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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Oct 31. 2024

백설여왕

주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은 없다.

9.


"김진희 씨! 제 말이 들리시나요?"


"김진희 씨! 제 말이 들리면 수신호라도 보여주세요."


눈을 떴다. 눈이 부셔서 자동반사로 감긴다. 몇 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한 후에야 빛에 익숙해진 눈에 병실의 천정에 무드등처럼 불투명 덮개 안에서 빛을 밝히는 두 줄의 긴 형광등이 보인다. 의식이 돌아온 이후 눈을 감은 채 귀만 열어놓았었던 시간은 끝났다. 삶의 변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 돌발적으로 나타난 일을 헤쳐나갈 방도를 모색했지만 방도를 찾지 못한 상태로 들켰다. 어쩌면 들킨 게 다행일 수 있다. 미루면 미룰수록 고생하는 사람은 부모님이라는 걸 알면서, 불효라는 걸 알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눈을 뜰 수 없었다. 현명한 길을 모색한다는 변명아래 의식이 돌아온 것을 감춘 내내 마음이 불편했었다. 만약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면 부모님은 충격으로 쓰러지실 수도 있기에 남편의 일을 발설해서 부모님의 걱정거리를 만들기가 싫었고 사고 원인 역시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간병인에게 나를 맡기시지 않고 계속 내 곁을 지키신 부모님에게 충격이 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찾아야 하는데, 어렵다. 


"제 말이 들리시면 대답하세요."


의사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내려다보는 눈들을 보았다. 초췌해지신 엄마와 푸석푸석해 보이시는 아버지,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가 전부였다. 병실은 쓸쓸한 빛으로 가득했다. 흰색의 벽면이 차가워서였을까? 공기도 차가운 느낌이다. 병실의 규모는 34평 아파트의 중간 크기의 방인 재현이 방과 비슷한 크기, 학생의 공부방 크기로 2인실이지만 다른 환자는 없다.


"김진희 씨! 소리가 들리나요? 손이나 눈 깜빡임 등 제가 알아챌 수 있도록 호응하세요."


의사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서 눈을 깜빡였다. 골격이 다부지고 마른 체형의 의사는 오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허리를 반쯤 접은 상태로 나를 들여다보던 의사는 몸을 세운 후 부모님을 향해 몸을 살짝 돌렸다.


"환자분의 의식도 돌아오셨으니 곧 말도 하실 겁니다. 뇌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수술한 부위도 거의 회복되는데 환자분의 의식이 깨어나지 않아서 저희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깨어나셨으니 조금 더 기다리면 될 겁니다. 보름이 넘는 기간 동안 잠들어 계셨으므로 현실 인지가 현재 잘 안 되는 듯합니다. 모든 부분에서 정상이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조급해하지 마시고 환자분이 편안하게 적응하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엄마와 아버지는 의사를 향해 깊게 고개 숙여서 인사하셨다. 두 분의 행동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티가 난다. 교직생활에서 예의가 몸에 붙어서 엄마와 아버지는 연세가 드셨어도 모든 사람에게 깍듯하시다.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에서 나가자 엄마는 침대로 걸어오시면서 말씀하셨다.


"진희야 잘했다. 이제 됐다. 깨어났으니 이젠 됐다. 깨어나서 고맙다."


"영감! 어서 재현아범에게 전화 넣어서 진희가 깨어났다고 전해요. 아범도 애면글면 버티는 시간이라 일이 손에 잡히겠어?"


쌓아놓은 마른 장작이 굴러 떨어질 때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와 닮은 목소리로 엄마는 속엣말을 꺼내셨다. 말씀은 기침이나 울음을 참는 듯 커졌다 작아지곤 했기에 앞 단어와 뒤의 단어 사이에서 뭉개진 부분은 내가 채워가며 들었다. 부모님도 남편의 실체를 알기 전의 나처럼 남편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 사람은 타인에게 신뢰를 주는 말투와 태도가 몸에 익은 사람이다.


"용하다 용해! 깨어나주어서 고맙다 진희야. 수술도 잘 되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들었는데도 네가 회복실에 온 이후로도 계속 의식이 없는 상태라 간이 콩알만 해져서 입에 무엇을 넣을 수도 없었단다. 네 아버지와 내가 병원 내에 있는 성당에 가서 매일 기도하고 왔단다."


엄마는 당신의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고 힘을 주었다 뺐다 하면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그리 고마운지 엄마는 고맙다는 말씀을 반복했다. 여든이 넘으신 아버지는 말없이 내 곁에 오셔서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초등학교 이후로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던 적이 없었는데 지금 아버지는 내가 어린아이로 느껴지나 보다. 부모님이 얼마나 놀랐고 근심이 크셨을지 가늠이 되었다. 따듯한 엄마의 손에서 전해진 안도가 마음에 번지는 양만큼 부모님께 못난 모습을 보이는 게 죄스러움과 반발이 동시에 일어났다. 내가 무턱대고 사람을 믿고 선한 의지로 사는 성격이 형성된 것은 타고난 본성도 한몫했겠지만 부모님의 꾸준한 주문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양보하는 법과 참는 법 그리고 겸손과 예의를 강조하셨다. 형제가 없이 자란 사람의 티가 나면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안 된다고 하셨다. 


남편의 지저분한 여자관계를 알고 난 후 뒤로 넘어갈 만큼의 충격을 받고 가슴 저미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남편에게 취할 방도를 찾지 못한 이유는 부모님의 훈육으로 단단해진 관념 때문이다. 나는 내 성격이 짜증 나고 화가 났다. 처음으로 부모님이 어려서부터 내게 주입한 여자는 이래야 한다의 행동 수칙은 마치 수학 정석 같은 참고서였다. 성차별이 분명한 참고서를 달달 외우고 자란 태도, 도덕관념과 타인의 시선을 먼저 고려하는 방식이 싫고 버거울 때가 많았었다. 그러나 연로하신 부모님께 부모님의 훈육 때문에 불편한 일상이고 비겁한 위선자로 행동한다고 말할 수 없다. 부모님에게 말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말문을 열지 못한 슬픔으로 묵직해진 마음은 눈물이 되어 흘렀다. 


사고 직전의 선명한 기억은 무엇인가에 얻어맞은 듯 눈앞이 캄캄해졌고 뒤이어서 무엇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사고가 났던 경위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사고 직전에 내가 울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으니 곧 기억의 퍼즐조각이 모두 맞추어질 것이다. 무섭고 두려웠던 원인은 내가 알던 남편이 아닌 완전히 다른 성정이나 성향의 사람, 다른 인격체라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져서다. 제삼자들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얼마나 높을지 알 수는 없지만 마음엔 와글와글 말들이 돋았다.


"진희야 내가 누군지 알아보는 것 맞지? 말을 알아듣는 것도 맞지?"


"사고 소식을 듣고 우리가 얼마나 놀랐던지, 수술실에 들어갔다는 말에 기절초풍했단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오금이 저리고 애간장이 모두 타들어간단다. 부러진 갈비뼈가 다행기 장기들을 건드리지 않아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에 안도했지만 사고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던 네가 어쩌다 그런 사고를 낸 것인지. 캄캄한 밤도 아니고 환한 대낮에 어째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답답했지만 네가 일어나야 설명해 주기 전까지는 알 방도가 없지. 우린 그저 네가 들이받은 게 가로수라 그나마 천만다행이지 행여 사람이라도 치었다면 어쩔뻔했냐면서 서로 위로하고 네가 사고 후유증이 없기를 기도하고 기도했단다."


엄마의 흥분이 가라앉으셨는지 처음보다 목소리는 안정되어서 듣기가 편했다. 내 눈물을 보고 엄마가 안심하셨는지 질문을 시작하셨다. 나는 엄마의 답답한 마음을 알지만 반응할 수 없었다. 아직은 어떤 일도 설명할 자신이 없고 두 노인네에게 충격을 드리는 것은 한 번으로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말문을 막았다. 내가 모든 걸 기억해 내면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다. 섣부르게 이야길 시작하면 부모님뿐 아니라 재현이까지 힘들어질 수 있다. 눈을 다시 감았다. 생각정리가 먼저다. 걱정도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인지 피곤했다. 눈을 감았다.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 있는 신호등이 빨간색이어서 정차했다가 파란불로 바꾸어서 액셀레이터를 밟고 출발했다. 그 순간 우리는 왜 초록불을 파란불이라 부르지? 하는 질문에 이어서 지선이가 해주었던 말 중에 정자기증이 정자은행을 통하지 않고도 암암리에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대답처럼 들렸다. 방금 전에 남편이 근무하는 로펌의 여직원들의 이야기가 지선이가 해 주었던 말이 겹쳐졌다. 맞다. 그것이었다. 남편에게는 재현이 말고 또 다른 아이가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다. 느닷없이 정자은행 이야기를 해준 지선이의 의도는 간접적으로나마 남편의 부조리한 도덕관념을 내게 알려준 것이다. 순간, 무엇인가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 발에 힘을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금화터널로 진입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게 기억의 마지막 장면이다.


"여보 어서 가서 의사 선생님께 진희가 왜 말을 못 하는지 여쭈어봐요. 의사 선생님이 머리는 크게 다치지 않아서 기억엔 문제가 없다고 하셨는데 얘가 왜 말을 하지 않지요?"


"아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요. 기다리면 되는 일이라고. 성미가 급하긴!"


"나는 잠시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려고 하는데 뭐 부탁할 건 없어요?"


"없어요. 조심히 다녀오시구려."


안절부절못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가엽고 이 상황이 슬펐지만 기억의 퍼즐조각이 완성되고 내가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찾기 전에 말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약속을 신에게 맹세라도 한 듯이 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엄마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아버지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셨다. 구릉처럼 굽은 아버지의 등이 흔들흔들 더디게 움직였다. 아버지의 등이 굽었다는 걸 오늘에서야 발견했다.  


아버지가 병실에서 나가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의 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처음부터 일정 시간이 흐르면 깨어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단 한 번의 불안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은 편안한 얼굴이었다. 똑똑한 사람들은 대부분 빠른 판단으로 감정을 차단하거나 꾸며내기 잘하지만 위선에서는 지독히 이성적인 표정이 드러나므로 차갑다. 기만적인 일상인 줄 모르고 완벽한 가정이라고 느끼고 행복에 겨워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어 보였을까? 그런 생각과 마주하자 소름이 돋았다. 남편은 예의 바르게 엄마에게 인사한 후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상큼한 향이 먼저 코에 닿았고 이어서 그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미적지근한 온도의 촉감이다.


"여보! 이제야 정신이 들었어? 잠을 너무 길게 잤군. 부모님 걱정해서라도 좀 빨리 일어나지."


천연덕스러운 남편의 행동이 가증스러운데, 엄청난 비밀을 갖고도 뻔뻔하고 당당한 남편이 끔찍한데, 이상하리만큼 나는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무수히 반복된 다짐의 효과일까? 아니면 믿음이 산산조각 나서 일까? 남편의 파렴치한 행적에 대한 기억들에서 시치미를 떼어내면 나도 뻔뻔해질 수 있다. 당돌해지자. 과거의 습관을 버리는 치열한 싸움은 이제 시작되었다. 남편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자 신기하게도 마음으로 남편을 닿을 수 없는 거리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용기가 생겼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해낼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 남편과 어정쩡한 관계로 한 집에서 사는 힘듦을 고수하려면, 어차피 연기자로 살아야 한다. 기왕지사 연기할 것이라면 <기억상실증 환자>가 조금 수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분간, 언제까지 일지는 알 수 없지만, 홀로서기의 준비기간이라고 생각하자.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몰두하면 <희망>이 깃들 수 있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가족 모두가 상처나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있고 내가 홀로 설 수 있는 기회로 만들자. 교통사고 이전의 나는 이미 죽었다. 마음을 다잡을 때마다 자신감이 새록새록 돋았다. 지금은 연기지만 연기가 연기가 아닌 지점에 닿을 때까지 모든 걸 묻어 놓으면 그 상처들도 아물 게 분명하다. 남편은 나로부터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 다시 부모님 앞에서 다정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무사해서 고마워 여보. 걱정했는데 이렇게 회복해 줘서 고마워 여보"


식상한 말, 감정이 묻어있지 않은 건조한 말로 고맙다고 말하는 남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첫 대사, 기억상실증 역할의 연기자로서 하는 첫 대사다. 심장이 마구 요동친다. 떨지 말자.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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