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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May 28. 2021

"탈시설"화는 목적이 아닌 인권의 수단이다.

시설 종사자 입장에서 보는 탈시설화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지켜주는 일, 마땅히 사회 전반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주장되는 것이 장애인 거주시설의 탈 시설 화이다.
 
장애인 수용시설이란 보다 전문적이고 질적으로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지역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근본 취지로 한다. 그러나 시설의 대부분이 지역사회와 접촉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거나 지역사회와 단절된 환경에 있어 장애인들의 재활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탈시설화는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는 것을 탈피하여 지역사회에 거주하게 하고 그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탈시설화라는 이야기가 거론될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는 간과되고 있는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장애인 시설에서 종사하는 사회복지사 들이다. 이들에게 탈 시설화는 고용불안과, 지원대상과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유로 하는 ”엄마“라는 무게이다.
 
탈시설화가 향후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 설정이라면, 그 정책방향에 맞춰 지금 시설에서 이행되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탈 시설화는 그들의 인권을 위한 수단의 한 방법이 되어야 하고, 그것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는 막상 폐쇄로 인해 이들의 주거와 생활의 불편함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대안책 마련이 어렵다. 그리고 이들의 지역사회로의 통합 이전에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들을 바라보는 지역사회 거주인들의 의식전환이다.
 
현재 시설이 폐쇄적이고 고립된 환경 속에 존재하는 것도 지역사회로의 융합에 실패한 것이다. 이는 집값 하락, 주거안정의 불안 등이 여러 이유로 지역사회에서 이들의 삶의 공간에 대한 배척이 배경이 된 것이다. 이들이 지역사회의 여러 서비스 원을 이용하려면, 비장애인들과의 차별 없는 시선과 융합이 필요하지만, 현대의 경쟁적이고 개인주의 적인 사회적 인식이 계속된다면 이들의 지역사회로의 융합에 좌충우돌이나 실패는 예측 가능하다.
 
지역사회의 인식 마련을 위해서 지자체나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들을 우리와 같이 사는 이웃이라는 마인드 방향의 전환이 중요한데, 이러한 정책사업은 시간과 노력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그런 인식전환사업은 지금과 같이 추상적으로 “장애인도 이웃”이라는 타이틀 외에, 주기적으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여러 복지 프로그램  이전에 “장애인과 함께하는 미술치료 프로그램”이라던지 “우리 아이 인권 프로그램 속에 넣는 장애체험활동” “장애인들과 동행하는 지역사회 숨은 명소 사진대전” 등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정책이 마련되고 이행되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탈시설화 이후의 이들의 자립생활에서 따르는 어려움을, 현시점에서 수정 보완해 나간다면 이들의 인권존중의 목적으로서의 탈시설은 성공할 것이다. 그 과정에 논의되어야 할 부분을 직접 현장에 있는 사회복지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해 본다.
 
첫째 거주시설에서 24시간 최대 지원을 받은 이들의 자립능력 여부에 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시설에서는 이들의 안전과 보호를 목적으로 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현장에서 느낀 경험이다. 걸을 수 있고, 물건을 갖고 이동할 수 있는 이들에게 
방의 식탁에 가만히 앉아서 밥을 차려주고 뒤처리를 해 주는 것이 이 예에 속한다.
이들에게 밥은 할 수 없지만, 밥을 차리는 일, 그리고 설거지가 여렵다면 자신이 먹은 그릇을 설거지 함에 넣는 일 등의 자신의 능력치에 맞는 역할이 주어져 앞으로 나아갈 탈 시설의 방향에 맞는 최소 지원의 방향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둘째 중증장애를 가진 이용인도, 그들 나름의 능력치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들이 만약 기어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들에게 “불편하게 기어서 가게 하면 안 되지” “기어서 이동하는 것을 보고 있어서는 큰일 날 이이야”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들에게 복도를 지나 있는 물리치료실 정도까지는 이들의 방법으로 이동하는 것 또한 존중되고 허락되어야 한다. 단지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이들이 기어서 이동하는 것이 보기 불편하겠지만, 관념적인 시선을 조금만 전환하여 생각하면, 이들의 방법을 존중하고, 이 들의 능력 범위 안에서 어렵고 위험한 요소를 제거하는 즉 “기어가는 길에 높은 턱은 없는지” “위험한 장애물 요소 등은 없는지”등을 지켜보고 이들을 제거하여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섯째 인권을 위해서는 이들을 위한 지원의 정도와 한계도 다시 규정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이용인이 “외출하여 자유롭게 다니다 오고 싶다”라고 했을 때 현시점에서 사회복지사는 이 분의 안전에 대한 모든 법적인 책임을 두려워하여 이분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어있다.
책임의 여부 또한 복지 서비스 분야로 제한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이전에 물론 이이 용인의 사회참여 능력 정도와 신변 관리 능력 정도를 세세히 분석한 자료와 매뉴얼이 존재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책임한계에 대한 부분은 이들에게 시설에 있든 자립 가정에 있든 유무와 상관없이 이들에게 적절한 선택의 자유를 제공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넷째 시설이 폐쇄하기 전까지의 장기 계획 속에 이들의 사회성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늘 하던 놀이치료 미술치료 물리치료 등도 필수불가결의 요소이겠지만, 사회통합을 위한 이들의 어려움도 함께 고려하고, 필요하다면 교정할 필요가 있다. 사회에 융합되기 어려운 문제행동과 도전적인 행동이 있다면 단지, 행동장애 치료 약을 먹이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만 하는 소극적인 지원방법에서 벗어나, “행동치료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그 원인을 찾고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모색”을 하거나, 시설 내부의 구조적인 방법으로 적극적인 대안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시점에서 사회복지사는 도전적인 행동과 문제 행동을 일삼는 이용인에게, 생활 곳곳에 자유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사고예방과 이들의 안전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어, 막상 이들의 문제행동 뒤의 의도와 개선방법에는 미흡한 경우가 많다.
이 분들에게 사고가 났을 경우 지도원의 책임으로 인한 사회복지사 개인의 자질과 능력 여부로 취급하는 현재 구조적인 방식부터 바꾸지 않고서는 업무가 가중되고 그 업무 중의 모든 부분이 복지사 개인의 책임으로 귀속되는 현재의 책임문제 때문에, 이들의 문제행동 개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탈시설화는 인권을 존중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목적처럼 다루어져, 인권의 수호자처럼 주장하고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들도 멈춰야 한다. 이러한 포퓰리즘 복지는 이들을 더욱더 복지 사각지대로 내 몰아 인권을 유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민해 봐야 할 문제는 이곳에 종사하는 사회복지사의 고용연계이다. 고용연계는 그 소속 법인이 책임져야 할 분류로 속해 있다. 하지만 막상 탈 시설화가 진행되는 경우, 법인이 이들의 고용을 책임져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고용의 불안과 단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정책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종사자에게 “탈 시설화”는 그야말로 고용해지라는 불안감을 준다. 전국의 몇천 법인 속에 종사자들이 탈시설화 바람에도 이들의 사회복지사로서의 이념과 책임감을 준수할 수 있는 사회적 정책적 고용연계 작업도 이행되어야 한다.
실제 탈시설화 된 몇몇 시설에서 종사하던 복지사들은 아직도 노동단체와 함께 고용연계를 외치며 거리에 있다. 탈시설에 방향에 맞춘 장애인들의 자립과 능력 한계치를 고려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도입된다면 이들 종사자에게도 탈시설 이후의 “자립홈” “자립생활”의 모델에 근거하여 지원할 여러 “장애인 개별화 지원 프로그램” “같은 것의 교육도 이들에게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이 지금껏 ”엄마“라고 불리면서 장애인들의 생활 전반에 대해 이행된 노력과 희생을 우리 사회가 간과해서는 안된다.
 
탈 시설화가 그들의 인권을 위한 최대 존중의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다면, 이들의 인권을 어디서 어떻게 누가 보호하고 지켜줄 것인지에 대해서도 지역사회 모두의 관심과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지원에 “안전”과 “자유” 이 양날의 칼을 어떻게 조정하고 보완할 것인지에 따라 이들이 시설에 거주하든, 자립생활을 영위하든 본 취지의 인권이 존중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 와 “나” 그리고 “우리”모두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이 바탕되어 있을 때 탈 시설로 인한 장애인 인권존중의 정책이 빛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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