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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oung Jul 11. 2021

Remember me

스타벅스 텀블러

            스타벅스 텀블러만 보면 생각나는 제자가 있다. 첫 해 때 고2 수업으로 교과선생님으로 만났고 2년차 때 고3 담임으로 만난 SH이다. SH가 고2 때, 3월 첫 달 동안 참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말도 잘하고 수업도 열심히 듣던 SH가 갑자기 180도 달라졌다. 매번 수업시간에 잠을 잤고, 잠을 깨우면 학습지는 풀지 않고 그냥 멍~하니 무기력하게 앉아있기만 했다. 처음부터 그랬더라면 SH는 원래 학업에는 관심 없는 학생인가 했을 텐데 갑자기 바뀐 학습 태도에 너무 놀라 혼을 냈다. 그랬더니 SH는 내게 크게 반항을 한다.



             “SH야 잘하다가 요즘 왜 그러는 거니? 열심히 수업 듣자”

“왜요. 귀찮게 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이 학교 졸업이 목표니까 공부 안 해도 되는데요. 저 건들지 마시고 그냥 수업하세요!” “뭐라구? 당장 밖으로 나와!” 난 교실 밖으로 SH를 불러냈고 SH에게 더 혼을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험이 부족했던 신규교사 때는 모두가 수업을 듣기를 바랬고 그래야만 한다는 강한 신념이 있었던 것 같다. 방법을 잘 몰랐던 나는 SH가 걱정되었고,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SH에게 더 크게 화를 내며 혼을 냈다.




             쉬는 시간 10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SH와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누었다. “샘 수업시간에 뭔가 불편하거나 건의하고 있으면 샘한테 와서 편하게 말해도 돼. SH야. 샘은 SH가 처음에 너무 잘 했던 학생이라 갑자기 변한 모습에 샘도 상처를 받아서 SH한테 더 크게 혼냈나봐. 샘도 화만 내서 SH를 속상하게 했다면 미안해. 하지만 SH도 선생님한테 너무 예의없이 행동한 건 잘못했단 걸 알고 있지? 샘은 SH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더 관심있게 혼내고 지도하는 거야. 샘 맘 알지?”



             “네. 죄송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고 대화를 마쳤다. 바로 3월 때의 모습으로 변화할 것 같았지만 SH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조금은 실망했지만 가끔 마주칠 때마다 SH와 이야기를 하니 밤 늦게까지 택배 알바를 하느라 너무 힘들다고 한다. ‘사정이 있었구나..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그 힘든 택배 일을 하는데 얼마나 힘들겠어..’ SH에게는 수업에서 듣는 교과서 이론보다 직접 사회에서 택배일을 하여 돈을 버는 것이 더 중요했다. 돈을 버는 게 참 힘든 일이란 걸 좀 더 늦은 나이에 알아도 될 텐데. 18살의 어린 나이에 느끼고 있을 SH를 보니 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또 배웠다. 자고 있는 학생들은 말 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는 걸. 선생님 입장에서 잠자는 학생들은 무기력하고 수업에 관심 없는 학생이었지만 선생님들은 알지 못하는 잠자는 학생들 그들 만의 사정이 다 있다. 미안했다. SH를 잘 알지 못했고 공부를 해야 한다며 혼을 내는게 나의 학생에 대한 애정 표현이고 관심의 표현이고 사랑의 표현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럽고 너무너무 미안한 마음이 커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SH는 나와 깊게 대화를 나눈 이후 반항적인 행동은 차츰 사라지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고마웠다. 나도 SH가 열심히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어제도 힘들게 밤 늦게까지 일했나 보구나..’하며 SH를 이해하고 보듬어주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났고 우리는 다시 고3 담임 샘과 학생으로 만났다. 첫 개학 날, 교실로 들어가 내가 담임인 걸 알더니 한숨을 크게 쉬며 나를 반기던 SH였다. 내가 담임이라고 투정을 부리지만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SH를 보고 난 알고 있었다. SH가 날 격하게 반기고 있다는 것을.



             교과 선생님이었다가 담임선생님으로 만나면 학생에 대한 관심과 사제 지간 관계는 확연히 달라진다. 더 깊이 있는 대화와 관심으로 학생에 대해 알게 되어 학생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담임으로써 SH에게 해주고 싶은 건 딱 하나였다. 작은 행동에도 관심있게 지켜 봐주고 잘한 행동에 대해 항상 칭찬해주는 것이었다. 칭찬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았더니 SH가 정말 눈에 띄게 변화했다. 작년에는 전혀 변화할 것 같지 않았던 SH가 서서히 내 눈앞에서 변화하고 있었다. 난 이런 SH에게 더 크게 칭찬했다. 반 학생들 모두에게 “SH가 정말 요즘 너무 좋아지지 않았나요?” 반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인정한다. 3년을 같이 생활했는데 자기도 이런 모습 처음 본다며. 그렇게 SH는 반항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보다 예의 있게 행동하는 올바른 학생으로 멋지게 변화했고 졸업 전까지 대견스럽다고 칭찬을 받으며 내 곁을 떠났다.



             벌써 한 해가 지나 2019년이 되어 난 또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정신없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기에 바빴다. 갑자기 SH가 터덜터덜 교무실로 걸어온다. 너무 반가웠다. 이런 기분이구나. 졸업한 제자들을 다시 만나는게. 연락도 없이 찾아온 SH는 쑥쓰럽게 나에게 스타벅스 텀블러를 준다. “샘 김영란 법 안 넘어가는 범위에서 제일 좋은 거 샀어요. 교무실에서 이거 쓸 때마다 제 생각하시라구요. 또 샘 교무실에서 다른 샘들한테 기죽지 않게 하려고 제일 좋은 것으로 골랐는데 그것도 알아야 해요!” 어머나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힘들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내 생각하여 사온 정성스러운 마음이 사랑스러웠다. 피땀 흘려 힘들게 번 돈인 걸 아니 마음이 더 찡하고 애틋했다.. 그러고선 시크하게 “담에 또 애들 모아서 올게요”라고 간다.



             그러더니 진짜 또 스승의 날 애들을 모아 찾아왔다.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샘 같은 인형이라며 교무실에 꼭 두라며 선물을 준다. 그리고서 .스타벅스 텀블러부터 찾는다. “잘 쓰고 계시죠? 집에서 귀하게 쓰고 있어 교무실에 없다고 하니 텀블러가 안 보인다며 실망이라고 투정부리는 SH이다. “SH야. 아직도 샘 잘 쓰고 있어. 항상 텀블러 볼 때마다 너 생각한다. 아끼면서 쓰고 있어. 오래 써야 오랫동안 SH를 생각 할 테니까. 항상 멀리서 응원하고 생각하고 있다 .SH야. 고마워. 훌륭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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