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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내 안에 들어왔다

4부. 머물고, 느끼고, 배운다

by 윰글

“윰글님, 저 이번에 부산에서 연수가 있어서, 일주일 정도 머무를 것 같아요.”

디엠이 도착했다. 5년 동안 SNS로 소통해 오던 Y가 부산에 온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이미 Y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뵙자고 할까?’

‘아니야, 어색해하실 수도 있잖아.’

두 마음이 엇갈렸다. 그러던 중, Y에서 또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윰글님을 잠시 뵙고 싶어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먼저 연락을 드릴 걸. 내가 만나자고 말하지 않아서 혹시 서운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만나기로 한 아침, 이유 없이 마음이 들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손끝이 분주했다. 마치 사춘기 소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요, Y님. 저도 뵙고 싶어요.”

약속이 정해지고 나니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무엇을 대접해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그래도 이건 ‘볼까 말까?’ 망설이던 어제의 고민에 비하면 사소했다. 주차가 편하고 집에서 가까운 곳을 골라 장소를 정했다. 먼저 도착한 나는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물로 올라갔다.

“어디세요? 벌써 도착하신 거예요?”

“네, 지하 1층 분수대 옆이에요.”

만나기로 한 장소는 내게는 익숙한 공간이라 Y의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전시 매장을 지나자, 화면 속에서만 보던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Y님, 여기예요.”

“와, 안녕하세요.”

첫인사와 함께 밝은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마음속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오래 알고 지낸 듯 편안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악수하고, 건물 꼭대기 층의 조용한 카페로 향했다. 나는 혹시 몰라 준비해 둔 주먹밥을 꺼냈다. 다행히도 Y는 그 시각까지 식사하지 못했다고 했다. 작은 도시락이었지만,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 카페 구석 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창밖으로 부산항 터미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바다가 펼쳐져 보였고, 햇살이 유리창으로 스며들었다.

“요즘도 피아노 치세요?”

“네, 지금도 종종 쳐요.”

“가끔 피아노 치시는 모습을 올려주시는데, 전 참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저도 피아노를 좋아하거든요.”

그 말을 시작으로 대화의 문이 열렸다. 음악, 시, 글쓰기—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있었다.

Y는 이미 시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험도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존경심이 일었다.


“저는 시를 잘 쓰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요.”

“Y님은 감성이 풍부하셔서 시와 잘 어울려요. 이미 충분히 잘 쓰고 계신 것 같아요.”

“아니에요. 아직 멀었어요.”

“저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시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어요. 그중 세 권짜리 책이 있는데, 그걸 통해 많이 배웠어요. 추천해 드릴게요.”

“감사해요. 제목을 알려주세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이렇게 흐른다. 작은 이야기 하나에도 공감이 피어나고, 배움이 오간다. Y의 눈빛이 반짝였다. 내 말에 귀 기울이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Y는 나보다 먼저 출간한 작가다. 그의 글은 솔직하고 담백했으며, 감성의 결이 고와서 따뜻하게 읽혔다. 그래서 더 만나고 싶었던 사람. 실제로 마주하니, 글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었다.

잠시 후, Y가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오늘의 만남을 기념하고 싶어서요.”

그 안에는 손 편지가 들어 있었다.

“윰글님께. 오늘 많이 망설이다가 만나 뵙게 되었는데, 정말 반갑고 감사해요. 인스타에서 남겨주신 따뜻한 댓글에 늘 감동했어요. 앞으로도 좋은 인연 이어가요. ― 우○○ 드림 ―”

짧은 글이었지만, 그 안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릴 적엔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일이 가끔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번 만남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Y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낯설진 않았지만,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렸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마주 앉은 순간, 모든 게 자연스러워졌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도 불편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같은 것을 좋아하고,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일— 그 단순한 행복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달았다.

“윰글님 덕분에 시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요.”

Y의 이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듯하다.

그녀를 만난 이후, 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그건 Y의 SNS를 꼼꼼히 살피는 일이다.

‘요즘은 어떤 시를 쓰고 계실까?’

‘혹시 내 말 한 줄쯤이 그 시 안에 머물고 있을까?’

Y의 글을 읽을 때마다 이전보다 더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만남은 관계에 진심을 더한다.’

나는 Y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약속을 잡고 나니, ‘괜히 약속을 잡은 걸까?’ 하는 고민이 스쳤다.

하지만 막상 그녀를 만나고 나니,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두려움을 지나서 무언가를 하고 나면, 뿌듯함이 내게 밀려온다. 공부도, 연애도, 도전도 — 미지의 영역에 발을 내딛는 것에서 성취감을 얻었다. 그래서, 나중에 후회가 남더라도 나는 도전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일을 시작한다.


오늘의 만남도 그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그를 알아가는 것. 그렇게 오가는 대화 속에서 내 가슴에 그 사람을 들여놓는다. 이런 과정이 나는 좋다. 그렇게 오늘 만난 Y는 내 마음 한편에 자리잡았다.

사람의 가슴에 담을 수 있는 인원수는 제한이 없는 듯하다. 이 또한 다행스러운 일이다. 혹여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상쇄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을 추천한다. 만약 다시 만나는 그 사람이 나와 ‘영혼의 온도’가 비슷하다면, 아니 오히려 나의 ‘온도’를 상승시켜 줄 사람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사람을 내 삶에 들일 것이다. 오늘처럼.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당신의 밤에 불빛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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