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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Jul 14. 2024

불행의 반대말

에필로그




불행하다고 느꼈을 때가 언제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닿을 수 없는 먼 곳을 바라볼 때 종종 나는 불행하다 느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이 아닌 내가 꿈꾸고 바라던 미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조바심과 함께 불행이라는 감정이 찾아오고는 했다. 지금 이 순간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나라는 사람이 아무 의미도 쓸모도 없는 것처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에 얽매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려 해도 늪에 빠진 것처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빠져 들 때. 어쩌면 나는 행복을 너무 크고 먼 곳에서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이라 생각했을 땐 행복해지려 하기보다 불행해지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미국으로 장기 출장을 떠난 신랑이 없는 주말 오전이었다. 딸아이는 색종이 접기를 하고,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유심히 보던 딸아이게 나에게 물었다.


"엄마! 나도 엄마 글 쓰는 거에 구독 좋아요 누르고 싶어!"


"하하, 그래? 그런 마음만으로도 이미 구독 좋아요 눌러준 거나 다름없는걸~고마워~"


"힝. 진짜 누르고 싶은데... 그런데 엄마는 무슨 색깔이 제일 좋아?"


"엄마는 초록색이 제일 좋아."


그리고는 초록색 색종이 한 장을 들고 반대편으로 가서 한참을 혼자 꼼지락 거렸다. 잠시 후 반짝이는 초록색 펄 색종이 봉투에 '엄마 보세요'라는 메시지가 적힌 편지가 내 눈앞에 도착했다. 봉투를 열어보니 초록색 색종이에 딸아이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F인 나는 딸아이가 건네준 편지를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눈물을 흘렸다. 그런 나에게 딸아이가 다가와 보송한 솜털이 가득한 말랑한 숨결로 나를 안아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숨결을 나누며 맞닿은 가슴으로 말없이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엄마도 많이 많이 사랑해..."


딸아이가 전해준 편지 속의 구독 좋아요 숫자가 진짜 이루어졌다 해도 이토록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들었을까. 나의 행복은 지금 여기 이 순간,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음을  딸아이를 통해 다시 한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딸아이와 영화관에서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고 왔다. 딸아이는 여자 주인공 라일리가 불안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 함께 손에 땀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굴렸다. 나는 오히려 불안이라는 감정이 주인공 라일리의 감정을 송두리째 삼킨 모습을 보았을 때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나의 마음속에 기쁨 이가 존재하기는 했을까 싶을 정도로 밝은 웃음을 짓지 못했던 것 같다. 기억하기 힘든 일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기억의 저 편으로 보내어 묻어두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야. 나는 착한 사람이야. 나는 착한 딸이야.'라는 프레임을 씌워두고 진짜 나라는 사람의 자아가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자책하며 스스로를 미워했다.


'진짜 나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영화를 보고 와서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지난날 어리석고 바보 같았던 나의 행동들을 나는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며 그런 모습들은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해 왔다. 내가 정한 이상적인 '완벽'한 모습에 맞추기 위해서 진짜 내 모습들은 지우고 버리고 묻어두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의 시작은 어리석고 바보 같아서 기억하고 싶지 않고 부정하고 싶었던 나의 과거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모습들 조차 나라는 사람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서야 더 이상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행복의 시작은 나를 사랑하는데서부터 온다는 것을, 그 사랑은 지난날 어리석고 바보 같았던 내 모습까지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불행'이라는 감정과 항상 함께 따라오는 것은 '불안'이었다.


불안과 두려움은 세트처럼 함께 다니기에 두렵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면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두렵다고 느끼는 걸까. 어떤 일을 잘 해내지 못하게 될 때, 혹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칠 때가 아닐까. 어떤 일을 잘 해내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은 어쩌면 나의 욕심일 것이다. 일을 해내는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는 그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과정이 조금 미흡했어도 최선의 결과를 바랄 때 나는 두려움에 휩싸이고는 했다. 그러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할 때, 한낯인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가족들을 지킬 수 없으면 어쩌나 싶을 때 나의 불안과 두려움은 최고조에 달했다.



당신이 불편해지는 상황을 회피하는데 능하다면 스스로 불안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을 것이다. 나도 꽤 오래 내가 불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많은 성인이 위화감을 느끼거나 두렵거나 스스로가 아마추어같이 느껴지는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 그렇게 회피하는 이유를 말하는 합리적인 설명이야 많지만(너무 바빠, 재미없어 보여, 윽, 이보다 더 최악일 수는 없어.) 진짜 동기는 불안이다. 이들이 두렵다는 '느낌'을 받지 않더라도 , 공포가 이들의 삶을 지배한다.

나는 겁쟁이다. 당신도 그렇다.

-중략-

불안하기 때문에 답을 갈망하지만 사실 더 나은 삶의 방식은 좋은 질문을 떠올리는 것이다. 호기심에 차있을 때는 거칠고 냉담하고 잔인하게 굴기 어렵다.

-팀클레어의 <불안해방일지>중에서-



내가 지금 불안 한건 어쩌면 많은 일들을 해내고 싶은 소망들이 가득해서 일 것이다. 켜내고 싶은 가족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 생각하고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은 내가 한낯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신의 영역에 맡기고자 한다. 생각해 보면 늘 불편해지는 상황을 회피하고 스스로를 완벽하게 포장해 왔던 것 같다. 사실은 불편한 상황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나는 겁쟁이였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꽉 막혀 있던 체증 같은 것이 훅 하고 내려가는 것 같은 시원함이 들었다. 좀 겁쟁이면 어떤가. 좀 완벽하지 못하면 어떤가. 나는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는데 말이다. 아침에 눈을 떠 사랑하는 이들의 숨결과 함께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땅을 밟으며 자연이 건네는 인사들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바람결이 내 머리카락을 매만져 주고, 나뭇잎과 꽃들이 눈을 즐겁게 해 주며, 촉촉한 빗방울들이 나에게 살포시 내려와 적셔준다.


불행해지고 싶지 않아서 늘 불안해하며 떠밀려 나가듯 앞을 살아나갔다. 그러나 불안에 대한 답을 갈망하기보다 일상 속에서 호기심 어린 좋은 질문을 떠올릴 때마다 내 곁에 함께하는 작고 소중한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로 이어졌다. 행복은 지금 여기 이 순간, 늘 나와 함께 하는 것임을 매일 아침 눈을 떠 잠드는 순간까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불행의 반대말>은 결국 나의 일상 속 평범한 하루라는 명제로 시작했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마음의 일렁임이 일어날 때마다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내가 찾은 것은 '감사'였다. 일상 속에서 생겨나는 모든 문제들 속 불안, 걱정, 불행, 우울이라는 감정들은 모두 내가 살아있음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라는 것임을. 이 모든 것이 행복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겨나는 작은 변주곡들임을 알아차려본다.


이따금 불안하거나 내가 불행하다 느낄 때 내 곁에 머무르는 작고 소중한 것들에 집중해보려 한다. 딸아이의 말랑한 손가락, 보송하고 통통한 볼, 신랑의 까칠한 수염, 거칠지만 두터운 신랑의 손. 매 끼니 식탁 위로 올라오는 음식들, 집에서 보이는 초록빛의 산, 수영장 올라가는 길을 반겨주는 아침 새들의 소리, 머리 위를 내리쬐는 햇살,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까지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풍요로운 우주 속에서 우주가 사랑하는 아이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려 한다.










메인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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