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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Jun 23. 2024

특별한 사랑, 평범한 사랑

사랑이라는 이름아래서




엄마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다. 아빠가 세상에 있을 때에도, 없을 때에도 늘 엄마는 우리 집의 가장이었다. 그런 엄마가 유일하게 바쁘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바로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남동생이 태어나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는 전업주부의 삶을 살았다. 아빠가 벌어다 주는 일정하지 않은 월급 100만 원으로 4 식구의 살림을 살아내야 하는 전업주부로 취업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아빠는 더 젊고 혈기왕성해서 1년 365일 중 365일 모두 술을 마시며 돌아다니던 때였다. 술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타고 온 택시기사와 싸우기도 일쑤였고, 술 마신 다음날 출근하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 폭력을 행사하던 30 춘기 아빠였다. 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직도 집에서 우리를 키우던 이 시절이 가장 그립고 행복했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때 우리가 살던 곳은 부산의 송도라는 곳이었다. 영도의 반대편에 위치한 이곳은 작은 송도 바닷가가 위치한 동네였다. 나는 이곳이 참 좋았다. 여름날 무더운 밤이면 엄마와 친하게 지내던 동네 이모들과 함께 바닷가로 내려와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펴고 치킨을 시켜 먹고는 했다. 들어오는 파도와 술래잡기하듯 모래사장을 놀이터 삼아 놀았고, 유리병에 고동과 작은 게 들을 잡아다가 다시 놓아주고는 했다.

 

엄마가 있고, 바다가 있었다.


아직까지도 바다를 보면 마음이 편안한 이유는 아마 이때의 좋았던 기억들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 당시는 온 동네가 이를 함께 키우던 때였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 알정도로 이웃과의 왕래가 잦았던 시절, 음식을 하다 설탕이 없으면 옆집에 가서 빌려오고, 된장이 없으면 이웃집 이모가 통에 한가득 담아서 전해주던 그런 정이 오고 가던 시대였다.


우리 집은 바닷가에서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산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에게 미로 찾기 같았다. 걸어 올라가는 동안 계속되는 오르막길과 골목길 그 사이사이에 봤던 집들의 대문색깔들까지 기억 속에 선명하다. 아직도 나는 가끔 그곳을 올라가는 꿈을 꾸고는 한다. 골목길을 굽이굽이 오르다 보면 왼편에 우리 집으로 갈 수 있는 평평하고 넓은 길이 나온다. 그 길의 오른편에는 송도바다가 보이고 왼편에는 담을 따라 나무들이 우거져있었다. 넓고 평평했지만 이 길은 시멘트 바닥 사이사이를 비집고 자라난 잡초들로 가득했다. 마치 땅따먹기를 하듯 풀이난곳을 피해 총총걸음으로 걷다 보면 넓은 계단이 나온다. 계단 양옆으로 줄지어 집들이 있고 우리 집은 그 계단을 중간쯤 오르다 보면 나오는 초록색 대문집이었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손발이 꽁꽁 언 채 집으로 돌아왔는데 엄마 동네 이모들이 둘러앉아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두꺼운 이불을 펴두고 귤을 까먹고 있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어~ 왔어? 춥지? 어서어서 일루 들어와~!!!"


이모들이 전기장판 속에서 내 손발을 비벼서 따뜻하게 만져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귤을 까서 내 입어 넣어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따뜻했던 겨울의 맛이었다.


하루는 학교에 다녀왔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곰국을 끓이고 있었다. 커다란 솥에 뽀얀 국물이 잔뜩 우러나있었다. 작은 냄비에 한국자 덜어서 고기를 넣고 송송 썬 파를 뿌려 주었다. 고소하고 따뜻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 온몸의 구석구석을 어루만져 주었다.


매일 아침 학교 갈 때 엄마가 집에서 나를 배웅해 주는 게 좋았다. 학교갔다 집에 오면 엄마가 나를 반겨주는 게 좋았다.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그 시절의 기억들은 참 행복하고 따뜻했다. 아빠가 아무리 문제를 일으켜도 엄마에게는 든든한 동네 이모들이 있었다. 아빠가 출근하고 난 뒤 한바탕 아빠 욕을 하고 나면 그나마 견딜만했던 것이다. 싸움이라도 나면 서로 달려와 말려주기도 달래주기도 했던 그 시절이 우리에게는 참 따뜻하고 든든했다.








행복했던 1년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송도에서 반대편인 영도로 이사를 갔다. 나는 영도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통학했다. 엄마는 다시 일을 나갔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술 취해 있는 아빠와 함께 집에 있기 싫어 바깥에서 동생과 함께 엄마를 기다렸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노란  우리를 따뜻하게 비춰주었다.


엄마가 오랜만에 쉬게 되는 날이면 하루종일 주방에 서서 음식을 했다. 반찬이며 국이며 한솥씩 해두었다.


"엄마, 어디 가는 거야? 음식을 왜 이렇게 많이 해?"


마치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주방에 서서 하루종일 음식을 해내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불안했다. 엄마가 우리를 두고 떠나지는 않을까. 어디론가 멀리 가버리지는 않을까 하고.


다행히도 엄마는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엄마는 늘 슬펐고 힘들고 지쳐 보였다.


" 그만하고 싶다. 이제... "


" 엄마가 세상에 없으면 너랑 네 동생 둘뿐이니까 싸우지 말고 잘 지내."


" 엄마 죽으면 그냥 화장해서 산이나 바다에 뿌려줘."


깊은 한숨과 함께 혼잣말처럼 뱉어내는 엄마의 말들은 어린 나를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도 잠에 들었다. 작은 기척이라도 들리면 혹시나 엄마가 어디론가 나가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 깨어나고는 했다. 엄마가 코 골지 않고 잠들 때면 정말 잠든 게 맞는지 코밑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엄마의 숨소리를 확인하고는 했다. 내가 깨어있을 수 없는 밤이 싫었다. 나는 밤이 주는 치유의 시간을 받아들이기보다 밤이주는 어둠이 두려워 깊이 잠들고 싶지 않았다.








나도 엄마처럼 누군가의 엄마가 된 지금, 다시 그때의 엄마를 떠올려 본다. 엄마이기 이전 한 여자이자 한 사람으로서의 엄마를. 꿈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어린 한 소녀를.


우리는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 누구나 사랑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사랑이 밖으로 나와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 그 모습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엄마가 집에서 전업주부로 있던 그 1년간 우리는 평범하다 생각하는 보통의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엄마와 나에게는 그 일상들이 평범한 날이 아닌 특별한 날들이었다는 것을 안다. 마가 바쁠때 엄마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날들 중, 자신의 사랑을 내비칠 수 있는 것이 하루 온종일 몰아서 해댔던 음식들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을 불안하게만 여겼던 어린아이는 이제 것이 엄마의 사랑을 표현했던 것임을 해석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서 수많은 괴로움들을 만들어 내기도 수많은 희생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집착하고, 화내고, 짜증 내는 그 모든 것들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하기도 한다.


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해하기 힘든 암호 같은 사랑의 표현을 한다. 상대방은 이런 암호 같은 표현을 받아내고 자신이 살아내기 위해 이 사랑을 해석하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아래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서로에게 무수한 생채기를 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채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을 이해하기 힘들게 만든다. 나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는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 방황하고 원망하고 자책했다. 모든 것이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자해하고 힘들게 며 사랑을 갈구했다.


특별한 사랑이던, 평범한 사랑이던 사랑은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본능적으로 내 존재 자체가 사랑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잘 표현하지 못하면 누군가는 그 암호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석해 주어야 한다. 더욱이 어린아이에게는. 그 모든 것이 시간과 함께 한 겹 한 겹 켜켜이 쌓여 나라는 사람이 단단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어떤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와도 내면을 사랑으로 가득 채운 사람은 흔들림이 없음을 알기에.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느낄 것이 사랑밖에 없을 때까지. 내 안의 모든 것을 사랑으로 채워나가기를.










메인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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