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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Sep 30. 2023

'나를 길들이려고 하지 마'

<8화>

창과 방패


대체로 무탈한 날을 지내고는 있지만 세상은 까닭 모를 곳이다. 처음에는 귀엽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던 일들이 이제와서는 집사들의 신경을 거슬리는 모양이다. 그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음식 탐하기

2. 목욕 거부하기

3. 손톱깎이 뿌리치기

4. 집사들 손발 깨물기


그들은 못마땅한 것이 있으면 담판을 지으려는 듯 집사마다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대표를 선정해서 단 한 번에 끝낼 수도 있는 데도 말이다. 일부러 절차를 까다롭게 해서 군기를 잡겠다는, 권위적인 집단에서나 하는 짓거리를 이들도 하더라. 웬만하면 집사들의 요구를 들어주고는 싶지만 본능과 관련된 것들이라 양보하기 힘들다. 그들은 모여 계략을 짜고, 나는 그 계략을 물리칠 지혜를 홀로 고민했다. 그들처럼 누구에게 호소할 처지도 못된다. 처량 맞은 것도 내 몫이다. 이 집에 들어올 때도 가지고 온 것은 마음밖에 없고, 설령 다른 데를 가도 마음밖에는 가지고 갈 짐이 없다. 또다시 상자나 가방에 들어가서 나와보면 장소가 바뀌는 상황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강제로 집에서 쫓겨나는 심정은 당해보지 않으면 그 맘 모를 거다. 일단은 이 집에서 마음을 붙이도록 노력하며 그들을 믿어 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고양이 앞에 생선


내가 음식을 초월하지 못하는 거 인정한다. 밤늦게 나 몰래 소리 죽여 가며 먹는 거 다 알고 있다. 달가닥달가락 거리는 소리나 내지 말던가. 그 소리에 호기심도 생기고 입안 가득 침이 고여 다가가면, "저리 가, 너 밥이나 먹어!"라고 야멸차게 쏘아붙인다. 면박을 받고 머쓱하여 머리를 긁적이지만 저버려진 느낌에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을 맛보는 건 어쩔 수 없다. 서로를 향해 흘깃흘깃 시선을 주다가 멋쩍어 어딘가 멀리 눈을 돌리지만 그들의 시선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식탁 위 전등빛이 그들의 몸에 부딪혀 깨어지는 모습을 구석에 외따로 서서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지금처럼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전에는 고개를 앞뒤로 끄덕거리며 사료를 오도독거리며 씹으면 집사들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있었다."야아옹?(그렇게 신기해, 내가 밥 먹는 게?)"하고 물어보면 흐뭇한 표정으로 나의 일거일동을 유심히 관찰했었다. '마음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듯이 변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 나는 어째서 식탐이 있는 걸까요?'라고 자책도 하고, 내가 생각하는 행복과 집사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고양이 앞에 생선'이라는 말이 있더라. 그날은 자고 나서 태양빛아래 늘어진 엿가락처럼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다 보니 속이 허전한 거야. 근데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 나도 이게 뭐나 싶어, "야옹?(이 비릿하고 고소한 냄새는 뭐냐옹?)" 거렸다. 그건 생선 굽는 냄새였다. 삼촌 집사는 젓가락으로 능숙하게 배를 가르고 투실투실한 살점을 떼어 주더라고. 그래서 맛을 봤어. 근데, 말이야, 만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이 절로 나오더라고. 나는 온몸을 펄쩍펄쩍 뛰었어. 정신이 번쩍 나더라고. 너희들이 크림이 듬뿍 묻은 케이크를 혀끝으로 핥아먹을 때와 같다고 보면 된다. 고양이 앞에 생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더라. 생선 생각을 하니 또 혀 밑으로 신 침이 돈다. 그 이후로는 생선 굽는 냄새만 나면 발이 절로 움직이더라. 사막을 계속 걸어오다 멀리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거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생선을 굽는 할머니 집사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 집사는 목에 담이라도 걸린 듯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지. 집사의 시선에는 마치 나를 억지로 밀어내는 것 같은 냉기가 훅 끼쳐왔어. 얼마나 마뜩잖게 생각하는지 대번에 알아차렸지 뭐야. 원래도 대면대면하던 관계였지만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표정에 마음이 칼로 베이는 기분이었다. 내 처신에 대해 남이 비난을 퍼붓거나 화를 낼 때 기분이 좋을 게 뭐가 있겠어. 얼른 생선을 머릿속에서 쫓아내려고 했지만 입안 가득 침이 고여 당황했다. 그래도, 낯선 상황을 모면하려고, 마땅한 단어를 고르려고, 잠시 말을 멈추고 할머니를 비껴 천장을 바라보았어. 그러다 여느 때처럼 우물우물 얼버무렸다. 그때는 갑자기 친척집에 보내진 아이처럼 모든 것이 낯설었어. 예전의 가족들이 마냥 그립더라고. 그래도 마음을 고쳐 먹었어. 아마, 내가 온몸의 살이 흘러내릴 정도로 먹을까 걱정하는 거라고.


병 주고 약 주고


평소대로 그날도 두 팔로 팔베개를 만든 다음 느긋하게 엎드려 있었어. 또 잠이 슬금슬금 다가오는데 "살구야!"라는 누나집사의 다정한 말에 귀찮지만 대꾸를 했어. "야옹!(잠이나 한숨 자려고 하는데 왜냐옹!)"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미소를 보냈다. 근데, 아들 집사는 수건으로 나를 감싸고 누나집사는 나의 앙증맞은 주먹진 손과 발의 젤리를 꾹 누르면서 여태껏 갈아온 손톱과 발톱을 강제로 꺼내는 거야. 집사에게 예의를 지키려고 감추었던 손톱과 발톱을 꺼내고서는 끝을 자르더라고. 둘 다 그들답지 않게 절도 있게 행동하더라고. 단단히 준비했던 거다. 어이를 상실했다. 사냥에 필요한 무기를 싹둑싹둑 사정없이 자르는데 겁이 났어. 마치, 생선 조림에 대파의 몸통을 숭덩숭덩 썰어 넣듯이 하더라. 그들의 의도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러더니 나를 번쩍 들고 목욕탕으로 데리고 갔어. 나는 미안함에 보상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했지 뭐야. '무슨 재미나는 일이 있을까'하고 기대도 했다. 


근데 무방비 상태의 나를 들어다가 발목까지 물이 찬 욕조에 내려놓더라고. 처음에는 두발에 물이 닿는 느낌이 참을 만했어. 그건 해변가에 한 줄기 파도가 밀려와 모래톱 위로 흐르면서 맨발을 간지럽게 핥으는 듯했어. 거기까지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온몸에 샤워기를 대는 순간 갑자기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어. "야아옹!(나한테 왜 이러냐옹!)". 그들은 무슨 젤 같은 것을 내 몸에 묻히고는 온몸을 비벼댔어. 내 몸을 자동거품기로 머랭을 치듯 휘젓고 내 몸에서는 거품이 뽀글뽀글 일어났어.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나는 사지를 떨면서 집사의 옷을 필사적으로 잡고는 탈출을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런 거 알아? 모피 걸치고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찝찝한 느낌. 참혹한 그 순간이 어떻게 지났을까. 완전 물에 빠진 몰골이라니. 나는 오슬오슬한 한기에 오들오들 떨었다. 다시 털이 솜이불처럼 뽀송뽀송해질 수 있을까 걱정할 무렵, 열푹풍이 몰아쳤다. 이게 끝이 아닌 거였다. 또 나는 물 밖으로 내동댕이 쳐진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며 발버둥을 쳤다. 그러고 나서는 누나집사는 생선비린내 나는 죽 같은 것을 주었어. 나는 주먹을 만들어 손등을 핥고는 손으로 귀를 열심히 닦고 있었는데, 그 비릿한 맛에 또 정신을 잃고 바닥에 흐른 것까지 싹 다 핥아먹었다. 다시 먹을 것에 굴복한 거지. 


다른 길


집사들과 내가 꿈꾸는 길이 같은 길이기를 바라긴 한다. 예전에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들은 그저 웃어넘겼고, 나도 멋쩍게 웃었다. 그러면 모든 게 농담처럼 흘러가버렸다. 그랬다가, 내 느낌에, 그들의 목소리에 뭔가 다른 것, 좀 더 냉냉한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그 짜증이 그저 사소한 의견 차이라 생각했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를 보장하는 듯했지만 본능에 해당하는 사소한 것까지 끼어들었다. 그들이 사풍스레 지껄이는 자유라는 말은 기만적이었다. 한번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누군가가 당신들 행동에 어쩌고 저쩌고 하면 좋겠는지, 타인의 욕망이 당신네 인생에 끼어들면 좋겠는가를. 나는 그들을 위해 생겨난 존재가 아니다.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무엇이 최선인가를, 해결방법이 뭘까를 천천히 생각했다. 서두르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그들과 나에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너희 인간들은 서둘러 일처리 하는 걸 좋아하지만 그건 달리 말하면 그 일에 애정이 없는 거다. 여하튼, 생각이 계속 맴돌고 나서, '지금 이 순간을 멋지게 보내자'는 나의 습성을 버리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살아볼까도 생각했다. 근데 그렇다고 해도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생각됐다. 인간들은 처음에는 장점으로 느껴져 사랑했던 상대의 습관에 결국에는 싫증을 내고 헤어지잖아. 오만가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고는. 그러지 말고, '삶이란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워!'라고 말하는 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서로의 품위를 지키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어떻게 결론이 낫는지 궁금해 할거 같다. 이런저런 생각 중에 점점 졸음이 왔고, 잠에 빠져들 때 뭔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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