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네의불변 요소1번.
“아이는 어른과 본성이 같다”라는 말은 10~20년 전, 즉 19세기 말 에만 해도 용납될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그때의 ‘아동’에 대한 관점은 ‘아이는 어른보다 미숙한 존재’로 여기며 어른이 통제하고 교육하여 바로 잡아나가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는 어른과 본성이 같다.”라는 말에 우리는 수긍하며 동의한다. 아이는 ‘온전한 인격체’로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하며, 그들의 기질을 살려 양육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의 기질과 적성탐구를 위해 ‘성격검사’나 ‘적성검사’ 등을 시행하고, 그들의 가진 소질을 능력으로 발전시켜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들 또한 우리보다 미숙한 존재로 교육하고 통제하여, 우리와 같은 능력을 갖추고자 노력해야 하는 존재일까?라는 것에 의문을 가져본다.
아이가 '발달장애'라는 '검사결과지'를 받고 우리는 제일 먼저 아이의 치료를 위해 '병원'과 '치료실'을 전전하게 된다.
치료를 하여 아이의 부족한 면을 채워야만 한다는 인식은 이 아이의 본성을 지우고 일반 아이들과 똑같이 만들고자 하는 억지 노력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비장애 아동의 적성과 성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가진 소질을 능력으로 이끌어주듯, 발달장애 아동에게도 그들의 본성을 인정하면서, 그들만의 타고난 기질을 존중해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어떨까?
치료실을 전전해 본 부모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 아이가 더 이상의 발전이 없으면 더 많은 치료를 대입하거나, 더 큰돈을 들여 더 좋은 치료실을 알아보러 다니고 또 다른 병원을 찾아 갖가지 약을 복용시켜본다.
즉 아이의 원래의 성향이 무엇인지, 본래 가진 기질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보지 않고 치료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며 병이 낫듯 그들의 타고난 본성과 기질을 바꾸는데만 몰두하고 있다.
발달장애아이는 우리처럼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며 살아가려는 본성이 강하다. 이것은 우리와 크게 구분되는 점이다. 우리의 본성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경험한 교육과 주입적인 지식으로 인해 각자가 가진 본성을 잊거나 누르고 절제하며 살아가지만, 그들의 기질은 우리와 다르게 길들여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우리는 이들에게 우리처럼 길들여져 살아야 한다며 강요하고 있지는 않을까?
‘더 공부해야 해’ ‘사회에 잘 적응해야 해’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돼’ ‘더 출세해야 해’ ‘앞으로 너 혼자 어떻게 살아가려고 이러니...’라고 말이다.
사회는 우리가 노예로 살아가길 원한다. “돈의 노예” “명예의 노예”... 즉 우리는 사회의 자립적 노예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법을 익히며 키워져 왔다. 그래서 발달장애 아이가 이러한 환산에 서툰 것을 마치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치료의 대상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
발달장애 아이는 돈을 버는 데는 소질이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 자체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비장애인만 살아가라고 허락된 곳이 아님을 알아야 된다.
사회에 순응하는데도 일정 수준의 지능이 필요하다. 이 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 순응하며, 정해진 과정대로 잘 살아가지만 발달장애 아이는 이러한 과정이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 자체로 이들의 성격과 기질을 존중해 주며 우리 사회의 일원임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돈을 벌줄 아는 사람만이 인간대접을 받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잘못된 관념을 바로 잡지 않는 한 이들의 삶은 우리와의 경쟁 과정 속에서 좌절만을 겪게 되고 이는 이들에게 2차 장애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아이를 기본 틀에 넣으려고 하면 할수록 발달장애 아이는 생명의 힘이 강해 저항하게 되어있다.
이것은 반항으로 연결되고, 아주 심각할 경우 무기력으로 빠지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본능적 행동 반항은 그 또한 에너지임으로 이 에너지에 대한 저항이 크면 클수록 아이는 이 저항에 무력화되어 더 이상 에너지를 잃게 될 것이고 이것은 심각한 무기력증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원하며 발달장애 아이에게, 통제와 교육을 시키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발달장애 아이의 생명의 리듬, 이것을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이해하고 존중할 때 우리는 이들을 우리 사회에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존재로 키워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당 같은 곳에서 난리를 피우는 ‘자폐성향 아이’의 경우를 살펴보자
환경에 예민한 발달장애 아이의 성향을 고려한다면 이것을 문제행동으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
이들은 우리가 흥겹게 듣는 음악소리는 천둥소리로, 우리의 소곤소곤 거리는 말소리는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로 들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사람이 많은 장소로 아이를 데려갈 때는 이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할 뿐 이들이 그곳에서 하는 행동은 문제행동이 아님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좀 더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데려갈 수도 있고, 외부의 자극이 최소화한 곳으로 이들을 데려가 밥을 먹을 수도 있다. 조금의 이해와 배려가 있다면 이들의 문제행동은 문제행동이 아닌, 그저 이들의 성격이며, 기질로 바라봐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각자 생명의 다양성을 가지고 살아감을 인정해야 한다.
이 생명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여기서부터 강요당하며 고통받는 삶이 예견되어 있을 뿐이다.
발달장애 아동은 생명의 힘에 따라 움직인다는 이 불변 요소 1번을 이해한다면
더 이상 억지로 강요하는 삶을 요청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그 아이는 긍정적인 자아 관념을 갖고 앞으로의 삶의 에너지를 동력 삼아 삶을 행복하게 살아나가게 될 것이다.
앞으로 프레네의 불변 요소 30가지를 이야기하며, ‘중증장애를 가진 아이도 자립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려 합니다.
ps. 우리는 발달장애아이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하기보다, 아이가 갖고 태어난 생명의 힘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그것에 대한 반응을 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