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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상명 Jul 12. 2020

비 온 뒤 맑음

Hope & Preparation

요즈음 세대에게는 낯설겠지만 소위 586세대라고 할 수 있는 50대 이상의 사람이라면 기억하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이미지를 주는 사람이었다. 중앙관상대(현 기상청) 통보관을 지낸 기상캐스터 김동완 씨이다. 매일 저녁 뉴스에 나와 지도에 고기압 선, 저기압 선, 태풍의 이동 경로, 찬 공기가 내려오는 경로, 비가 오는 곳, 눈이 오는 곳을 직접 그려가면서 내일의 일기 예보를 알려주던 분이다. 지금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인공위성 관측 사진으로 일기 예보가 대체되었지만 그때 그분의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의 내일 모습을 책임지는 말들이었다. 오전에 맑을지, 비가 올지, 눈이 올지 등등의 예보에 따라 저녁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이런 일기 예보 설명이 어떤 경우는 예언 같이 느껴지곤 했던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이 서려 있는 기억 일 것이다.


나는 일기 예보 중에 '비 온 뒤 맑음'을 제일 좋아했다. 아침에 비가 온 후에 오후에 맑게 개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 비가 오고 있으면 내가 어쩔 수 없다. 우비를 준비하거나, 우산을 준비하고, 신발도 비가 안 새는 걸로 신고 집을 나선다. 그러다 오후에 비가 개이면 우비, 우산, 물 구덩이 등 귀찮은 것들이 없어진다. 거추장스러운 것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맑음 뒤 비'는 싫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비도 안 오는데 우산을 챙겨서 가지고 가야 하나 하고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비가 진짜 올까? 우산 들고 다니려면 귀찮은데, 우산을 잊어버릴 수도 있고 등등 갈등이 시작된다. 이때 대개는 어린 마음의 용기가 발동하여 우산 없이, 우비 없이 집을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영락없이 오후에 아무 대책 없이 비를 쫄딱 맞는다. 비가 올 때 우산을 가지고 있는 애들을 보면 너무 부러웠고, 나도 우산을 가지고 나올걸 하고 후회를 한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귀찮아서 아침에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조직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여유가 있을 때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인생으로 보면 젊었을 때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고, 1년으로 보면 연초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고, 1달로 보면 월초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고, 하루로 보면 아침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다. 하루의 일과 중에 아침시간에는 느슨하게 있다가 오후에 제시간에 퇴근을 못하는 경우, 연초에 세웠던 계획을 제대로 드라이브하지 못해 달성이 안되고 1년이 지난 가는 경우 등을 손쉽게 보고,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기업 차원에서도 동일하다. 기업 경영이 호황일 때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해야 하고, 혁신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고, 인재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기업은 미래의 생존과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 한 때 명성이 있던 기업이 한순간에 어려움에 빠지고 결국에는 사라지는 예를 우리 주변에서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한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기업 경영이 좋을 때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해도 쉽지 않은데, 임박해서는 헤쳐 나갈 수가 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다음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훨씬 세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려움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극복해 나가야 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누구든지 내 어려움이 제일 크게 느껴지고, 풀기 쉽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나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내 어려움은 헤쳐 나가지 못할 정도의 크기가 아니다. 내가 겪는 어려움을 일기 예보로 보면 비 온 뒤에는 당연히 맑음이 예상된다. 시간이 다소 길 수는 있을지언정. 이런데 어려움을 과정으로 생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특히, 어려움이 지나간 뒤에는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영웅담으로 추억하면서 공유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서 다음에 내리는 비는 내 품에 가둘 수 있을 것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상대해 보자.


우리는 매일 일기예보를 듣고,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상황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 듣고, 보고, 느낀다. 또 그렇게 하려고 진지한 노력을 많이 한다. 비가 온다고 하는 일기예보를 들으면 당연히 다음날 우산을 준비해서 집을 나선다. 조직의 변화를 주문받는 예보를 들으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조직에게는 맞지 않는 예보야, 그 예보가 설마 맞겠는가 하면서 외면하는가? 또, 나에게도 조직 생활을 하면서 변화를 주문받는 예보를 듣게 된다. 상사에게 코칭을 받기도 하고, 동료를 보고 참고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 계획을 모르면서 하는 말이야, 나의 능력을 폄하하는 말이야, 나하고 그 사람하고는 가는 길이 달라라고 하면서 외면하는가?  '맑음 뒤 비' 일기 예보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무시하면 안 된다.


' 비 온 뒤 맑음'은 진리이다. 하지만 '맑음 뒤 비' 또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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