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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Jul 07. 2024

하루 한잔의 커피가 나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

커피를 끊고 내가 얻은것




피는 언제부터 나의 일상 속에 이토록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을까? 커피 한잔은 나에게 여유로움을 주기도,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갈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커피 없는 하루를 상고 싶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와 처음으로 스타벅스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부산 남포동으로 나들이를 나온 우리는 설레는 마음에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번 마셔보기로 했다. 당당하게 들어가 메뉴를 주문하려 메뉴판을 보는데 가격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비쌌다. 밥도 먹고 디저트도 먹고 노래연습장도 가야 했던 우리의 예산에 커피 한잔 값으로 4~5천 원은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그래서 메뉴판 제일 위에 있던 가장 저렴한 메뉴 에스프레소 두 잔을 주문했다. 잠시 후 우리가 주문한 메뉴가 나왔고 친구와 나는 당황한 눈동자를 감출 수가 없었다. 에스프레소가 커피의 종류나 커피의 이름인 줄 알았던 우리는 아주 조그마한 시럽을 담아주는 잔에 나온 에스프레소 잔 두 개를 보고 실소했다. 마치 사약을 마시듯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호로록 마시고는 황급히 스타벅스를 나왔다.


'에스프레소인지 게스프레소인지 다시는 안 마셔!! '


그러나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는 것은 언제나 순탄했던 일보다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 좌충우돌 사고들이기에 이날 우리의 나들이는 에스프레소의 충격만 남긴 채 끝이 났다. 것이 커피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스무 살 때 서관 사서로 일을 하면서 나의 커피 사랑은 짙어져 갔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의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그 당시 나의 일터였던 초등학교가 나온다. 거의 산중턱에 위치한 그 학교는 규모는 작았지만 경치만큼은 끝내줬다. 뒤쪽으로는 초록이 무성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운동장에서 바라보면 바다가 훤히 내다 보였다. 아침 출근 후 내가 해야 할 일은 인사였다. 행정실과 교무실에 들러서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었다. 조용했고 창가에서는 산과 바다가 동시에 보였다. 믹스 커피 두 봉지를 머그컵에 붓고 진하고 달달한 커피 한잔을 창가에 서서 풍경과 함께 음미한다. 커피와 함께 책과 바다 그리고 산이 있었다.









스물셋,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리포트부터 시작해서 각종 시험들을 준비하면서 커피는 나에게 하기 싫은 일을 해낼수있는 힘을 주었다. 커피와 함께라면 밤을 새우는 일 정도야 문제없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빠졌던 믹스커피는 나에게 커다란 엉덩이를 남겨주었다. 그 살들을 힘들게 뺐던지라 믹스커피를 다시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다. 따뜻한 거 말고 차가운 얼음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습관처럼 아메리카노를 찾게 되었다. 향긋한 커피 향과 손에 닿는 컵의 차가운 냉기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다.


대만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커피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아졌다. 대만은 주로 중남미 국가와 수교를 맺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접하지 못했던 중남미 국가의 신선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대만에 지내는 동안 나는 커피의 종류에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두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맛도 달라지고, 추출방식에 따라서도 맛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대만에서 자주 애용했던 까마(Cama) 커피는 중남미 국가에서 직접 수입해 온 신선한 원두를 볶아서 커피를 내려주는 곳인데, 커피의 향이 정말 진하고 좋다. 매장에 앉아서 먹는 곳이 없고 테이크아웃으로 판매하기에 질 좋은 원두로 추출한 커피를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었다.




cama 커피



대만에서 커피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던 계기가 있었다. 처음 언어중심을 다녔던 정치대학교 정문 쪽에는 숨겨진 고수의 커피가게가 있었다. 이곳은 간판도 크지 않고 작은 규모의 가게라 그냥 지나치기 쉬운 가게였다. 부부 두 분이서 운영하시는 작은 커피집이었다. 이곳에서 맛보게 된 바나나 커피를 마시게 된 이후로 커피는 나에게 영혼의 단짝 같은 존재가 되었다. 처음에는 커피에 웬 바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의 추천으로 마셔본 이후로 이곳의 커피는 지금까지도 나의 인생커피가 되었다. 바나나와 우유를 함께 갈은 다음 에스프레소 샷을 붓고 그 위에 시나몬 가루를 얹어주신다. 바나나향이 커피 향을 헤치지 않고 잘 어우러지면서 오히려 입안에서는 커피의 원두향이 더 풍성하게 느껴진다. 산미보다는 다크하고 진한 초콜릿 맛 같은 원두의 향이 났다. 대만의 높은 습도와 계속해서 내리는 빗속에서도 따뜻하게 마시는 이 커피 한잔이면 모든 것이 사르륵 녹아버리고는 했다.


그렇게 서서히 커피의 매력에 스며든 나는 대만 유학생활을 하면서 단 하루도 커피 없이 지낸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시험기간에는 기본 3~4잔을 마셨고 평상시에도 1~2잔은 늘 마셔왔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은 나에게 숨 쉴 구멍이었다. 하루 24시간 어린 아이와 함께 하는 생활 속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그 순간만큼은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예 커피 머신을 샀다. 여러 가지 맛의 커피 캡슐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입이 심심한 것 같아 무엇인가 먹고 싶을 때 쌉싸름한 커피 한잔은 나에게 달콤한 간식 같았다. 우유 거품을 내서 시나몬 가루를 듬뿍 뿌린 카푸치노를 만들어 마시기도 차가운 카페 라테 한잔으로 허기짐을 달래기도 했다. 사실 커피의 진가는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 할 때가 아닐까 한다.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 마시는 쌉싸름한 커피의 조화로움은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수영을 시작하면서 16시간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다. 점심과 저녁을 먹고 그다음 날 점심까지 공복을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공복시간에도 아메리카노는 칼로리가 없어 수영하러 가기 전 커피 한잔을 습관처럼 마시기 시작했다. 운동하기 전에 마시는 커피는 운동효과를 더 올려준다기에 아침 공복에 커피를 마시고 수영을 갔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도 습관처럼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보면 하루에 두 잔씩은 마시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 남짓 지났을 때 우연히 유튜브 영상에서 간헐적 단식에 대한 내용을 보게 되었다. 간헐적 단식에 대해서 그동안 잘 못 알고 있었던 내용들과 함께 커피에 대한 내용도 보게 되었다.   


우리 몸의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작용하기 위해서는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끊고, 심장이 뛰는 운동 그리고 숙면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숙면'에서 잠시 멈칫했다. 잠을 푹 잘 잤다는 느낌이 드는 게 한 달 중에 3일도 안 되는 나는 '숙면'이라는 단어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몸을 혹사시켜도, 낮잠을 자지 않아도, 잠 잘 오는 명상이나 수면 유도 음악을 들어도 그때뿐이었다. 항상 조그마한 소리나 움직임에도 잠에서 깨고는 했다. 그렇게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몸이 회복하는 속도도 느렸고, 피로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커피를 찾았다. 실험해보고 싶었다. 정말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게 커피 때문인지.


커피를 끊겠다는 결심을 하고 난 다음날 아침부터 고비가 찾아왔다. 수영 전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를 마시지 않으려고 하니 자꾸만 뭔가 잊은 게 있는 사람처럼 불안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더욱더 커피 생각이 간절해졌다. 눈이 슬슬 감기고 눕고 싶어지는 유혹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겨우 겨우 버텨낸 커피 없이 보낸 첫날 밤, 아이를 재우려 9시에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뜨니 아침 6시였다.


'뭐지. 이 개운함은?'


아침에 일어나면 느껴지던 찌뿌둥함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 정신을 차렸다. 을 잘 못 자는 괴로움에 시달리던 나는 피를 끊은 지 하루 만에 숙면의 세계를 경험하고는 더 이상 커피를 마셔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커피를 끊은 지 4일째 되던 날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점심을 먹고 어쩔 수 없이 커피를 한잔 마시게 되었다. 사실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한번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정말 커피가 수면을 방해하는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날 밤 나는 눈을 감기만 한 채 정신은 계속 깨어있는 고통스러움을 경험해야 했고,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예전처럼 찌뿌둥함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수면과 숙면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커피를 끊고 나서 경험하게 되었다. 나의 하루에서 커피 한잔이 주는 위로와 행복감은 엄청났지만 숙면이 나에게 주는 이로움이 더 크게 와닿았다. 잠을 잘 자고 나니 아침에 이유 없이 기분이 다운되거나 울적한 마음이 드는 게 없어졌다. 그리고 한 번씩 숨을 크게 들이마셔야지만 나아지고는 했던 가슴 두근거림이 없어졌다.


커피를 끊은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아직도 향긋한 커피 향을 맡으면 간절히 마시고 싶어진다. 글을 쓸 때나 혼자 있는 시간, 잠시나마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커피 한잔이 간절하게 생각난다. 그러나 밤이 주는 치유의 힘을 경험하고 나니 그 생각들을 접어두게 되었다. 몸에 좋다고 해서 영양제나 부가적인 식품들을 먹는 것보다 몸에 좋지 않은 한 가지를 끊는 게 더 큰 효과로 다가왔다.


하루 한잔의 커피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커피 한잔의 행복은 그 순간뿐이었다. 내 영혼이 머무는 그릇인 나의 몸이 건강해야 나의 영혼도 건강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 찰나의 행복보다는 조금 더 길고 진한 여운의 행복을 경험하기로 선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커피 대신 허브차를 마시며 내 영혼의 깊은 곳까지 어루만져주려 한다.









메인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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