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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Apr 24. 2020

에필로그: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찬란하게 부서졌던 그 시절의 해운대 바다가 나를 살게 한다.

BGM - Butterfly(Prologue Mix) / 방탄소년단(BTS)


헤어짐은 어느 날 한 줄기 바람처럼 소리 없이 찾아왔다.


개연성 하나 없이 부산으로 뚝 떨어졌던 시작처럼 떠나는 순간도 예고 없이 찾아왔다. 1년 반의 타지 생활 끝에 서울에 있는 회사로 이직이 결정됐다. 이삿날을 결정했던 주말에 부산에 내려와 있었던 부모님과 드라이브를 나갔다. 우리가 탄 차는 길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는 달맞이고개를 느리지만 꾸준한 속도로 지나쳤다. 오른쪽으로 쏠렸다가 왼쪽으로 쏠리고 중간중간 나타나는 방지 턱에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짧은 드라이브 길에 지난 1년 반 동안 울고 웃고 했던 굴곡진 여정이 파편처럼 무수히 지나쳐갔다. 처음으로 흰쌀밥을 지어봤던 날, 과로로 폐렴에 걸려서 응급실에서 왼쪽 팔에 링거를 꽂고 멍하니 떨어지는 수액을 쳐다봤던 날, 처음 가본 동백섬에서 푸르게 펼쳐진 바다를 봤던 날, 혼자만의 힘으로 신문 전면에 회사 홍보 기사를 낸 성과에 대해 칭찬을 받던 날, 사직원에 이름 석 자를 한 자 한 자 힘주어 쓰고 사인했던 날. 창을 내려 밖을 보니 시릴 정도로 푸르른 녹음에 햇볕이 서려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홀연히 날아올라 자취를 감추는 진회색 연기처럼 부산에서의 기억을 하나씩 떠나보낼 때였다.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돌이켜보면 왜 과거의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을까 안타깝다. 만일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며 또 하나의 인생을 자신에게 주어진 옵션이라고 착각하고 제멋대로 상상하던 나는 뭐랄까,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대안의 삶에 멋대로 싸움을 붙인 후 알아서 지고 있었다. 대안의 인생,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행여 있더라도 분명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저쪽 인생의 나’도 똑같이 ‘이쪽 인생의 나’를 시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타지에서 생활했던 나는 서울에서 빛나는 삶을 사는 ‘대안의 나’와 수없이 싸움을 벌였고 번번이 졌다. 이해할 수 없는 지역 문화와 회사 관행이 눈에 띄면서 속 안에서 뜨거운 것이 콱 막혀 주저앉아 있었다. 3년 뒤 서른에는 꼭 서울에 있는 회사에 이직하기로 결심했는데 정신 차리니 1년이라는 시간이 없어지고 여전히 이렇다 할 대책이 없었다. 만나던 남자친구한테 차였고 친했던 친구들과는 서울과 부산의 거리만큼 소원해졌다. 토끼굴 속으로 떨어진 이후 몸이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며 예전에 알고 있던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서울에서 누렸던 삶의 모습이 가물가물했다. ‘저쪽 인생’의 내가 2018년의 나를 여러 번, 그것도 아주 세게 때렸던 것 같다. 맞은 곳 곳곳이 얼얼했다.


나는 엉망이었다. 간밤에 목이 졸리는 악몽에 시달려 눈을 뜨고 일어나면 머리를 뉘었던 베개와 등을 대고 있었던 침대에서 불행이 덕지덕지 온몸에 따라붙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부터 천천히 목 뒤, 등, 팔꿈치, 손끝, 허벅지, 종아리, 발뒤꿈치까지 뱀이라도 기고 있는 것처럼 불행의 조각이 음산하게 기어 다녔다. 내가 담그고 있는 불행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오고 싶었다. 황급하게 도망가도 좋으니 어떻게든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방법을 몰라 들러붙은 불행을 무기력하게 끼고 살았다.


책 안의 한 페이지 위에 뚝 떨어졌는데 다음 장을 넘기면 텅 빈 페이지로 한 500페이지가 더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홍학을 망치로, 고슴도치를 공으로 삼아 크로케 경기를 벌이는 엉터리 세상 속의 앨리스가 바로 나였다. 그런데 이제 그 엉터리 소설 속에 있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직을 핑계로 고통을 회피하게 되니 얼떨떨하지만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이 내게는 구원이었다.




2년 전에 부산에 두고 떠났던 짐을 최근에 다시 돌려받았다. 중요한 짐만 대강 챙겨서 서울로 올라오고 불필요하고 부피가 큰 짐은 다른 곳에 맡겨두다가 우연한 계기로 전부 다 돌려받았다. 짐을 풀어보니 수저, 슬리퍼, 저울 같은 사소한 생필품뿐이었다. 온 가족이 매달려 짐을 정리하는데 아빠가 말했다.


“이 수건 뭐야? 닳아서 못쓰겠다 버려야겠네.”


신입사원이었을 때 한여름에 상사와 버스를 타고 김해에 있는 거래처에 방문해서 선물로 받은 수건이었다. 수건에 거래처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나랑 상관도 없는 업무를 받아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던 거래처에 방문해 답사하고 저녁에는 회식까지 했던 끔찍한 날이었다. 미팅 다녀오고 나서 몇 주 뒤에 폐렴 걸렸었나 생각하다 내가 말했다.


“버리지 마. 그거 사연 많은 수건이야.”


거실 다른 한쪽에서 하늘색 플라스틱 빨래 바구니를 집어 든 엄마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건 또 뭐야? 쓸데없는 거 사지 말라니까 아빠 닮아서 물건을 수집하고 있어.”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다이소에서 샀던 싸구려 빨래 바구니였다. 세탁기가 있던 뒤 베란다와 건조대가 있던 앞 베란다를 오가려면 저깟 빨래 바구니가 절실했었다. “쓸데없다니. 나 그 빨래 바구니 없었으면 빨래 더미에 묻혀서 죽었어.” 뻔뻔하게 대답을 하면서 수건과 빨래 바구니를 챙기니 순식간에 3년 전 어느 주말로 돌아간 것 같았다. 오전 10시쯤 딱딱하기 그지없는 매트리스에서 몸을 걷어내서 바닥에 두 발을 딛고 거실로 나가면 뒤 베란다 창문에서 들어온 바닷바람이 유유히 거실을 지나쳐 앞 베란다 창문으로 나갔다. 오렌지색 햇빛이 쏟아져 내리는 시원한 마룻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책상다리로 주저앉아 빨래 바구니를 끌어안았던 그 날. 한아름 쌓인 빨래 더미를 보며 내 미래는 이렇게 매주 쌓이는 빨래 더미와 함께 세탁기 안으로 처박혀 소용돌이에 휩쓸려 사라지는 건가 비관했던 그 날. 우울하고 불안한 미래에도 바람은 시원했고 햇빛은 따뜻했던 세 해 전 봄날.


숟가락 하나, 슬리퍼 한 짝, 티셔츠 한 장, 짐가방 한 개에 기억이 묻어났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서울로 올라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다시 김해공항에 내려 여행의 피로를 안고 돌아왔던 어느 일요일. 공항에서부터 지하철 역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묵직한 짐 가방을 오른쪽 좌석에 둔 채 가방 위에 팔을 받히고 손바닥 위에 관자놀이를 기댄 뒤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 책 페이지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진 밑에 ‘대안의 인생에서 번번이 진 나의 이 힘겨운 싸움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문구를 달았다. 속으로 소리치며 항의했다. 40대의 저 작가는 인생 다 살아본 것처럼 지나간 선택을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냐고. 남쪽 어느 동네까지 내려와서 직장 생활을 하는 나에게도 정말 대안의 인생은 없는 것이냐고. 그러면 내가 이렇게 시기하는 상상 속의 나는 누구냐고.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 시절이 꿈에 그리던 지금의 서울 생활을 이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리라는 것을.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기만 하면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류의 마지막만 있을 줄 알았겠지만 사실 삶은 기괴한 장치를 숨겨놨다 갖가지 새로운 방식으로 나를 엿 먹인다는 것을. 대안의 인생은, 환상 같은 건 없다는 것을, 냉정하게도 현실적인 하루하루가 나를 기다린다는 것을.

그때 나를 안아줬던 해운대 바다가 그립다. 왜 모든 것의 소중함은 헤어지고 나서야 깨닫는 걸까? 서울에서의 생활이 팍팍할 때마다 눈을 감고 그때 그 시절 해운대 바다를 떠올린다. 온 세상 원망을 한데 끌어모아 따지고 소리쳐도 묵묵히 푸른빛으로 안아줬던 그 바다가, 기쁠 때 보면 더 찬란하게 부서졌던 그 바다가, 밤이면 묵직하고도 고요하게 울렸던 그 바다가 지금의 나를 살게 한다. 우울의 심연 한가운데에서 발버둥 치던 순간마저도 지금을 지탱하는 자양분이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야기를 덮을 시간이 왔다. 밤이면 저 멀리 아웃렛 몰에서 번쩍이는 파란 불빛이 보이던 송정 바다 앞 한적한 아파트 단지도, 1001번 버스를 타면 도착하는 바다 앞 마트도, 층고가 유달리 낮아 조악해 보였던 장산역도, 번잡한 골목 한가운데에 비좁게 자리했던 회사 건물도, 사원증을 찍고 흰 철문을 열면 정다운 이야기 소리가 퍼졌던 15층 사무실도, 샥슈카가 맛있고 주인이 키우는 뚱뚱한 강아지가 귀여웠던 대학가 카페도, 관광객들 사이에서 세상 제일 우울한 표정으로 ‘이 아픔을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게 해 달라.’며 수없이 절을 하게 만들었던 해동용궁사의 불상도, 사회 초년생의 고군분투도, 칼날같이 서렸던 실연의 아픔도, 철저히 혼자가 되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한 인생 첫 고독도. 이 모든 것들을 페이지 속에 넣어두고 마지막 표지를 덮을 때가 왔다. 환상은 내 안 한구석에 숨겨두고 꿈에서 깰 시간이다.

지금은 잊을 것이다. 언제든 아스라이 떠오를 때 그 기나긴 여정을 다시 꺼내 들여다볼 수 있도록. 누군가 내게 물었을 때 그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답할 수 있도록. 그때는 치열했고, 그래서 화창하게 아름다웠더라,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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