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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Oct 27. 2024

우리는 아직, 악보다 선을 믿는다

전쟁터에서 만난 사람들 - 7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아내와 아이가 반론을 던졌다. 흔한 토크쇼 형식으로 특정 분야에서 주목받는 출연자를 초대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날의 출연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한국 언론인으로는 최초로 현장에서 전쟁의 참상을 취재한 기자였다. 우리 가족의 관심사와 교집합을 이루는 내용이라 흥미롭게 시청하는 중이었다. 

아내를 불편하게 만든 포인트는 예능 출연이 전쟁 지역 취재보다 더 긴장되었다고 언급한 부분이었다. 

“전쟁의 참상을 전하면서 경직된 분위기를 웃음으로 전환하려는 의도인 건 알겠는데 비교할 데다가 따로 있지. 그건 아니잖아!” 

반면, 아이는 숫자에 집착했다. 

“아빠는 다섯 번이나 갔다 왔는데 그래서 저 사람은 몇 번 갔다 왔어? 아빠가 더 많이 간 거 아냐? 그러면 아빠가 대신 저기(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야지. 왜에?”

뜬금없이 (아무 잘못 없는) 기자를 향한 성토가 시작됐다. 내 가족이 전쟁의 위협 속에서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겪은 감정적 고충까지 폄훼하려는 건 아니었다. 사실, 그 칼날의 끝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내 아이가 강조했듯 나는 우크라이나에 다섯 번 다녀왔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이 절정에 달했던 22년 1월과 전쟁 발발 후 다소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22년 6월, 전장 상황이 악화일로 치닫던 22년 10월과 전쟁 1주기였던 23년 2월, 그리고 23년의 마지막 날과 24년의 첫 날을 우크라이나에서 보냈다.

그때마다 나는 대한민국 외교부로부터 예외적여권사용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전쟁 직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발급하는 취재 허가증도 필요했다. 허가증 없이는 우크라이나 어디에서도 취재 활동이 불가능했다. 허가증에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살벌한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군대는 전투 지역에 있는 동안 귀하의 생명과 건강에 대해 책임 지지 않습니다’

말인즉슨, ‘너 죽어도 우리는 모른다’라는 뜻이다. 아내와 아이가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곳에 남편, 아빠를 보내놓고 누가 발을 뻗고 잘 수 있겠는가. 걱정하다가도 얄밉고, 얄밉다가도 안쓰럽고,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독일 등 유럽에서 활동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프리랜서 카메라맨이었다. 잠시 특정 언론사에 소속된 시기도 있었지만, 정직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에게 온갖 걱정과 불안을 떠안기면서 우크라이나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전쟁 초기,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 들려있던 피켓의 문구, ‘전쟁 반대’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어떠한 폭력이라도 연대하면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전장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뭐 이런 식의 그럴싸한 답을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게 전쟁이었다. 아내는 여행용 가방에 담긴 방탄조끼를 조용히 내려다보며 말없이 한숨만 내뱉었다.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 초반 필승을 굳게 믿었다. 거리에서 인터뷰하는 사람마다 ‘스라바 우크라이니!(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을 외쳤다. 미사일 폭격으로 무너진 학교를 재건하기 위해 스스로 시멘트 포대를 짊어진 대학생들부터 자폭 드론에 건물이 부서지고, 통학 버스가 불에 타버린 댄스 학원, 한 켠에서 우크라이나 민요에 맞춰 춤을 추는 아이들까지. 일상을 잃지 않으려고 그들은 노력했다. 하지만 전쟁은 3년이 되어가도록 계속되고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들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전쟁 중 주어지는 일상은 매일매일 아슬아슬한 한계까지,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토록 연대의 가치를 드높였던 다른 유럽 국가들의 분위기도 한풀 꺾인 모양새다. 길어지는 전쟁에 불만 섞인 목소리도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는데, 서운한 감정이 든다. 그럼에도.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은 결국 옳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힘 쎈 나라의 큼지막한 주먹 한 방이 이 세상의 악을 한꺼번에 고꾸라뜨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먼지처럼 작고,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악보다 선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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