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0

by 김영


0 × 어떤 수 = 0

0 ÷ 어떤 수 = 0


0은 탐욕스러운 숫자이다. 0에 어떤 수를 곱하거나 나누어도 0으로 만들어 버린다. 자신의 색깔로 모든 것을 무릎 끓게 만든다. 그 앞에서는 모든 가능성은 지워진다. 동정심이나 연민이라곤 아예 없다. 이럴 때 0은 어둠과 같기도 하다. 낮이 다양한 사물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반면에, 밤은 어둠으로 세상을 뒤엎어버려 각기 다른 존재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런 0에게 사려 깊음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다.


어떤 수 + 0 = 어떤 수

어떤 수 - 0 = 어떤 수


이에 반해, 어떤 수에 0을 더하거나 빼도 어떤 수 자신이 된다. 이럴 때는 사려 깊지 않던 0이 자애로운 순간이다. 어떤 존재의 뒤편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존재이다. 나에게 그런 자애로운 사람이 둘이 있었다.


아버지와 언니이다. 아니 인간의 언어체계에서는 누나가 맞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누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냥, 그랬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어림도 없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냥 그 당시는 그랬다. 난들 알겠어. 지금은 그런 누나도, 말더듬이 아버지도 없다. 호흡과 맥박, 혈압이 소멸되어 기계의 그래프는 멈추고, 0이라는 숫자가 깜빡였던 순간과 함께 그들은 소멸되었다.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누나는 암 병동에서다. 뭐 그런 거지.


물론 사람들이 죽음에 관한 신파조의 이야기를 싫어하는 건 안다. 조금만 참자. 알면서 굳이 말하는 이유는 아직도 버리지 못한 나의 이기적인 성향 때문이다. 속죄라고 말하기에는 거창하고 뒤로 미뤄뒀던 숙제를 이제는 해야만 할 거 같아서다. 피하고 싶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꼿꼿한 기억들을 글로 맞이한 후 돌려보내고 싶어서다. 뭐 그렇다고.


누나와 나는 10살 터울이다. 그래서 그런지 누나에게는 뭐든 다 고백하곤 했다. 그러면 누나는 그냥 말없이 웃곤 했다. 지나간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그녀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건 확실하다. 시기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어렴풋이 느껴진다. 나를 번쩍 들어 올리면서 그녀가 더 좋아하고, 터질 듯 끌어안으면서 잘 풀어주지 않았다. 숨을 끊어버릴 작정이 아니면 그럴 순 없다. 목말을 타면 어지러웠지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먼저 호의를 베풀었다. 놀이터에서 키 큰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떠들면 누나만은 알아듣고 나를 위해 따지곤 했다. 막냇동생의 중력을 느끼며 주변을 돌았던 인간이다. 사슬 없이도 누나를 내 주위에 묶어놓았다. 그런 누나에 대해선 미안한 마음과 그리운 마음이 더하다. 첫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있다. 살림밑천을 넘어서 집안의 형편과 막냇동생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었다. 지금으로선 수긍하기 어려운, 누나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양보하면서도 투정은 없었다. 누나와 여자는 그녀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끊임없는 금지와 마주쳤다. 그런 부조리함에 분개하지는 않았지만 간혹 서럽게 우는 경우는 있었다.그렇대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가슴이 조여 오는 느낌과 찌르르 저려오는 느낌으로 불길한 증세는 시작되었다. 불안을 잠재워 주기를 간절히 기대했던 의사는 정밀검사를 위해 그녀를 병원 여기저기로 보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온몸으로, 암은 소리 소문도 없이 퍼져 갔다. 마치 나무줄기의 수줍은 꽃봉오리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는 수술도 하고, 항암 치료하고, 방사선 치료를 했었다. 약봉지는 서랍 하나를 채우고도 남았다. 참을성이 많던 그녀도 항암 치료과정은 많이 힘들어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일상적인 대화를 하던 그녀는 몇 분 만에 호흡곤란을 겪기도 하고, 산소포화도도 떨어지고, 속이 메스꺼워 구역질을 했다. 그 이후에는 아프다면 진통제를 주고, 목이 마르다고 하면 수액을 놓아주고, 숨이 가빠지면 산소호흡기를 달아주었다.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제스처이다. 임종이 다가오면서 임종실이라는 1인실로 옮겨졌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똑같은 몸이었지만 그녀의 육신은 온기를 잃어버린 체, 유리창을 지나쳐 온 평행사변형의 햇빛 속에 가로놓여 있었다. 기적같이 바라던 일상 대신 죽음이 가족 앞에 왔다. 심장이 내려앉고 문득 바닥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기껏 인간을 좋아한 사람에게 너무 이른 사형선고였다. 뭐 그런 거지. 신의 존재를 부정했었지만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녀를 위해 신앙과 화해를 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수많은 서약과 함께 기도는 시작되었다. 기도의 간절함은 밤마다 점점 강해졌다. 한 번의 배신이 아무렇지도 않은 두 번의 배신을 불러오듯, 믿음은 더 큰 믿음을 낳았다. 그렇지만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세상은 지옥 자체였다. 지옥은 특정한 공간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소통할 수 없으면 그곳이 지옥이다. 숨을 쉬기도 힘들고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처음에는 그녀의 죽음을 부정했고, 나의 기도를 받아주지 않은 신에 대해 분노했고, 우울함과 무기력에 삶은 끈적였다. 아니, 끈적인 것이 아니라 체인 빠진 자전거 바퀴처럼 헛돌았다. 그러고 나서 죽음을 받아들였다. 처절하게 슬펐지만 신기하게도 잠은 헛되이 왔다. 뭐 어쩌라고.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인간의 실존이란 게 별거 없었다. 하찮고 볼품없는 것이 존재의 본질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선은, 여인들이 나에게 더 이상 한눈을 팔지 않게 되었다. 이건 치명적인 일이다. 볼품없는 수컷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간혹 젊은 여자의 거만한 시선을 받으면 나의 노화는 급속도로 진행된다. 마치 햇빛을 쐰 뱀파이어 같다. 그녀 앞을 스치듯 지나갈 때면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그녀의 시선이 등에 꽂히는 것만 같았다. 그다음에는 내면의 변화가 있었다. 수직적 세계로의 동경은 수평적 세계로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물론 타인들은 그래 봤자 힘 잃은 자의 자기 위안이자, 자기기만이라고 조롱할 수도 있다.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바위처럼 가슴을 억누르던 누나라는 바위 덩어리는 풍화작용으로 작은 돌멩이로 바뀌었다. 꺼내보고 싶을 때 꺼내볼 정도가 되었다.


그 무렵, 아버지의 삶이 오래되지 않을 거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다시 죽음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안정적이다가도 새로운 증세가 반복적으로 오래 지속되었다. 서로가 지쳐갔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스스로 삶을 정리하기를 기대했다. 두 번에 걸친 시도는 불행히도 성공하지 못했다. 어쩌면 삶을 연장하는 것은 죽음의 고통을 연장하고, 삶의 노고로부터 도망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죽음은 그나마 남아있는 자신의 품위와 영화를 지켜주고, 그의 지나온 세월을 용서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수면제를 쥔 그의 손아귀에 힘은 넘쳤다. 그에게는 수면제는 죽음으로 이끄는 희망 급행열차였다. 깨어있는 시간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그 정도 나이가 들면 몇 가지 기술만을 부린다. 자고, 먹고, 자고, 먹고, 또 자고를 지겨울 정도로 반복한다. 상승과 추락을 반복했던 꿈의 몽롱함이 멈추면 신경질을 부린다. 삶이 지겹다고. 또다시 살아난 게 지겹다고. 거동이 불편한 그의 온몸은 멍투성이었다. 당연히 나는 눈길을 피했다. 그리고 요양원에 보냈다. 집에서, 자신의 침대에서, 죽게 해 달라라는 간절한 소망을 외면했다. 그를 위한다는 말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존엄을 빼앗아버렸다. 그는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었지만, 요양원에 보내지고 이 주 후 하나의 쓸쓸한 주검이 되었다. 얼굴은 미라의 머리처럼 오그라들었고 쭈굴쭈굴한 메마른 주름살 투성이었다. 그런 골동품 같은 늙은 그 남자는 흰 시트에 덮인 체 바퀴 달린 침대에 실려 나갔다. 그리곤 자신의 마지막을 환대하는 불길의 날갯짓으로 던져졌고, 최후의 불길은 그를 할퀴고 집어삼켰다. 뭐 그런 거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교묘한 거짓말이다. 거대한 숫자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넘어서는 것이 미덕이라면 언제까지 그 짓거리를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늙음은 잘못된 삶에 대한 벌이 아니다. 젊음이 한순간이라면 늙음은 죽는 날까지 계속된다. 벌로 따지면야 종신형이다.


그의 손을 보면 세월이 느껴진다. 검버섯이 번진 손은 뼈와 힘줄만이 앙상하게 남아 기괴하게 크게 보이고, 굵은 손마디는 노동의 고단함이 담겨있고, 깊게 파인 메마른 나무껍질 같은 손금은 세월의 우여곡절이 묻어있다. 끊임없는 노동으로 반쯤 오므라진 억센 그의 손도 한때는 몽실몽실하고 우아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텅 빈 눈은 흐릿한 외로움이 있고, 줄줄이 깊게 그어진 주름살은 지난한 삶의 흔적이 엿보이고, 초라하게 휘어진 등줄기는 허투루 살아오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그에게, 나는 삶의 희망이었다. 뭐 어쩌라고. 혈혈단신 월남하여 주민등록등본에 아내 이름이 적히고, 누나와 내가 적혔다. 이렇게 해서 핏줄의 단단한 매듭이 만들어졌다. 40대 이후에 어렵게 얻은 아들은, 말더듬이인 그에게는 말동무였다. 무릎 위에 앉히고 무언가를 귓가에 들려주었다. 귀에 손을 모았다가 덮었다 하며. 덕분에 나도 말더듬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지금부터는 나의 추악한 진실을 말하려고 한다.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아버지의 소멸에 간접적인 방관자였다. 나는 수많은 우연 속에 태어났다. 생각할 수 있는 우연은, 부모의 탄생이고, 6.25 전쟁 때 그의 월남이고, 인천이라는 곳의 정착이고, 페인트공이란 그의 직업이고, 그의 아내와의 만남이다. 간혹, 이 우연 속의 탄생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부조리한 만남의 부산물인, 나 자신을 경멸한 적도 있음을 밝혀둔다. 그랬더랬다. 그렇게 생각한 연유는 있다.신발에 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진흙 같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강박과 말더듬이라는 수치심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인생에 대한 분노와 연민이었다. 폐소 공포증 나는 삶으로부터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내색은 안 했지만 배신의 욕구는 자랐다. 마치, 흙 바깥의 세상이 궁금하여 흙을 헤집고 고개를 빼꼼히 내민 싹처럼, 가족이라는 대열에서 이탈하여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싶었다. 그것이 삶을 진실되게 사는 거라고도 생각했었더랬다. 그랬더랬다.


아무 게의 아버지라면 아버지의 삶에 요구되는 삶에 맞추어 아이들에게 행동하고, 아무게의 남편이면 남편의 삶에 요구되는 삶에 맞추어 아내에게 행동하고, 아무게의 아들이면 아들의 삶에 맞추어 부모에게 행동하고, 아무게의 선생이면 선생의 삶에 요구되는 삶에 맞추어 학생들에게 행동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죄다 연극의 배우들이다. 내 바램과는 반대로 나의 역할놀이는 충실히 계속되었다. 관객의 요구에 맞추어 사는 것이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삶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말이다. 언제부터라고는 정확히는 말하지 못해도, 이 무렵부터 되고 싶은 나의 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은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 후 오랜 병시중은 서로가 지쳤고, 진정 어린 대화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도 많이 외로웠을 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살을 시도할 수 있을까? 물론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죽음에 가벼움과 무거움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와 누나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다름에 나 스스로 놀랐다. 누나의 죽음에 흘렸던 눈물은 아버지에게는 메말랐다. 살만큼 산 노인의 죽음에 흘리는 눈물이라 그런 건가 아니면 아버지의 인질로부터 해방을 느껴서 그런 건가? 슬프지 않은 건 아닌데 의외로 담담했다. 그랬더랬다. 사후처리도 죽음을 상상한 사람처럼 이미 많은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치 사랑한 사람의 죽음을 꿈꾼 것처럼 말이다. 뭐 어쩔 수 없다.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겠다. 그와 나와의 관계는 좋게 말해 공생관계이고 나쁘게 말하면 기생 관계였다. 그와 나만이 그런 건 아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들은 권력지향적이다. 아들을 피 권력자의 지배할 대상으로 여기고, 자신의 하부에 두기를 원한다. 아들이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자기만의 존재가 되는 것을 최대한 막는다. 막는 방법은 눈물겹다. '이 놈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느냐?', '이게 다 너를 위해서 그런 거다.'라고 말한다. 지배의 도구로 사랑을 얘기한다. 이 교묘한 말은 저항의지를 꺾어놓을 정도로 성공확률이 높다. 설령 저항을 한다고 해도 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죄의식이 내면화되면 아버지의 권력에 기생하면서 자기를 유지한다. 두 사람은 분리될 수 없다. 아버지를 적으로 만들면 자기도 적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들에게 일어나는 것이고, 아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버지에게 일어나는 일이 된다. 양자가 분리될 수 없고, 개체성을 가질 수 없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권력은 착종된다. 그를 향한 '사랑'은 '의무'였고, '저항'은 '죄의식'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기를 바랐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들춰내서 남아있는 죄의식과 그리움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다. 그랬더랬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나를 옥죄어 오는 듯, 그가 자주 떠올랐다. 그의 흐리멍덩하고 어눌한 눈빛, 정확히 말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처연한 눈빛, 온몸의 멍, 그리고 어두운 목구멍에서 끄집어낸 말을 혀끝에서 뱉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모습, 물론 그 말이 무엇인지는 안다. 뭐, 사랑한다는 거지.


그와 관계되는 사물이나 장소는 점점 늘어만 가고, 사소한 일에도 거르기 힘든 그가 버티고 있었다. 예상을 못한 건 아니지만 너무 빨리 찾아왔다. '나도 할 만큼은 했다'라고 발버둥 쳤고 , 나를 포위한 기억으로부터 웅크리기도 하고 도망치려 했다. 그렇지만, 이내 달아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달아나기는커녕, 그의 이미지는 겹쳐 떠오르고, 그와의 사소한 기억에도 심한 감정이입을 하였다. 하물며 이방인의 대화처럼 느껴졌던 불통의 순간조차도 그리웠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종국에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헛헛함만이 찌꺼기로 남았다. 간혹, 거울을 보면 두 가지의 모습이 보인다. 드러난 모습과 숨겨진 또 다른 자아의 나의 모습이다. 제기랄! 어떨 때는 그가 나를 보고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든 적도 많다. 그와는 다른 삶을 꿈꾸던 나의 삶도 그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내 한계는 아버지가 느꼈던 한계와도 똑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패러디였던 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