워..."


"음... 그러게... 할머니께서 예전에 바닥에 떨어진 물을 밟고  미끄러지신 기억이 으셔서 그 상황에 더 화가 나셨나 보다."


갈등의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서로의 입장을 가능한 이해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스레 하고 있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싸움도 다툴 일도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싸움과 다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 했다. 싸움이 일어날까 전전긍긍하며 불편한 상황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내 마음속 진짜 감정들을 억누르며 살아왔다. 그러나 얼마 전 수영장에서 겪은 할머니와 아이들의 일을 떠올려보면 진짜 '이해'한다는 것은 서로가 다른 존재이며 서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이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의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공감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그 과정은 사람마다 가진 인격이나 성품에 따라 과격해질 수도 지혜롭게 대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날 마음속에서 화가 끓고 반감이 생긴 이유는 그 할머니의 말투나 목소리에서 그분의 인품이 러났기 때문이 아닐까.



말은 오묘하다.
말은 자석과 같다.
말속에 어떤 기운을 담느냐에 따라
 그 말에 온갖 것이 달라붙는다.

...중략...

사람의 체취,
사람이 지닌 고유한 '인향人香'은
분명 그 사람이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이기주 <말의 품격> 중에서-


 







글을 쓰려고 키보드 앞에 손을 올려놓을 때는 대게 내 마음이 불편할 때이다. 불편한 마음을 글로 옮기려는 수고를 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때로는 불편한 마음속 깊은 내면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수면 위로 떠오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때 나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에서 신간, 베스트셀러, 이달의 책들을 전시해 둔 곳을 쭉 둘러본다. 그러다 보면 세상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엿보는 기분이 들고는 한다. 그렇게 둘러보다 발길이 머무는 곳에 가만히 시선을 응시해 본다. 마음속에서 떠오른 문제를 해결해 줄 만한 제목에 이끌려 몇 권을 꺼내어 목차를  펼쳐본다. 내 마음에 가장 와닿는 목차들로 구성된 책을 빌려와서 읽고는 한다. 어떨 땐 단숨에 읽히는 책을 고르기도, 잘 안 읽히는 책을 고르기도 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완독 하지 못해도 그 책 속의 어느 한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칼에 베인 상처는 바로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는다.
숨 막히는 세상이다.
정제되지 않은 예리한 말의 파편이 여기저기서 튀어올라 우리의 마음을 긁고 할퀸다.

-이기주 <말의 품격> 중에서-




나는 불편한 마음이 생기면 말을 함으로써 해소하려고 하는 편이다. 내가 편하게 느끼는 누군가(신랑)에게 말을 하고 나면 불편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고는 했다. 그러나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그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놓고 나서도 마음속 한 구석 어딘가에 해소되지 않은 불편함이 남아있고는 했다.


한참 블로그 활동을 할 때였다.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내가 몰랐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체험단' 활동이었다. 미용실, 맛집, 전자제품, 숙소등 자신의 블로그 주제에 맞는 방향으로 체험단 신청을 해서 선정되면 무상으로 이용하고 업체에 대한 글을 포스팅해 주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근처로 미용실 체험단, 맛집 등에 신청해서 체험단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집 근처 발마사지샵에 선정되어서 가게 되었다. 카운터에는 사장님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분이 계셨다.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시키며 어떤 부위가 불편한지 물어보았다. 한국분인 줄 알았는데 말을 하다 보니 한국분이 아닌 것 같았다. 마사지를 다 받고 나오려는데 사장님의 아내분이 발각질 제거도 같이 하면 좋다며 각질제거도 하고 가라고 하셨다. 발마사지와 각질제거를 같이하면 효과가 두 배라며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고 잠시 기다렸다. 그런데 밖에서 갑자기 신경질 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이 아내분에게 화를 내는 듯했다. 작은 목소리도 아니었고 바로 앞 복도에서 이야기하는 거라 나에게도 아주 잘 들려왔다.


"누구 마음대로 발각질제거를 받으라고 해?! 사람 바쁜데 왜 니 멋대로 이야기해서 일을 만드는 거야!"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니... 각질제거 안 받아도 되는데...' 누가 들어도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너무 불편한 상황에 나는 그냥 나오고 싶어서 일어나려는 찰나 사장님이 들어오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발마사지로 부족하셨나 봐요. 각질제거는 저만 할 수 있는 기술이라서 제가 해야 하는데 지금 뒤에 예약손님이 잡혀있어서 시간이 촉박하네요. 서비스로 한쪽발만 해드릴게요."


"아니... 저 괜찮아요. 제가 받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내 대답과는 상관없다는 듯 사장님은 기계로 발 각질 제거를 시작했다. 아주 불편한 공기 속에서 소심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각질제거를 받았다. 20대 때 아르바이트로 1년남짓 마트와 백화점 행사를 했던 적이 있다. 8시간 정도 높은 굽을 신고 서있어야 했던 일이라 그 이후로 발바닥에 굳은살이 많이 생겼다. 게다가 대만에서 공부하면서 항상 기숙사 바닥에 상을 펴놓고 공부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습관처럼 발바닥에 생긴 굳은살을 손으로 뜯고는 했다.


"굳은살이 이렇게 가로로 나있는 건 본인이 손으로 뜯은 거예요?"


"아... 네..."


"이런 건 기계로 갈아도 잘 안 없어져요. 피 만나지. 스트레스를 다른데 푸세요. 왜 엄한 발바닥에 풀고 그래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해 주셔도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서둘러 일어서며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자 남자 사장님이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글 좀 잘 써주세요~!!"


고 있는 얼굴과 달리 사장님의 말투는 무례한 듯 강한 억양으로 무언의 협박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사장님의 말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알아서 글 좀 잘 써줘.'


나가려는 나에게 사장님 아내분이 눈빛으로 미안한 듯 무언의 말을 건네는 것 같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신랑에게 있었던 일들을 말하며 불편했던 마음을 토해냈다. 신랑은 나와 정반대의 성격이라 신랑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후련하게 한마디 해주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나와 다른 사람인 신랑의 생각이 궁금해서 내 마음속에 생긴 불편한 감정이나 이야기들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감사한 것은 신랑은 내가 이런 고민이나 불편한 마음을 이야기할 때마다 늘 경청해 준다. 이따금 장난스럽게 받아치기도 하며 내가 너무 깊이 생각 속에 빠지지 않게 해주고는 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찾지 못한 해답을 나와 정반대의 성격과 사고방식을 가진 신랑은 쉽게 찾아내고는 한다. 불편한 마음을 토해내고 나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지만 아직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유독 타인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거나 기분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는 예민한 나의 기질을 탓하고는 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날아오는 뾰족한 화살 같은 말들을 내 마음속에 받아내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가시 돋친 말들이 나에게 들어와 소화되지 않은 채 남아있고는 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그리고 우연히 나의 발걸음이 멈춘 책 앞에서 그 해답을 얻었다. 이기주 작가님의 <말의 품격>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는 책 속에서 <실낙원>의 저자 와타나베 준이치의 말을 전했다.


우리에게는 "둔감력"이 필요하다.

"곰처럼 둔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인이 어떤 일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지를 자각하고 적절히 둔감하게 대처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둔감력은 무신경이 아니라 복원력에 가깝습니다."




무릎을 탁 쳤다. 무신경한 상태가 아닌 복원력, 그 일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나 자신을 들여다 보고 나만의 삶을 살아나가는 힘. 나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싸움을 목격하며 자라온 나는 갈등과 다툼의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어른보다는 아이의 마음에 감정이입을 해서 나와 동일시했기에 수영장에서 아이들을 나무라던 할머니의 태도와 말투에 화가 났던 것이다. 마사지샵의 사장님 또한 아내를 대하는 태도와 말투 목소리등에서 이미 편견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과거는 벽이 되기도 하고 길이 되기도 한다.

-이기주 <말의 품격>중에서-



벽처럼 단단히 쌓여 있었던 나의 과거를 자각하고 나니, 견고하고 답답하기만 하던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거가 나의 길이 되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듯한 지금의 세상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속도를 찾아 나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 피곤하고 복잡한 관계들 속에서 진정한 지기(知己)를 만나 그 인연 속에서 관계를 쌓아가는 것. 그렇게 나만의 체취를 가진 언어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당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한 송이 꽃이 되기를

<말의 품격>-이기주




누군가에게 한 송이 꽃을 건네는 마음으로 말을 하는 이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메인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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