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상명 Jul 27. 2020

순수 아닌 다양성

Diversity

초대 국립생태원장을 지내고 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한 강연에서 'Nature abhors a pure stand(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라는 영국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말을 소개한 적이 있다. 여기서 순수는 도덕적 순수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의 순수 즉, 다양성이 결여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이는 병을 일으키게 된다는 의미이다. 자연은 유전적 다양성이 결여될 때 우리에게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보여준다. 그 종(種)이 생존을 지속해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결국은 멸망하고 만다. 이러한 사례는 인류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 로마제국은 황실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친족 간의 근친혼을 하였고,  합수부르크 왕조에서도 순수 혈통을 지키기 위한 근친혼을 하였던 것이 제국을, 왕조를 부흥시킨 것이 아니라 결국은 제국을, 왕조를 무너뜨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자연에서도 당연히 다양하게 섞여야 그 종(種)이 잘 유지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임은 자명하다. 사회 또한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건강한 사회로 유지,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과거의 어떤 시대 보다도 세계가 하나로 묶이는 시대이다. 과거 대륙별로 문명이 발상했고, 각각의 문명은 그 나름 특성을 가진채 발전해왔다. 하지만 현재는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밀착되게 우리에게 다가왔듯이 모든 것이 하나로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상호 영향을 주면서 작용을 한다. 경제가 그렇고, 문화가 그렇다. 정치가 그렇고, 사회가 그렇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 모습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나라, 어느 한 곳 영향이 없는 곳이 없다. 그리고, 어느 한 곳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힘을 모아야 코로나 바이러스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하나도 글로벌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없는 하나로 묶이는 이러한 과정을 겪고 있는 세계는 일정한 부분에서는 역사의 발전에 역행하는 과도기의 갈등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수주의 정책을 펼치고, 이것이 국민들에게 호응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글로벌이라는 환경하에서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국수주의를 추구하는 나라는 패권을 놓치고 싶지 않으나 결국은 국수주의로 인하여 즉, 다양성을 포기하는 결과로 패권을 잃게 될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이종 간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 경계가 없다. 가상의 세계와 실제의 세계가 혼재한다. 이런 것들이 다 조직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표현일 게다. 조직에 다양성이 없다면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조직은 또한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직의 다양성은 우리의 현재,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하지만, 아직은 갈길이 멀다. 단적으로 현재 우리는 다른 문화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은 가능하나, 다른 문화에서 우리 조직에 들어와서 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양성을 표방하면서도, 글로벌 조직이라고 하면서도 다른 문화의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나 실질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조직 중에 이러한 예를 찾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안타가운 일이다. 세상이 그것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결정이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고 하지만 과거의 판단을 기준으로 현재의 판단을 바꾸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또는 진영의 논리에 빠져서 자기의 판단을 남에게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 조직 구성원이라는 명분 하에 기업에서 추구하는 방향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 이것은 현재 가치 창출은 가능하나 미래 가치 창출에는 한계가 있는 일일 것이다. 최고 경영자가 그렇다면 더욱 우리의 미래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또, 소신, 주관이라는 명분 하에 내 판단을 고집하는 일들은 나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나의 판단을 고집하지 않고, 어떠한 생각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다양성을 갖추기 위해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요소일 것이다. 조직에서 특히 책임자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감 없이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조직의 다양성은 획기적으로 갖추어질 것이다. 하루빨리 꼰대라는 단어가 사라져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추구할 때 우리는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갈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올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만 가능하다, 하루빨리 다른 사람이 나에게 편하게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가지가 다 가능해야 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순수한 자세로 받아들이는 '순수'가 또한  필요한 시대이다.

이전 05화 비 온 뒤 맑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